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소천면의 여성농업인 치유캠프 ‘다락방’은 여성농업인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의 쉼터로 활용된다.
정부·사회혁신 및 적극행정 등 문재인정부의 주요 제도혁신 성과를 수혜 현장과 수혜자의 말을 통해 소개합니다. 이번 호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을 여성 농업인을 위한 쉼터로 만든 경북 봉화군의 여성 농업인 치유캠프 ‘다락방’ 사례입니다. <편집자 주>
여성농업인 치유캠프 ‘다락(多樂)방’
누구도 찾지 않던 낡은 공간이 여성농업인을 위한 휴식과 문화생활 공간으로 변신했다.
2020년 6월 경북 봉화군 소천면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즐거운 공간이 하나 생겼다. 여성농업인 치유캠프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락(多樂)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때로는 강의실로 때로는 회의실로 때로는 다과실로 변신한다. 한편에는 유아 전용 놀이터와 도서실도 갖춰져 있다. 20여 평 남짓한 공간은 소천면 여성농업인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농촌에서 여성농업인의 삶은 어떨까? 각종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농업인들이 농사일과 함께 가사도 전부 부담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와 생업으로 인한 여성 농업인들의 삶의 만족도는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귀농·귀촌과 다문화 가구의 증가로 농촌지역은 새로운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이런 소외된 환경과 인구 변화 속에서 친목과 소통 그리고 교육할 수 있는 복합 공간의 필요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낮에는 힘든 농사, 집에 돌아와서는 끝이 없는 가사, 마을회관에서는 도맡아하는 음식과 설거지. 일상에 여유가 없는 여성농업인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을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마음의 짐을 서로 나누며 웃음꽃이 필 수 있는 공간이 여성농업인에게 절실하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의 여성농업인 치유캠프 ‘다락방’은 여성농업인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의 쉼터로 활용된다.
행안부 국민디자인 과제 공모사업 선정
이는 봉화군에 여성농업인 치유캠프 다락방이 만들어진 까닭이기도 하다. 봉화군의 여성농업인 수는 2019년 기준 5811명으로 전체 농업인 1만 1033명의 약 53%에 해당할 정도로 비율이 높다. 여성농업인의 행복이 중요한 이유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인식한 마을주민들은 봉화군과 함께 여성농업인 생활환경 개선에 나섰다.
2019년 봄, 봉화군은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국민디자인 과제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지역 주민과 여성농업인 그리고 전문가와 공무원으로 구성된 국민디자인단을 꾸렸다. 수요자를 조사하고 관찰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지역 여성농업인의 요구를 파악했다. 거기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정책발향을 설정하고 공간설계에도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해 추수철이 끝난 11월부터 소천면 복지회관의 2층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됐다. 40년 넘게 노후화된 공간이 주민들의 힘으로 새롭게 탈바꿈됐다.
당초 2020년 2월부터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개관이 잠정 중단됐다가 6월 9일 다락방 개관과 함께 프로그램 운영이 시작됐다. 프로그램 선정뿐 아니라 운영주체도 마을주민이다. 즉 주민책임 운영방식에 따른다. 봉화군과 소천면은 행정과 재정적 지원을 돕는다.
첫 번째 문화강좌는 소천면 여성농업인들이 가장 원했던 ‘생활 꽃꽂이’로 정해졌다. 생활 꽃꽂이 강좌는 농사일을 마치고 참여할 수 있는 저녁시간대로 두 달간 진행됐다. 기념사진 속의 소천면 여성농업인들의 얼굴은 꽃보다 활짝 피어 있었다. 그 안에는 손자와 함께 온 할머니도 보였고 아이와 함께 온 엄마도 보였다. 또래 친구들이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도 다락방은 신나는 놀이터가 됐다.
강좌를 수강한 소천면 여성농업인 15명은 온라인으로 소통의 기회를 넓혔다. 누리소통망(SNS)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좀 더 자유롭게 소통을 이어가며 이웃과 마음의 벽을 허물어 나갔다.
