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박태영 국제경제국장(왼쪽부터)과 이동규 기후환경과학외교국장, 김정하 유럽국장이 유럽순방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선도국가 정상외교 의미와 과제
문재인 대통령이 7박 9일 동안 유럽을 순방하고 11월 5일 귀국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데 이어 헝가리를 국빈 방문하는 등 숨 가쁜 일정이었지만 성과가 적지 않았다.
한층 격상된 우리나라의 위상을 실감했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도 확인했다. 세계 정상들은 우리의 모범적 방역과 경제 회복, 문화 분야의 성공,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 등 기후위기 극복 의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가교로서 선도적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유럽 내 우리나라의 최대 투자처로 부상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비세그라드 그룹(V4)’과는 과학기술, 에너지, 인프라까지 경제협력의 폭을 넓혔다.
11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외교부 담당 국장인 박태영 국제경제국장, 이동규 기후환경과학외교국장, 김정하 유럽국장을 만나 유럽순방이 갖는 의미와 성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박태영 외교부 국제경제국장
-G20 정상회의가 코로나19로 2년 만에 대면으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습니다.
=(박태영 국제경제국장) G20 회의는 세계 경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협의체로 어떤 경제 협의체보다 중요하고 선진국과 개도국이 10개국씩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게 장단점이 있는데 합의를 이루기 어렵지만 합의를 이루면 그만큼 확실하게 국제 협치(거버넌스)로 발전하고 이행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지금 전 세계가 당면한 ▲코로나19로 인한 보건 문제와 경제 회복을 어떻게 할 것이냐 ▲시급하면서도 중장기 과제인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어떻게 같이 포용적으로 성장하고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것이냐 이 세 가지 주제를 논의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어떤 거버넌스를 만들지 논의하는 자리에 문재인 대통령이 단순한 일원이 아니라 상당히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고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보건위기 극복과 관련해 G20의 리더십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높았는데 어떤 결과물이 나왔나요?
=(박 국장)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인데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한 자리 숫자인 국가들도 많거든요. 이번 회의에서는 2022년 중반까지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70%까지 백신을 접종할 수 있게 협력하기로 합의했고요. 글로벌 백신 허브 전략 아래 여러 백신을 생산하는 우리나라는 백신 생산을 증대하는 역할을 통해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를 통한 다자 차원의 백신 공여든 양자 차원의 백신 공여든 접종률 70%를 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진영에 있긴 하지만 개도국 진영을 이해하면서 같이 이끌어 나가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동규 외교부 기후환경과학외교국장
-우리나라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실감하셨나요?
=(박 국장) 다른 나라 정상들이 발언할 때 우리나라가 어떤 사안을 모범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언급하거나 여러 나라를 거론하면서 우리나라를 꼭 얘기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로부터 같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싶은 상대국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요.
또 G20 회의의 일부분은 아니지만 공급망 글로벌 정상회담이란 것을 미국이 급하게 주최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초청받아서 갔고요. 14개 참여국 가운데 문 대통령이 제일 먼저 선도적 발언을 하면서 논의를 주도하는 걸 보면서 세계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위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아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지난 5월 말 우리나라가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탄소중립을 위해 해외 석탄 발전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선진국들은 우리나라가 경제적 실익을 포기하면서 기후변화라는 국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이후 일본이 동참했고 그 다음에 놀랍게도 중국이 동참했고 이번에는 터키가 동참했습니다. 이처럼 상징적이고 과감한 정책 결정을 통해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김정하 외교부 유럽국장
-G20 회의가 끝나자마자 영국 글래스고에서 COP26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동규 기후환경과학외교국장) COP 정상회의는 매년 열리는 게 아니고 2015년 파리 협정을 체결한 회의 이후 6년 만에 개최됐고요. 그만큼 세계 정상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감과 경각심 때문에 모였다고 볼 수 있는데 단순히 만나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준비와 조율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선도적 역할과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4월에 미국 워싱턴에서 기후 정상회의를 비대면으로 개최했고 그다음에 한미 정상회담이 있지 않았습니까? 놀랍고 자랑스럽기도 했던 것이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여러번 “한국하고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트너”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냥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얘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거 아니다. 진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진정한 파트너로 한국이 먼저 들어오면 개도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호주와 같은 선진국들도 석탄 발전 지원 포기 같은 변화가 가능하고 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더라고요.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P4G 회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미 간의 조율도 있었고 유럽연합(EU)과 협력을 거쳐 글래스고에 문 대통령이 참석한 거고요. 그런 노력과 우리나라의 역할을 평가받아 기조연설뿐 아니라 의장국 프로그램인 ‘행동과 연대’에 참석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다른 프로그램을 생각했었는데 영국이 ‘행동과 연대’야말로 우리나라가 와서 꼭 선도 발언을 해줘야 한다고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나는 외교부에서 15년 이상 기후변화 이슈를 담당하고 있는데 15년 전에는 우리나라가 호주와 함께 석탄 발전을 많이 했기 때문에 선진국들한테 이른바 ‘기후 악당’이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 COP26을 준비하면서 또 글래스고에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자랑스러웠습니다.
