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훈련장에서 도깨비 문양이 그려진 헬멧을 쓴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한겨레
이 선수를 주목하라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종목은 쇼트트랙이다. 우리나라는 쇼트트랙이 동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때 김기훈이 우리나라 최초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뒤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우리나라는 그간 올림픽에서 나온 쇼트트랙 168개 메달 가운데 48개를 가져왔고 총 56개의 금메달 가운데 24개(약 42%)를 따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 31개 가운데 약 77%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다만 최근 쇼트트랙 대표팀은 각종 악재로 우려를 샀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대표팀은 2021년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부진했고 결국 이번 올림픽 남녀 500m 출전권도 각각 2장(최대 3장)밖에 얻지 못했다.
▶이상호가 1월 8일 스위스 스쿠올에서 열린 2021∼2022 국제스키연맹 스노보드 월드컵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이상호는 이날 동메달을 땄다.│국제스키연맹
‘최강’ 쇼트트랙… 최대 5관왕 가능해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쇼트트랙 대표팀은 하나로 똘똘 뭉쳐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24)은 월드컵에서 입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이 없다. 호랑이띠 최민정은 오히려 ‘검은 호랑이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겠다는 의지에 불타고 있다. 그는 “최근 쇼트트랙이 부진하다는 말이 많았는데 이번 올림픽에서 ‘역시 쇼트트랙은 대한민국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선수들 모두가 잘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평창 대회에서 2관왕(1500m·3000m 계주)을 차지했던 최민정은 이번 대회에서 혼성 계주가 추가된 만큼 최대 5관왕까지 노릴 수 있다. 최민정은 “몇 관왕이라고 (목표를) 정해놓진 않았지만 평창 때보다 출전 종목도 늘어났고 경험도 쌓인 만큼 최대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이징 빙질이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나는 정말 좋았다. 진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실감이 나고 생각대로 준비를 잘 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황대헌(23)도 이번 대회서 맹활약할 선수로 꼽힌다. 황대헌은 남자 1000m 세계 신기록(1분20초875) 보유자로 그간 아시아 선수가 약하다고 평가받은 500m에서도 ‘큰일’을 낼 수 있는 선수로 꼽힌다. 실제 그는 평창 대회 때 5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쇼트트랙 대표팀이 전체적으로 부진한 가운데서도 2021년 10월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황대헌은 “최고의 컨디션으로 올림픽에 나가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목표다. 좋은 성적은 같이 따라올 거라고 믿고 있다. 준비했던 것들을 모두 보여주고 나올 수 있는 경기를 치르면 좋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대표팀 에이스로 성장한 그는 “에이스라는 이름에 따라오는 책임감이 있다. 그렇지만 그 무게를 안고 좀 더 잘 준비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월 5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미디어데이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한겨레
‘은에서 금으로’… 이번엔 메달 색 바꿀까?
스노보드 간판 이상호(27)는 설상 종목 최고 기대주다. 평창 대회 때 우리나라 스키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긴 그는 이번 대회에선 금메달에 도전한다.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다. 이상호는 2021년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 네 차례 나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따냈다. 랭킹 포인트 300점으로 시즌 종합 1위다.
이상호는 “이번 대회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라며 “금메달은 그때 운도 따라야겠지만 지금 현재로써는 모든 준비가 잘되고 있다. 큰 문제 없이 준비만 잘하면 메달권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상호는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배추밭을 개량한 눈썰매장에서 스노보드를 시작해 ‘배추보이’라고 불린다. 그는 이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해 가장 존경하는 선수인 김연아(32)가 피겨스케이팅의 새 역사를 썼듯 스노보드에서 새 역사를 쓰고자 한다.
