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 캔버스에 유채, 116×91cm, 2013
전문가들은 자기 전공 분야 지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는 도로 위 교통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차가 별로 없어 막힘없이 쌩쌩 달리는 새벽 고속도로는 기체, 신호등에 한두 번 멈출 뿐 물 흘러가듯 자연스레 달릴 때는 액체, 출퇴근 시간 강변북로나 명절 때 고속도로처럼 꼼짝없이 꽉 막힌 정체 상태는 고체라고. 또 어떤 화가는 눈이나 비가 오는 것을 보면서 점(點)과 선(線)을 떠올린다. 바람에 흩날리며 내리는 눈송이는 점, 주룩주룩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선 같다고 말한다. 이 역시 그럴듯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선이라는 낱말은 참 묘하다. 직선이나 곡선 같은 모양새뿐만 아니라 땅 위에 그어진 ‘금’이나 뭔가를 묶는 끈 같은 ‘줄’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러면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금’은 넘으면 안 되고 밟아서도 안 되는 금지, 경계를 상징한다. 더 나아가 분단이나 단절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반면 ‘줄’은 그 반대다. 핏줄, 밧줄 또는 학연, 지연처럼 어떤 연대감으로 이어져 묶이고 얽힌 공동체 같은 느낌을 준다.
▶선무, ‘판문점에서’, 캔버스에 유채, 116×91cm, 2018
북한 탈출해 우리나라 정착한 ‘새터민’
지도에서 볼 수 있는 선 역시 미묘하긴 매한가지다. 어떤 선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어떤 선은 가상으로 그어진 허구의 선이기 때문이다. 도로나 강줄기 등을 표시한 선은 실재한다. 하지만 좌표를 나타내는 위도(緯度)와 경도(經度), 항로와 해로 같은 선은 실제로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38선’과 ‘휴전선’이야말로 허구와 실재를 대표하는 선이다. 38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위도는 적도(0도)를 기준으로 평행하게 가로로 남북으로 각 90도로 나눈 가상의 선이다. 38선은 북위 38도를 지나는 허구의 선일 뿐이다.
반면 250km에 이르는 휴전선은 우리 눈앞에 또렷이 실재한다. 휴전선의 물리적 실체는 가시철조망.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새삼 일깨워주는 분단의 강력한 증거물이다. ‘휴전(休戰)’ ‘정전(停戰)’이란 말처럼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한 채 70여 년이 흘렀다. 여전히 불안한 평화다. 전쟁의 상처, 분단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선무(線無)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화가가 있다. 원래 이름은 최??. 본명을 버리고 스스로 새 이름을 지었다. 한자 뜻대로 ‘선이 없다’라는 의미다. 여기서 선은 경계, 국경을 뜻한다. 짐작대로 선무는 북한을 탈출해 우리나라에 정착한 ‘새터민’이다. 가족을 두고 홀로 남한으로 내려왔다. 본명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아직 북에 남아 있는 부모 형제의 안위를 생각해서다.
1970년대 태어난 선무는 북한에서도 화가가 되고 싶었다. 미술지도자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에 다니던 중 탈북을 결심했다. 차디찬 두만강을 헤엄쳐 건넜다. 중국에서 무국적자로 막노동을 하다 다시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건너갔다. 밀림을 헤매다 잡혀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태국을 거쳐 드디어 2001년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난 지 3년 만이다.
2003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그동안 개인전도 여러 차례 열었고 굵직한 기획전에도 참여하며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선무, ‘수학려행’, 캔버스에 유채, 193×130cm, 2009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
독일과 미국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 베이징에서 열려던 개인전은 개막 당일 중국 공안의 방해(?)로 결국 무산됐다. 2015년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나는 선무다>는 그때 상황과 선무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근엔 서울 근교 작업실에 입주해 작업하고 있다. 작품을 팔아 생활하는 전업 작가의 삶인데, 우리나라 사람보다는 외국인이나 해외 동포들이 주로 작품을 구입한단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현대미술에 익숙한 우리 눈에 선무 그림은 낯설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지 북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도식화된 주제 형상과 자극적이고 선명한 색채, 은유 없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와 문구. 선전·선동의 도구로 활용되는 프로파간다(선전·선동)의 전형이다. 달리 말하면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풍’이라 하겠다. 한편으론 1960~1970년대 학교에서 많이 그렸던 ‘반공(反共)’, ‘불조심’, ‘쥐잡기’, ‘새마을’ 포스터가 겹친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광화문으로 수학여행 온 북한 학생들, 전 세계 순회공연 일환으로 뉴욕에서 공연하는 평양 학생 소년들,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라며 두 손 맞잡은 남북의 아이들.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한 경계인 화가가 그림으로 소망하는 미래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