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시위에 나선 시민이 버스를 사이에 두고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소위 민주주의란 나라가 민주 인사를 죽이다니 이 같은 일이 세계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민주주의를 향한 이 절규는 41년 전 광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하 5·18)에 참여한 한 광주 시민은 자신의 일기장에 1980년 5월의 처참한 심정을 이같이 기록했다. 당시 국가보안사령관 신분이었던 전두환 씨는 5·18 진압 작전을 결심한 최종 책임자로 미국 국무부 비밀전문에 나온다. 살아서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전 씨가 2021년 11월 23일 향년 90세로 숨졌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입에선 ‘사과’란 말 한마디 없었다. 5·18은 시대의 아픔이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민주·인권·평화가 깃든 5·18정신은 광주를 넘어 전 세계 민주화 운동사에 길이 보존돼 있다. 유네스코는 2011년 5월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이란 명칭으로 5·18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렸다.
세계기록유산은 인류사적 가치가 있는 기록유산을 보존하려고 1992년 신설됐다. 5·18 발생과 군사 진압, 진상 조사, 보상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향해 외친 시민의 장엄한 서사는 사료의 다양성 측면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꿋꿋이 눌러쓴 사료이기에 그 소중함을 더 한다.
▶1980년 5월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시민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5·18기념재단
‘1980년 인권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 선정
5·18은 1980년 5월 18~27일 광주에서 일어났다. 1979년 10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뒤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고조됐다. 하지만 권력 부재를 틈타 신군부가 군사쿠데타를 다시 일으켰다. 이에 반정부 시위가 끓어오르자 전국으로 계엄령이 확대됐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시민 역시 시위에 동참했고 신군부는 이를 진압하려고 공수특전단을 급파했다. 군은 시민을 무자비하게 공격해 열흘 동안 165명이 사망했다. 실종자가 76명, 부상자가 3383명에 이르렀고 102명은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2010년 1월 구성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는 같은 해 3월 유네스코 본부에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뒤 여러 차례 수정·보완을 거쳐 심의 통과를 성사시켰다.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5·18 기록물은 편철 약 86만 쪽, 흑백필름·사진 2000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주제는 총 아홉 가지로 분류돼 있는데 국가기관이 생산한 5·18 자료와 군사법기관 재판 자료, 시민의 성명서·선언문·취재 수첩·일기, 피해자 병원 치료 기록,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증언 등이다.
5·18정신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나선 필리핀과 태국,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다른 국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전 세계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향상의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도시빈민협의회 와르다 하피즈 사무총장은 “5·18 후 이뤄진 한국의 인권 성장은 아시아 인권운동의 모범”이라고 평가했고 스리랑카의 실종자기념회 단데니야 자얀티 회장은 “5·18은 인권 투쟁에서 영감의 원천”이라며 “(동아시아에 만연된) 관습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행태를 타파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5·18은 지금도 진행형
5·18이 견지한 문제 해결의 다섯 가지 핵심 원칙인 ▲진상 조사 ▲가해자 처벌 ▲명예 회복 ▲보상 ▲기념사업은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인권침해의 보상 규칙을 결정할 때 모범 기준이 되기도 했다.
1980년 고등학교 1학년이던 고 문재학 씨는 5·18 마지막 날 계엄군에 희생됐다. 그렇게 막내아들을 잃은 김길자 씨는 한국방송 프로그램 <시사 직격> 인터뷰에서 “재학이는 지금도 폭도야. 전두환이 스스로 발포 명령했다고 하면 누명이 벗겨질 텐데 그 말을 안 하고 죽었잖아. 너무너무 불쌍해. 이렇게 죽었는데 누가 죽였다는 사람은 없잖아. 내 자식은 누가 죽였을까”라고 말했다.
5·18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 실체는 가공된 자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내용이 담긴 1차 사료로 규명될 때 불편한 진실을 오롯이 직시할 수 있다.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5·18 기록물의 가치가 소중한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과거를 반복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
김정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