-COP26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NDC 상향 40%를 발표했는데 국제사회의 평가는 어땠나요?
=(이 국장) 처음에는 사실 걱정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모든 국가가 2010년 대비 최소 45%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권고했는데 국내 논의 과정에서 나온 감축 목표가 40%였습니다.
걱정하면서 반응을 지켜봤는데 예상보다는 상당히 긍정적 평가가 많았습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면서 경제 발전을 한 한국이 그래도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책임감을 바탕으로 상당히 야심적 목표를 가져왔다”, “다른 나라들도 같이 따라서 했으면 좋겠다”는 반응들이 있었고요. 이제 각국의 감축 목표를 어떻게 이행할까가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되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미국이나 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행을 어떻게 할 건지 같이 논의하고 협력했으면 좋겠다”면서 파트너로서 우리나라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헝가리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4일(현지시간) 부다페스트 바르케르트 바자르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한·비세그라드 그룹(V4) 공동 언론 발표에서 공동번영의 길로 나가자고 밝히고 있다.│청와대
-헝가리 국빈방문은 김대중 대통령 방문 이후 20년 만입니다.
=(김정하 유럽국장) 헝가리의 중요성에 비해 너무 오랜 기간 우리 정상이 방문을 안 했던 겁니다. 1980년대 말 우리가 북방 외교를 시작할 때 옛 동구권 가운데 가장 처음 수교한 나라로 우리 북방 외교의 출발점이죠. 또 공산주의에서 체제 전환을 성공적으로 하고 지금은 경제 성장률이 아주 높아 V4 국가들과 함께 유럽에서 일종의 경제 성장 엔진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 쪽으로 우리 기업의 투자가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체 투자액이 약 21억 달러(약 2조 4885억 원)인데 그 가운데 70~80%가 최근 3년 동안 전기차 분야에 투자한 것입니다.
헝가리 정부는 G20과 COP26 회의에서 우리나라가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해 나가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는 기술이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에 분명히 할 수 있을 거라며 재생에너지라든지 수소에너지, 탄소 저감 기술 등 기술적 협력에 정상회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집중했고요. 앞으로 제조업이나 전기차 배터리를 넘어 과학기술이라든지 기후변화, 환경 등으로 협력을 확대하자는 의미에서 이번에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습니다.
-V4가 생소한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가요?
=(김 국장) V4는 중유럽의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등 네 나라가 1991년도에 창설한 지역 협의체입니다. 이들 국가는 EU 경제 성장률의 2~3배 이상 높은 성장을 하고 있고 우수한 노동력도 풍부해서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도 이쪽에 공장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도 일찌감치 진출했는데 체코에는 연 35만 대 생산 규모의 현대자동차 공장이, 슬로바키아에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습니다. 헝가리와 폴란드에는 최근 들어 전기차 배터리 공장들이 많이 세워지고 있고요. 우리로서는 유럽과 경제협력에서 뺄 수 없는 중심 지역입니다. 네 나라를 합치면 독일 다음으로 우리가 수출을 많이 하고 투자는 제일 많은 지역입니다. 헝가리는 2019년 외국 투자 가운데 우리나라가 최대 규모였다고 합니다.
사실 네 나라 정상들이 날짜 맞춰서 한번에 모이기가 쉽지 않거든요. 문 대통령이 한 자리에서 총리 네 사람과 정상회의하고 끝나고 또 양자회담하면서 나눈 얘기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체코와 폴란드는 원전 추진하는 것도 있고 폴란드는 신공항 건설에 인천공항공사가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어서 앞으로 사업이 본격화하면 우리 기업들이 참여할 가능성도 큰 나라입니다. 슬로바키아와는 이번에 우리나라의 FA-50 공군기 수출을 위한 산업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방산 협력도 확대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글 원낙연 기자, 사진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