▶소천면 주민들이 ‘다락방’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민참여형 정책의 결실
그 결과 여성농업인 치유캠프는 2020년 경상북도 혁신부문 최우수상에 이어 정부혁신 왕중왕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낡고 쓸모없던 공간이 여성농업인을 위한 치유 공간으로 변신했고 그 과정에서 여성농업인들이 공간 활용계획을 직접 짜는 등 주도적으로 참여한 점이 호평을 받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다락방의 문은 열고 닫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소천면 여성농업인들은 그럼에도 행복하다.
“시골마을에서 문화강좌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도시인들은 모를 거에요.”
여성농업인 힐링캠프 김숙란(57) 대표는 다락방이 가져다준 문화생활의 기쁨을 이야기했다. 꽃꽂이 강좌 참가 소감을 적은 메모에서도 그 행복함이 전해진다.
“정서적인 위안이 되었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이런 시간이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하고 농촌에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주세요.”
도시와 농촌 간 문화적 혜택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여전히 크다는 것이 다시금 느껴졌다.
김 대표는 다락방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주민이 원하는 정책을 주민이 직접 참여해 설계한 곳이에요. 얼마나 소중하고 그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정책 설계 단계부터 완성까지 당사자인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적극 반영해 일궈낸 주민참여형 정책의 결실이다.
성과는 더 있다. 김 대표는 외진 시골마을에서 공간 혁신이 가져온 지역의 활기를 또 하나의 큰 장점으로 꼽았다.
“아무도 찾지 않던 낡고 어두웠던 공간이 밝고 활기찬 공간으로 변신했어요. 여성농업인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이용문의도 증가하고 있어요.”
▶여성농업인들이 ‘다락방’의 첫 문화강좌 ‘생활 꽃꽂이’에서 만든 꽃을 들어보이고 있다.
▶‘다락방’에서 한 어린이가 책을 읽고 있다.
여성농업인의 행복지수 향상에도 한몫
이어 김 대표는 새로운 이웃과 나누는 교류의 장점도 덧붙였다.
“소천면에 귀농·귀촌한 가구가 많아요. 전체의 20~30% 정도 차지해요. 대부분 40, 50대들인데 다락방에서 얼굴을 익히게 돼 참 좋았어요. 몰랐던 것을 배우고 또 우리가 아는 것을 서로 공유합니다.”
소천면의 여성농업인들은 새로운 인구유입에 따른 갈등을 소통으로 해소해 나가고 있었다. 농촌지역의 새로운 주역인 여성농업인에게 다락방의 의미는 좀 더 깊어 보였다.
“이곳에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내 이름으로 불려요. 배움을 통해 나 자신을 가꾸고 만들어 갑니다.”
여성농업인의 행복지수 향상에도 다락방은 톡톡히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단계적 일상회복이 진척되면 더 적극적으로 다락방 운영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을 추수 끝나고 우리 농산물 가지고 차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어요. 내가 지은 농산물로 같이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어요. 비트차도 만들고 생강청도 만들어 여럿이 나누고 상품으로도 판매하면 더더욱 좋고요.”
여성농업인의 행복한 삶터, 일터, 쉼터를 여성농업인들은 직접 가꿔 나가고 있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경북 봉화군
국민이 정책 기획과 개발에 직접 참여
국민정책디자인이란?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국민정책디자인’은 정책 수요자인 국민, 서비스디자이너가 공급자인 공무원과 정책과정 전반에 함께 참여해 서비스디자인 기법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개발·발전시키는 국민참여형 정책모델이다.
서비스디자인은 수요자가 상황에서 느낀 경험과 감성을 분석해 필요에 맞게 서비스를 개발하는 디자인 방법론이다. 공공분야에 이를 접목하면 정책 수요자인 국민들에게 효과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집행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디자인 사고를 반영한 정책에선 수요자인 국민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기존에도 정책모니터단이나 국민 제안 등 국민참여 방법이 있었지만 일방통행적 정책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국민디자인단 정책은 국민들이 정책 기획과 개발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효율성과 신뢰도가 높다.
2014년 시범도입 이후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그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2020년까지 약 1500개 이상 과제에 1만 5000여 명이 참여해 정책과 서비스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했다. 수요자의 이익과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 중심의 정책 디자인 활동으로 국민참여형 정책개발의 대표적 방법으로 정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