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매생이굴떡국
떡/국/
설이다. 올해 설은 좀 이르다. 설이면 으레 떡국을 준비한다. 잡채니 갈비찜, 전 등 세찬(歲饌)이야 해도 그만 없으면 섭섭한 정도지만 떡국만큼은 꼭 한 그릇 먹어야 비로소 설을 맞는 분위기가 난다. 정월 원일(元日)이 설인 까닭이다. 옛날부터 있었다. 조선 조정은 설이 되면 대신부터 여러 직위에 근무하는 이들에게 쌀과 고기, 생선, 소금 등을 하사했다. 사대부들도 어려운 일가에게 설을 쇨 세찬 거리를 보냈다고 한다.
때가 겨울이니 눈밭의 꿩을 잡고 이를 삶아 육수를 낸다. 떡국을 끓이기 위함이다. 그 국물에 가래떡을 길게 빚어 동전 모양으로 썰어 넣은 것이 바로 떡국이다. 쌀도 귀할 터이니 떡이야 오죽했을까? 좋고 귀한 재료로 만든 세찬 음식은 특별한 의미를 담았다. 우리네 떡국은 맛도 좋지만 장수와 재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더욱 특별하다. 뜨거운 국물과 매끄러운 떡을 뜨고 여기다 칼칼한 김장김치를 얹어 먹으면 자꾸 나이만 먹는 설이 그래도 왜 반가운지 깨닫게 된다.
새해 음식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중국은 춘절(설)에 만두(餃子)를 빚는다. 지나가는 해와 새해 이 두 해가 엇갈리는 설을 자오즈(角字)라 하는데 공교롭게도 만두와 발음이 같은 까닭이다. 설에는 부엌에 불을 쓰지 않기 때문에 따로 요리를 하지 않고 미리 만들어둔 편육과 만두, 떡을 먹는다. 이 떡이 바로 니엔가오(年?)다. 전통 설 떡이다. 이 역시 ‘새해에 좋은 일이 일어나라’는 녠가오(年高)와 발음이 같다.
일본은 설은 따로 쇠지는 않지만 양력 1월 1일에 전통 세찬인 오세치를 먹는다. 도시락처럼 찬합에 각각의 의미를 지닌 음식을 담아 설 연휴 내내 먹는다. 긴 수염을 가진 새우는 장수를 뜻하고 청어알은 자손을 의미한다. 노란 밤은 황금을 닮아 재물운을 상징한다. 오세치는 원래 집에서 만들었지만 요즘은 유명 음식점에서 주문해 먹는다. 값도 보통 비싼 게 아니다. 보통은 몇 십만 원짜리부터 수천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는 메밀국수를 먹는다. 국수 가락이 식도를 타 넘고 넘어가는 의미를 담아 도시코시(年越し)소바라 부른다. 장수의 의미를 담았다. 떡국도 있다. 오조니라 불리는 일본판 떡국은 장국에 찹쌀떡을 넣어먹는다. 매우 부드럽고 차지는 까닭에 급히 먹기란 의외로 어렵다. ‘누워서 떡먹기’란 원래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미국의 대표 새해 음식은 ‘호핑 존’이다. 동부 콩, 쌀, 베이컨, 양파 등을 볶은 음식으로 여기에도 의미를 담았다. 동부콩은 동전(coin), 채소는 지폐(note)를 뜻한다. 남부 흑인 노예음식에서 유래했다.
이탈리아에선 돼지 족발 소시지 참포네와 렌틸콩을 곁들인 ‘코테키노 콘 렌티치’를 세찬음식으로 먹는다. 이탈리아인들은 이 음식을 먹어야 한해를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땅을 긁어대지 않는 돼지와 조리시 양이 늘어나는 렌틸콩은 재산 증대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선 ‘왕의 파이’ 갈레트를 먹는다. 갈레트를 구울 때 ‘페브’라는 작은 도자기 인형을 넣어 행운을 점친다. 인형이 들어있는 빵을 집으면 당장 특별한 대접과 함께 새해 행운이 깃든다고 믿는다.
스페인에서도 보신각 타종처럼 새해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종소리에 맞춰 포도 12알을 먹으며 새해를 맞는다. 또 1월 6일이 되면 프랑스처럼 작은 인형을 넣은 ‘동방박사의 빵’ 로스콘 데 레예스를 굽는다. 과일을 많이 넣은 달달한 빵이다.
그리스도 마찬가지로 동전이나 장신구를 넣은 바실로비타 케이크를 먹는다. 맛은 카스텔라와 비슷하니 폭신한 케이크다. 독일은 돼지 모양 도넛 모양 쿠기 마지팬 피그를 만들어 먹는다. 다만 행운을 찾는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스와는 반대다. 빵에 겨자소스를 숨기는데 이 빵을 먹는 이는 새해에 불행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외에도 네덜란드는 건과류가 든 도넛 올리볼렌을 만들어 먹는 등 사람 사는 세상은 거의 비슷하니 맛난 것을 만들어 먹으며 새해를 자축한다.
설날 이외에도 떡국을 파는 식당은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메뉴인 덕이다. 떡만둣국으로 맛보거나 조랭이떡국, 굴떡국, 매생이떡국 등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 요즘 떡국은 사골육수에 끓이고 꾸미로 간장에 조린 소고기, 달걀지단, 김가루 등을 올려서 낸다. 고기 조림은 간을 맞추고 풍미를 더라기 위함인데 두부와 고기를 함께 조려 쓰기도 한다.
▶떡국
전국의 떡국 맛집
★전남 장흥 매생이굴떡국
국내 처음, 아니 세계에서 매생이를 처음 재배한 전남 장흥군에서 매생이떡국을 판다. ‘토정황손두꺼비국밥집’은 토요시장 내에서 국밥도 팔고 장흥 한우삼합도 차리는 집인데 겨울엔 매생이와 굴, 키조개 내장까지 넣고 끓여낸 매생이국을 낸다. 바다 향기를 품은 부드러운 매생이가 절로 식도를 타고 넘어 들면 한끼가 든든하다. 8000원.
★서울 인사동 조랭이떡국
서울 인사동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개성만두 궁’은 이제 세계적 명소가 됐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4년 연속 ‘빕그르망’으로 선정했다. 개성 토산음식인 눈사람 모양 ‘조랭이떡국’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입안에서 또글또글 구르다 졸깃졸깃 씹히는 식감이 재미있다. 이북 음식답게 슴슴하고 담백한 육수를 쓴다. 직접 빚은 고기만두를 함께 넣은 떡만둣국으로 즐기면 풍미가 좋다. 가래떡 만둣국도 따로 판다. 1만4000원.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