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륭 한림대 명예교수(왼쪽)와 안주현 중동고 교사
대담
성경륭 한림대 명예교수
안주현 중동고 교사
이제 3년 차 사업 추진에 들어선 한국판 뉴딜은 2022년 목표를 “많은 국민이 뉴딜의 성과를 일상 삶에서 체감하는 해”로 설정하고 있다. <공감>은 대한민국 대전환을 기치로 하는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가 우리 사회경제 변화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왜 필요한지 일반 시민이 묻고 전문가가 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성경륭(68) 한림대 명예교수는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봄,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26개 국가정책연구기관을 총괄 지휘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현재 한국판 정책의 밑그림인 ‘한국판 뉴딜 정책 보고서’를 만들었다. 성경륭 명예교수는 지금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농산어촌유토피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포용국가 비전’에 포함되는 주요 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정책기획가다. 일반 시민으로 대담에 참여한 안주현(38·서울 중동고 과학담당) 교사가 성경륭 교수와 2022년 1월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안주현 교사가 “지금 왜 뉴딜인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성경륭 교수는 코로나19 등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위기가 닥쳤을 때 ‘뉴딜 처방전’이 효과적인 현실 정책으로서 보편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1929년 대공황 직후 미국에서 하루아침에 뉴딜 패키지가 모두 수립된 건 아닙니다.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나서 1930년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해마다 새로운 뉴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추가되면서 확장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것이 미국을 살렸고 전 세계 경제공황과 부채 문제에 대응하는 해결 방책으로 뉴딜을 하면 된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지금 코로나19 충격은 우리 사회 모든 영역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고 한국판 뉴딜은 거기에 대응하는 성격을 갖습니다. 휴먼 뉴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이 3대 축이고 이 사업들이 실제로 실행되고 적용되는 건 각 지역이므로 ‘지역균형 뉴딜’이 함께 포함된 구조죠.”
Q 기존 정부 정책과 차별화된 것은 무엇인가?
A 혁신 가속화하되 ‘사회적 포용’ 보완하는 것
안 교사는 먼저 한국판 뉴딜이 기존에 각 정부부처가 해오던 정책과 완전히 다른 것인지, 차별화된 정책들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성 교수는 “기존의 혁신을 가속화하되 거기에 ‘사회적 포용’을 보완하는 것이 뉴딜의 기본 성격”이라고 말했다.
“대공황 때처럼 실업자와 사회경제적 약자를 우선 살리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 발전과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혁신 정책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존 정부 사업의 지출예산을 더 늘리고 끼워 넣는 방식이 아니라 포용의 철학과 정신, 원리를 기초로 삼고 불평등 해소 같은 우리 사회의 당면 핵심 문제를 규정하고 정책적으로 해결해가는 쪽으로 뉴딜 사업을 확충하는 것이 좋겠지요.”
안 교사는 “한국판 뉴딜을 조금 공부해보니 수십조 원 투자 같은 디지털 프로젝트보다 청년정책, 격차 해소, 사회안전망·고용안전망 구축 등 휴먼 뉴딜이 더 많은 사람의 일상적 삶에 해당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혁신투자나 인프라, 하이테크 투자는 고용 총량을 늘리겠지만 특히 청년 고용을 늘리고 급여·소득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하이테크 투자는 오히려 고용을 줄이는 생산공정제어기술이 대부분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지능형 공장(스마트팩토리)이 그것이죠. 제조 대기업에서 근로자 1인당 보급 대수인 ‘로봇 밀집도’가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높습니다.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D.N.A.)으로 대표되는 혁신투자는 고용을 줄이는 자동화 경향이 있습니다. 휴먼 뉴딜 투자로 개개인의 직무·학습 역량을 기르는 인재 양성 기반이 형성되면 이제 기업도 사람을 줄이기 어렵게 될 겁니다. 우리는 요소 투입형 성장에서 투자 주도 성장으로 이행했는데 이제는 사람의 역량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높이고 추상적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는 역량을 키우는 문제 해결형 뉴딜 투자가 교육 분야에 더 많아질 필요가 있지요.”
Q 국가가 해야 할 포용적 혁신 위한 조치는?
A 피해집단 지원하고 기본생활 더 보장해야
안 교사는 ‘포용적 혁신’과 휴먼 뉴딜이 추구하는 목적에서 흡사한 것 같다며 “혁신이라고 하면 기존의 것을 완전히 새로 바꾸고 뒤집어엎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이 중요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자 성 교수는 이른바 ‘혁신의 딜레마’ 용어를 활용해 이렇게 답했다.
“사실 초기 혁신자는 대부분 시장 약탈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연구개발 투자와 혁신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창업과 기업의 신규 투자가 늘어 경제가 급속 성장하고 고용도 늘고 매출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혁신기업에 투자자금이 쏠리고 기술이 점프하는 과정에서 혁신 참여자와 기업 쪽으로 수익이 모두 몰리고 사회경제적 격차가 더 벌어지죠. 말하자면 ‘혁신 딜레마’인데 이것을 방치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커집니다. 그린 뉴딜 전환에도 중급·고급 기술 개발이 사업으로 들어가 있는 터라 이 혁신 딜레마가 앞으로 더 심화될 수도 있죠. 물론 불평등을 키운다는 걱정 때문에 혁신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요. 혁신을 하더라도 포용적으로 해야 한다는 정신과 철학이 한국판 뉴딜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럼 국가가 해야 할 ‘포용적 혁신을 위한 조처’는 어떤 것일까?
