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천마총의 항공 촬영 모습. 1973년 발굴작업이 진행돼 총 1만 5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경북 경주시 원화로에 있는 안압지 야경. 지금은 안압지 대신 동궁(東宮)과 월지(月池)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경주시
경북 경주는 4050세대에게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필수 코스였다.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는 당시 최고의 ‘포토존’이었는데 친구들과 다닥다닥 붙어 찍은 단체사진은 누구나 학창 시절 추억으로 한 장씩 앨범에 꽂혀 있을 거다.
옛 정취가 물씬 나는 천년고도 경주, 지금은 환골탈태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이른바 핫플레이스다. 물론 2030세대의 경주여행 사진첩 풍경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한옥을 현대식으로 변형한 감성 만점의 카페와 맛집이 가득해 가장 ‘힙’한 장소로 꼽히는 황리단길, 예쁜 카페와 해변 풍광이 어우러진 감포항이 MZ세대의 인증사진 욕구를 자극한다. 두 곳 모두 경주 주요 관광지에서 가까운 이점도 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
어쩌면 과거 신라의 수도 경주 역시 지금처럼 생동감이 살아 꿈틀대는 다채로운 도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실제 천 년 왕조의 비밀이 담겨 있는 거대한 무덤군에선 이역만리 신문물을 받아들인 흔적을 여럿 확인했기 때문이다. 신라 왕조 발굴 사업은 1973년 천마총부터 시작했다. 총 1만 5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며 ‘세기의 발견’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발굴 6개월째 접어들 무렵 금동제가 아닌 높이 7.4㎝의 청색 유리잔이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잔은 로마산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이어진 황남대총 등의 발굴 작업에서도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것으로 관측되는 유리그릇이 출토됐다. 또 14호 고분에서는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석류석들이 장식으로 박혀 있는 이색 문양의 ‘경주 계림로 보검’이 나와 페르시아와 교류를 짐작하게 했다. 5~6세기 중국에 거주한 서역인이 들여온 유럽 물건이 대륙의 끝에 있는 신라까지 흘러온 것인데 그만큼 신라가 초원길·비단길 같은 무역로로 활발히 국제 교류를 한 국가였음을 방증한다.
수십 년 유지도 힘든 왕조를 천 년 가까이 지속하며 찬란한 문화유산의 꽃을 피운 신라, 그리고 신라의 중심도시 경주는 ‘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을 붙여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2000년)됐다. 유네스코는 불교 건축 및 생활 문화와 관련해 뛰어난 기념물과 유적지가 다수 분포해 있고 천 년에 이르는 신라 왕실의 탁월한 문화와 역사가 아직도 고스란히 도시에 남아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각, 탑, 왕릉 등 52개 문화재 등재
경주역사유적지구 명의로 등재된 문화재는 총 52개다. 조각과 탑, 궁궐지, 왕릉, 산성 등으로 주로 7~10세기 유적이 많다. 이들 문화재가 있는 구역은 성격에 따라 크게 다섯 곳으로 나뉜다.
우선 불교 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로 발길을 옮겨보자. 경주 남쪽에 있는 남산 곳곳에는 불상과 탑, 석등 같은 수많은 불교 유적이 있다. 남산 바위를 기단부로 세운 용장사지 삼층석탑과 바위 면을 그대로 이용한 마애불이 대표적이다. 남산 숲과 물이 좋다는 이유로 별궁 삼아 신라 왕족과 귀족이 풍류를 즐기던 포석정도 눈길을 끈다.
신라 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도 있다. ‘월성’은 신라 역대 왕의 궁성인데 인공 연못인 안압지와 첨성대 일대가 포함돼 있다. 안압지는 경주의 야경 명소로 달빛이 비치는 호수가 인상적이다. 월성의 남쪽 면은 절벽인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했고 나머지 동·서·북쪽 면은 흙과 돌로 쌓아 올렸다. 이곳에는 신라 궁궐의 위치와 전체 규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대릉원지구는 고분(옛 무덤)이 분포된 지역이다. 대릉원이라 불리는 황남리고분군은 신라 왕과 왕비, 귀족의 능이 모여 있는 곳인데 천마총과 황남대총, 미추왕릉 등 능 20여 기가 있다. 하지만 무덤 주인이 밝혀진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신라 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는 신라 유적지의 정점을 찍는 곳이다. 사실 황룡사는 고려시대인 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 건물과 불상의 주춧돌만 남은 폐사인데 그 터가 39만㎡에 이를 정도로 넓고 유물 4만여 점이 출토됐을 정도로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마지막으로 방어시설인 산성지구가 있다. 경주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인데 외부 침입을 대비해 여러 곳에 산성을 구축됐다. 이들 산성 가운데 경주역사유적지구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경주 동쪽에 있는 명활산성이다.
오늘날까지 2000년이란 세월의 풍화작용을 거쳐온 경주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전 세계 그 어떤 도시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자적 고유성을 간직하고 있다. 새로운 천 년의 역사를 향해 걷고 있는 신라의 미래는 또 어떤 도시의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줄까?
김정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