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르, ‘그랑드 오달리스크’, 캔버스에 유화, 91×162cm, 1814, 루브르박물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양미술사에서 신고전주의는 18세기 말 하나의 사조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 19세기 초반 무렵까지 절정을 이뤘다. 신고전주의 미술의 특징은 질서와 비례, 엄격한 구도와 이상적인 미의 추구, 이성과 합리성, 사실성 존중 등으로 요약된다. 반면 신고전주의와 거의 동시대에 등장해 19세기 중반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낭만주의는 정반대의 노선을 걸었다. 개성, 감성, 주관, 비합리성, 자유, 상상력 등을 강조했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가 첫손에 꼽힌다. 고대 로마시대의 영웅적 서사와 프랑스대혁명, 나폴레옹 황제 등을 소재로 한 장엄한 역사화로 유명한 프랑스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다비드와 함께 신고전주의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는데 바로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다.
19세 때 신고전주의의 선구자이자 당대의 실력자였던 다비드의 밑으로 들어가 사사한 앵그르는 초상화와 누드 그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아카데미 양식을 존중한 그는 고전주의의 계보를 이어나가면서도 독특한 공간 창출과 형태의 과감한 왜곡을 통한 이상적인 조형미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고전주의 미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현대미술의 시대가 열리는 데 주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실 성적 노예 내세워 관능미 부추겨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도시 몽토방에서 태어난 앵그르는 초상화가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고향에서 50km 떨어진 툴루즈 왕립 아카데미에 들어간 것도 아버지의 뜻이었다. 17세 때에는 예술의 본고장 파리로 가서 쟁쟁한 화가들의 그림을 직접 보며 심미안에 눈을 떴다.
자신의 재능과 아버지의 지원에 일찍부터 예술적 안목을 넓힐 수 있는 큰물을 경험한 그는 21세 때 로마대상을 수상하며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5년 뒤 로마로 유학을 떠난 앵그르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며 고대 로마 미술과 르네상스 회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당대 최고의 신고전주의 화가가 되기 위한 기틀을 다졌다.
1813년 앵그르는 이탈리아 나폴리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 나폴리 왕국의 왕은 나폴레옹의 최측근 조아킴 뮈라(1767~1815), 왕비는 나폴레옹의 막내 여동생 카롤린 뮈라(1782~1839)였다. 미술 애호가로 앵그르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카롤린은 한 점의 그림을 주문했다. 그 그림이 바로 ‘그랑드 오달리스크’다.
오달리스크는 오스만투르크 황제 술탄의 은밀한 욕구를 밀실에서 충족시키는 여자 시종이다. 19세기 초, 유럽 사회에는 이슬람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분출했는데 특히 황제의 몸종으로 쾌락과 성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오달리스크가 그림의 주제로 자주 등장했다.
서양미술사에서 누드화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신화 속 여신이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관례였다. 그런 점에서 오스만투르크 황실의 성적 노예인 오달리스크를 알몸으로 내세워 관능미를 한껏 추켜세운 이 그림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1814년에 완성된 그림은 1819년 살롱 전시에 출품됐는데 예상대로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회화의 원리 원칙을 신앙처럼 추종한 정통 고전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정작 비난의 화살은 누드화의 전통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이 모델로 등장한 점을 겨냥하지 않았다.
모델이 서구 여자만 아니라면 실제 인물이라도 상관없다는 유럽인들의 배타적인 속셈 때문이었을까? 고전주의자들은 알몸으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여인의 신체 표현이 해부학적으로 왜곡됐다는 점을 융단폭격했다. 허리와 팔이 기형적으로 길고 뼈도 근육도 없는 것처럼 묘사돼 도무지 사람의 몸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미의 기준 무시하고 왜곡된 기법 구사
그림을 보면 왼팔을 침대에 기댄 여인의 허리가 유난히 길게 강조됐다. 지나치게 긴 허리 때문에 엉덩이의 위치가 현실적이지 않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인체 비율이다. 오른팔이 부자연스럽게 긴 것도 마찬가지다. 오른 다리 위에 걸친 왼 다리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겨드랑이에 바싹 붙은 가슴은 더 이상하다. 한마디로 해부학적 지식을 무시한 엉터리 인체 묘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독설은 어디까지나 자칭 전문가인 틀에 박힌 원칙주의자들에게 국한됐을 뿐 대중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의 대담성과 함께 여인의 몸은 곡선미의 전형, S자 형태의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부드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살결은 또 어떤가? 비례와 관계없이 여인의 몸 전체에서 관능미가 넘쳐흐르는 이 그림의 매력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데생 실력이 남달랐던 앵그르가 해부학적 표현이 서툴렀을 리 만무할 터. 인체 왜곡은 앵그르의 의도에서 비롯됐다. 아름다움은 대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감 나게 화폭에 이식할 때가 아니라 화가가 자신의 철학과 감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재해석할 때 빛을 드러낸다는 것이 앵그르의 지론이었다. 화가는 태생적으로 미를 목적으로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것은 화가의 자유의지가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인의 관능미와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만 있다면 해부학과 황금비율 등 관행적인 미의 기준을 무시하고 왜곡된 기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앵그르의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여인의 몸을 중심으로 한 전경에 무게중심을 둔 구도와 푸른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커튼, 손에 쥐고 있는 깃털 부채, 흰 연기가 나는 향로 등 동양풍의 소재를 재질의 느낌이 온전히 드러나게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은 고전주의 회화의 전형적인 산물이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