▶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우파>가 Mnet 댄스 서바이벌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약칭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스우파> 출연자들이 단숨에 각종 예능을 휩쓸면서 거센 춤바람을 몰고 다니는 스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프로그램이 쏟아낸 각종 영상과 화제를 피할 방법이 없다.
백댄서로 활약하던 실력 있는 여성 크루들이 자존심을 건 배틀 열전을 펼친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10주에 걸쳐 방송되면서 예능 부문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또 회를 거듭할수록 각종 화제를 몰고 다니면서 무명이었던 출연진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유튜브 영상의 누적 조회수가 4억 뷰에 이르는가 하면 이들의 공연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고 10대 댄서들의 경연 프로그램인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된 노제, 아이키, 허니제이, 모니카, 가비 등은 억대 몸값을 받으면서 식음료, 화장품, 스포츠용품, 명품 의류, 휴대전화, 자동차 등 알짜로 불리는 광고모델을 휩쓸고 있다. 또 <유 퀴즈 온 더 블록>, <놀면 뭐하니?>, <집사부일체> 등 대세 예능 프로그램이 앞다퉈 이들 출연자를 섭외해 출연시켰다.
▶Mnet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
자신의 이름 걸고 전면 등장한 백댄서
<스우파>가 이토록 주목받은 이유는 뭘까? 우선 잘나가는 걸 그룹의 백댄서로만 인식되던 크루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전면에 등장했다. 더군다나 힙합을 하는 래퍼들이 배틀을 벌이듯 이들이 벌이는 댄스 배틀의 재미에 시청자들이 푹 빠졌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왁킹·크럼프·락킹·브레이킹 등 스트리트댄스 전문 용어가 상식이 됐다.
크루들은 여성성을 내세우기보다는 거친 언행으로 ‘센 언니’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때로 비속어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날 선 ‘거리의 언어’를 방송에서 그대로 노출시켰다. 예쁘고 섹시한 춤이 아닌 거칠면서도 야생성이 느껴지는 춤으로 기존의 인식을 뒤집었다. 그동안 여성이 군 훈련소에 입소해 고된 훈련을 견디는 예능과 거친 몸싸움을 벌이며 축구를 하는 예능이 인기를 얻은 것과 맥을 같이한다.
수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K-팝의 정점에 있는 K-댄스가 비로소 빛을 발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싸이는 “앞으로 댄서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실 싸이가 전 세계적 열풍을 몰고 왔던 ‘강남스타일’의 인기 요인은 춤이 큰 몫을 차지했다. 독특하면서도 역동적인 ‘말춤’ 동작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영상인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컬래버레이션(협업)곡 ‘범 내려온다’는 조선의 힙합이라는 별칭답게 역동적인 춤이 한몫한다.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협업한 것만 봐도 K-댄스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스우파>도 한류 열풍의 중심에 서 있다. <스우파>의 리더 계급 미션곡 ‘헤이마마’ 댄스 챌린지가 이어지면서 틱톡 해시태그는 2억 건이 넘었다. K-댄스 커버 열풍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단순한 재미를 넘어 진지하게 습득해야 할 ‘K-팝 안무’로 거듭나고 있다.
▶콜드플레이의 퍼포먼스 영상에서 홀로그램 댄서로 등장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유튜브
무용교육의 새 커리큘럼 스트리트댄스
이처럼 전통무용과 현대무용, 스트리트댄스의 경계가 허물어진 데는 달라진 대학교육과도 큰 상관관계가 있다. 그동안 엄격한 형식과 정형화된 몸동작으로 구성된 순수예술로서 무용이 대학에서 배워야 할 무용교육으로 인식됐지만 이제 스트리트댄스가 새로운 무용교육의 커리큘럼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식 스트리트댄스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오는 세계의 젊은이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4년제 대학 무용학과는 통폐합 추세지만 실용무용 전공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전문대의 경우 2008년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에 ‘스트리트댄스 전공’이 개설된 이후 40여 개 대학으로 확대됐다. 모니카, 허니제이, 아이키 등도 전문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무용평론가인 조하나 한양대 겸임교수는 “전통무용과 현대무용, 스트리트댄스 등이 경계를 허물고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등 기존의 무용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특히 K-팝 걸 그룹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춤에 대한 창의력이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스트리트댄스의 범주에 속하는 브레이킹이 2024년 파리 하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우리나라의 댄서들은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면서 메달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춤이 세상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