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본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의 전경. 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인 양동마을은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경북 안동 하면 문득 먹거리가 떠오른다. 유독 지명을 딴 음식명이 많다. 안동 간고등어, 안동 소주, 안동 찜닭, 안동 국시…. 가짜 제삿밥인 헛제삿밥도 빼놓으면 섭섭하겠다. 하지만 ‘양반의 고장’ 안동을 대표하는 유산은 누가 뭐라 해도 하회마을이다.
하회마을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서애 류성룡을 배출한 풍산 류씨 집성촌이다. 한마디로 씨족마을이다. 하회마을은 류씨들의 고택 주위를 초가집들이 둘러싸고 있다. 숲이 우거진 산을 뒤로하고 강과 농경지를 바라보는 마을 입지는 조선시대 양반문화를 온몸으로 품고 있다.
유네스코는 2010년 하회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렸다.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전통을 오랜 세월 온전히 간직해온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하회마을 초입에 발을 들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기분이 든다. 골목으로 접어들 때마다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걸친 양반이 뒷짐을 지고 언제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1999년 방한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가장 한국적인 장소라며 하회마을을 찾아 73세 생일상을 받기도 했다.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쪽에서 바라본 부용대가 연무를 끼고 강물에 투영돼 있다.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이 연꽃모양을 하고 있다.│ 한겨레
조선시대 양반문화 전통 온전히 간직
하회(河回)마을은 한자어 풀이 그대로 ‘물이 돌아나가는 마을’을 뜻한다. 낙동강이 S자 반대 모양으로 하회마을을 굽이쳐 휘돌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회마을을 끼고 도는 강 건너편 절벽 위엔 부용대라는 전망대가 있다. 연꽃을 뜻하는 부용은 이곳에서 내려다본 하회마을이 연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하회마을은 하회탈과 하회별신굿탈놀이로도 유명하다. 선비가 많았던 안동에는 병산서원 등 서원이 여럿 있어서 당파 싸움이 끊이지 않다 보니 애꿎은 서민의 삶만 팍팍해졌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양반과 대거리를 할 수 없으니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우회적으로 양반을 비판하려고 만들어진 놀이가 바로 하회별신굿탈놀이다.
안동에 하회마을이 있다면 경북 경주에는 양동마을이 있다. 2010년 하회마을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이다. 특이하게 손, 이 양성이 서로 공존하며 500년 역사를 가꿔온 반촌마을(조선시대 양반이 다수 주민인 마을)이다.
하회마을과 마찬가지로 씨족마을의 대표적 구성 요소인 높은 지대의 양반 가옥 주변을 낮은 지대의 평민 가옥이 에워싼 공간 배치 형식을 갖고 있으며 주변에 서당과 서원도 많다. 양동마을은 산세와 지세가 명당으로 꼽혀 예부터 재물과 인재가 모여들었다. 실제 조선시대 과거급제자가 116명이나 나왔을 정도다. 우재 손중돈과 회재 이언적 등 명망 있는 관료와 학자도 여럿 배출했다.
경주시에서 동북쪽으로 20㎞ 떨어진 양동마을은 마을의 병풍 같은 주산인 설창산 문장봉에서 네 개의 줄기로 갈라진 능선이 한자어 ‘勿’(물) 형태를 이루는데 이 사이 골짜기에 양반집 고택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세를 이루고 있다.
배산임수에 유교 예법 녹아든 가옥
양동마을에는 보물로 지정된 가옥이 4건,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건축물이 12건 있어서 조선시대 건축사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 또 국보 283호인 금속활자본 통감속편 등 기록유산도 풍부하다. 족보, 마을의 재산과 관련된 문서, 각종 문집, 계약·소송 등에 대한 문서, 관혼상제 관련 문서와 간찰(편지) 등도 잘 보존돼 있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1992년 양동마을을 방문한 뒤 오히려 국내에 알려지는 역홍보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조선왕조 500년 한반도 남동쪽에서 양반문화를 꽃피운 닮은꼴 마을이다. 14~15세기 조성돼 18~19세기 마을 규모가 커졌고 배산임수 지형에 유교 예법이 녹아든 가옥과 건물 배치도 비슷하다. 거리로 90㎞ 떨어진 이 두 마을이 그 먼 옛날 21세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날을 약속이라도 했던 것만 같다.
이탈리아는 헌법 9조에서 문화유산 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경제 관련 조항보다 상위에 있다. 로마 후손의 이런 의지와 신념이 오늘날 이탈리아를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문화유산 보유국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안타깝게도 유네스코는 양동마을의 경우 다리와 도로 등 새로운 사회기반시설 건설로, 하회마을은 건축물 복원의 재료 문제로 문화유산의 진정성이 일부 훼손됐다고 평가했다. ‘로마의 지혜’를 살려 500년 전 반가의 삶이 고스란히 후세에 전해지길 기대한다.
김정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