“혁신과 그 이익을 보는 과정에 ‘타다(렌터카 기반의 승차 공유서비스)’ 사례에서처럼 피해를 보는 집단과 당사자들을 함께 참여시켜야 하죠. 지금처럼 펀드(국민참여형 뉴딜펀드: 2022년 2000억 원 규모로 조성해 뉴딜펀드 투자 성과를 국민과 공유)를 만들어 피해를 입는 사람과 집단을 지원하고 특히 직업전환 교육을 국가가 돕거나 세금을 더 거둬 복지지출로 기본 생활을 보장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과학담당인 안 교사는 “기후변화, 탄소중립, 친환경 이슈를 다루는 수업을 해보려 생각 중”이라며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비대면 수업으로 당장 학교에 와이파이 설치가 시급한 해결 과제이고 특히 디지털에서 소외되거나 적응이 늦어 뒤처지는 교사와 학생을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한국판 뉴딜 사업을 실감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그린 뉴딜 사업으로 ‘그린 스마트 스쿨’ 484개 학교(2021년)를 선정했다. 2021~2025년 총 18조 원을 투입, 지은 지 40년이 넘은 학교 건물 2835동(1400여 학교)을 개축 또는 새 단장(리모델링)한다. 또 디지털 뉴딜 사업으로 초·중·고 교실 38만 실에 와이파이 설치(2022년 2월까지), 태블릿PC 24만 대 보급 등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교육인프라 확충도 꾀하고 있다.
Q 기후변화 대응 위한 시민 실천 방안은?
A 에너지 자립형 주택 짓고 생활 방식 바꿔야
성 교수는 한국판 뉴딜에 대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종횡무진으로 풀어냈다. 코로나19, 기후변화 등 당면 현안과 현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수도권과 지방의 발전 격차, 계층 간 소득·고용 격차 해소를 거쳐 한류로, 21세기 우리나라와 자본주의 문명에 한국판 뉴딜이 갖는 의의로 그리고 ‘글로벌 뉴딜’까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결국 ‘포용적 사회를 위한 뉴딜’로 흘러들며 집약됐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그린 뉴딜을 살펴보면 기업을 위주로 하는 투자 프로젝트가 많은 것 같네요. 기후변화에 대처해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실천할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안 교사가 물었다.
“산업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 원리가 결합한 것을 산업자본주의라고 하죠. 이윤추구와 경쟁 원리가 혁신을 촉진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런 원리가 지배하면서 탄소중심 에너지 사용 등으로 자연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어요. 윤리적으로 개개인이 특별히 탐욕적이라고 탓할 건 아니고 이런 시스템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개인이 더 늦기 전에 에너지소비량을 줄이는 자립형 주택을 짓고 온갖 지혜를 동원해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하죠. 한국판 뉴딜에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 많아요.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가 자연에서 진행되는 현상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감응하고 행동하는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Q 휴먼 뉴딜이 일상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A 사람 역량 기반의 성장체제로 전환해야
안 교사는 “문재인정부에서 2022년 말까지 2년 반가량 한국판 뉴딜을 시행하는 셈인데 이 사업이 혹시 축소·중단된다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성 교수는 “한국판 뉴딜은 장기적으로 지속·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판 뉴딜은 일이 터진 뒤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사전에 선제 대응하는 뉴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개인적으로 2016~2017년에 이미 우리 사회에 뉴딜정책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사회경제 불평등이 심화되고 가계부채가 늘고 불안정 고용으로 소득이 줄어들면서 점점 소득·고용 격차가 커져 여러 지방 경제도 축소되고 흔들렸어요. 그런 징후가 보일 때 사전적으로 뉴딜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은 대공황으로 사회경제가 무너지고 일이 터진 후에 시작됐지만 우리는 예방적 뉴딜을 하자고 오래전부터 정책 토론회 등에서 발언하고 연구도 했습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촉발 작용을 한 셈이죠.”
한국판 뉴딜 정책 보고서는 주요 국책연구기관들이 힘을 모아 집중 작업을 거쳐 2020년 6월 말에 완성됐다. 애초 뉴딜 정책 보고서는 ‘휴먼 뉴딜’을 우선 축으로 삼았는데 2020년 7월 한국판 뉴딜 정책 사업이 착수될 때는 코로나19발 경제위기 상황에서 급한 대로 경제활력과 성장동력 기반 회복·강화를 위해 ‘디지털 뉴딜’이 먼저 시작되고 이어 ‘그린 뉴딜’로 확장되는 과정을 거쳤다.
“학습하는 주체로서 우선 ‘사람투자’에 집중해 교육과 직업 역량 강화를 국가가 돕고 건강·의료도 지원해야 합니다. 2021년 7월에 휴먼 뉴딜이 또 다른 축으로 들어오고 지역균형 뉴딜까지 가세하며 한국판 뉴딜 2.0으로 완성된 구조로 바뀌었죠. 지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 중에 ‘패밀리 투자’도 건강·의료, 등록금 부채 감면 등 사람투자에 맞춰 있어요. 앞으로 한국판 뉴딜 투자 순서에서 휴먼 뉴딜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성 교수는 또 “세계 다른 국가들이 코로나19에 헤매고 있을 때 우리가 먼저 재정투자를 많이 해 뉴딜로 치고 나간 것”이라며 휴먼 뉴딜을 축으로 한국판 뉴딜이 지속·확장되면 ‘포용국가로 전환’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글 조계완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