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요괴 / 마누엘 마르솔, 카르멘 치카, 김정하, 밝은미래
숲의 요괴
마누엘 마르솔, 카르멘 치카, 김정하, 밝은미래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다 보면 내 속에 차곡차곡 저장돼 있던 무언가가 완전히 소진됐음을 느낄 때가 있다. 한동안 까만 바닥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면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다시 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나 또한 그렇다. 하던 일을 일단 접고 혼자 시간을 보낸다거나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아 대화와 함께 차나 술을 마신다거나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거나.
그 여러 가지 시도 중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그림책이다. 복잡한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갖가지 생각들을 잠시 끄고 시원한 판형을 한껏 채운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다시 차오른다. 지금 소개하고 싶은 <숲의 요괴>는 훌륭한 대안이다.
이 그림책에는 마르솔이라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마르솔은 배달부다. 매일매일 트럭을 운전해서 이쪽 마을에서 저쪽 마을로 가야 한다. 커다란 산 하나를 넘어서. 그러자면 늘 마음이 급하다. 갈 길은 멀고 배송은 늦어지면 안 되니까.
그런데 오늘은 그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시간은 없는데 갑자기 용변이 급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마르솔은 산길에 트럭을 잠시 멈추고 아무도 없는 숲속으로 들어간다. 짧은 순간, 그 누구보다도 달콤한 여유를 만끽하고 있음이 그림책 속 그의 표정에서 보여 웃음이 난다. 자, 이제 다시 일을 하러 가 볼까? 그런데 이상하다. 어느 길로 들어왔더라? 볼일은 마쳤는데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마르솔은 당황해서 이 길, 저 길 다니며 숲속을 헤맨다. 그리고 마르솔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낯선 무언가! 마르솔에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바쁜 일상을 보내다 문득 길을 잃었다고 느낀다면 이 그림책 <숲의 요괴>를 펼쳐 보라고 권해 주고 싶다. 잠시 길을 잃고 숲에 온전히 동화돼 숲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어떤 목표를 쟁취해야만 행복한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는 그 순간이 행복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마르솔을 통해 그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다.
길어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디로 한 걸음 옮기는 것도 조심스러운 요즘, 이 책 <숲의 요괴>가 까맣게 텅 비어 있는 당신의 마음에 따뜻한 변화를 불러오기를. 죽어 있던 오감을 깨우고 길을 잃었다가도 길을 찾는 것처럼 잃었던 나를 온전히 찾기를.
이현욱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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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