이상호가 금메달을 따내면 그간 빙상에 치우쳤던 우리나라 겨울 스포츠의 저변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뿐만아니라 아시아에서 16년 만에 나온 스키 종목 금메달이기도 하다. 이상호는 “지난 연말 좋은 성적을 내니 많은 분이 ‘힘든 상황에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열심히 해서 많은 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영미! 영미!” 외침으로 세계를 달군 여자컬링 대표팀 ‘팀 킴’도 출전권을 확보하고 막판 담금질에 한창이다. 마지막 실전 점검 기회였던 그랜드슬램 대회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취소됐지만 임명섭(39) 감독은 “아쉽긴 하지만 다른 팀도 똑같은 상황이다. 남은 기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잘 준비하도록 하겠다”며 “과정에 집중하고 훈련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올림픽에서 좋은 경기력이 발휘될 것이고 메달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유영이 1월 9일 경기 의정부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연합
“영미! 영미!” 여자컬링 ‘팀 킴’의 각오
특히 컬링팀은 어려움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모습이다. 리드 김선영(29)은 “평창 대회 이후 여러 과정을 겪으며 팀이 한 번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 베이징올림픽 참가는 정말 뜻깊은 기회이기 때문에 더 잘 준비하고 있다. 팀 전체가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자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평창 때도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했던 것처럼 이번 베이징에서도 한 경기 한 경기 차근차근히 해나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선 김연아를 보고 자란 ‘김연아 키즈’들도 올림픽에 도전한다.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은 2014년 소치 대회에서 김연아가 은메달을 딴 뒤로 아직 메달이 없다. 이번 대회부터는 본격적으로 김연아 키즈들이 올림픽 무대에 도전장을 던지기 시작한다. 여전히 올림픽 메달과는 거리가 있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쏘아 올리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여자 피겨 간판 유영(18)이 대표적이다. 유영은 많은 피겨 유망주들 가운데 ‘포스트 김연아’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만 6세 때 피겨를 시작한 유영은 2016년부터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해 1월 70회 한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만 11세 8개월 나이로 우승을 차지하며 김연아가 2003년 세운 종전 최연소 우승 기록(만 12세 6개월)을 13년 만에 깼기 때문이다. 2021년 2월엔 국제빙상경기연맹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김연아 이후 11년 만에 이 대회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여자컬링 국가대표 팀 킴이 2021년 12월 17일 네덜란드 레이와르던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자격대회 여자 4인조 조 2·3위 결정전 일본과 경기에서 스톤을 던지고 있다.│세계컬링연맹
위대함에 도전하는 ‘김연아 키즈’들
유영은 이번이 첫 올림픽 도전이다. 평창 대회 때(만 13세)는 피겨 유망주 자격으로 올림픽기를 들고 개회식에 참가했다. 4년 사이 국가대표로 성장해 올림픽 무대에 도전하는 셈이다. 이번 대회에선 그가 지금까지 갈고 닦았던 트리플(3회전) 악셀 등 고난도 기술을 올림픽이라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펼칠 수 있을지가 주된 관전 포인트다.
그는 국내 여자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트리플 악셀을 할 수 있다. 다른 경쟁자를 의식하기보다는 스스로 준비한 연기를 잘 펼치며 차세대 피겨 스타로서 ‘유영’이라는 이름을 각인하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남자 피겨에선 차준환(21)이 평창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 도전에 나선다. 평창 때 17세 나이로 최연소 올림픽 출전을 기록했던 그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202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0위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톱10’에 들었고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는 3년 만에 동메달을 따냈다. 아직 네이선 첸(미국), 하뉴 유즈루(일본) 등 세계적인 선수들보다 ‘쿼드러플(4회전)’ 점프 성공률이 낮지만 자기 강점을 잘 살려 성공적으로 연기를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우리나라 선수단은 1월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선수단 결단식을 열고 1월 말 선수단 본진을 파견할 계획이다. 윤홍근 선수단장은 “코로나19로 2년 이상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피땀 흘려서 올림픽을 준비했다”며 “메달을 따고 성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포츠맨으로서 투혼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감동, 희망, 용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준희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