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연극 <수상한 흥신소> 배우들이 관객들과 인사하고 있다.
기지개 켜는 대중문화계
코로나19 여파로 오랜시간 힘들었던 대중문화계가 단계적 일상회복 시행으로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그동안 대중문화계는 코로나19로 영화 상영은 물론, 공연과 콘서트 등의 행사가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공연이 중단되고 배우들 생계까지 위협을 받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행되면서 영업시간 규제도 해제됐고 백신 접종 완료자의 경우 좌석 띄우기도 해제됐다. 접종증명·음성확인제(방역패스)와 좌석 띄우기 등을 실시하면 500명 이상 공연 관람도 가능하게 됐다. 이에 공연장은 백신 접종 완료자만 받을 경우 전석 입장할 수 있으며 영화관에서는 그동안 불가능했던 취식도 가능해졌다.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한껏 기대감에 들떠 있는 공연장과 영화관 현장을 다녀왔다.
▶11월 3일 서울 대학로에서 관객들이 연극을 보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서울 대학로에 연극을 관람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 한겨레
대면 공연 재개한 연극계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 위치한 한 소극장. “아니~ 내 첫사랑 000! 왜 거기 앉아있니? 옆에 있는 그 남자는 누구니?!” 객석을 바라보며 외치는 배우의 한마디에 관객들이 배꼽빠지게 웃으며 뒤로 넘어간다. 무대 위 배우들은 공연내내 쉴새없이 관객들의 웃음을 빵빵 터뜨렸고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관객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하는 시간. 이전에는 몰랐던 행복이다. 당연했던 일상이 이토록 소중했다는 것을!
연극 <수상한 흥신소>는 2010년 초연 이후 3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대학로 최고 흥행작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연극 역시 코로나19 이후 극장이 줄어들고 공연이 잠정 중단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매번 만석을 자랑했던 공연장은 텅텅 비었고 매출이 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제작사측은 4개로 운영하던 극장을 1개로 줄이고 온갖 대출을 끌어들여 손실을 메우면서 지금까지 겨우 버텼다. 그러던 중에 들려온 단계적 일상회복은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공연 관계자 표정필 씨는 “대학로는 사람들이 식사하고 공연이나 영화를 본 후 술을 마시는 소비흐름으로 돌아가던 장소였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공연뿐만 아니라 대학로 모든 상권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이번 단계적 일상회복은 자영업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라고 반색했다.
▶11월 3일 대학로 CGV에서 무인발매기에서 사람들이 표를 발권하고 있다.
“마스크 벗고 소통하는 날 오길 희망”
마음 고생했던 배우들 역시 “이제야 살 것 같다”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배우 황미선 씨는 “처음 공연이 중단됐을 때는 ‘이 참에 좀 쉬어야겠다’고 좋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기약없이 길어지니까 너무 힘들었다”며 “다시 관객들을 만났을 때는 감격스러워 계속 눈물이 났다. 관객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극계 경력 10년이 넘은 배우 지상록씨는 “공연이 중단된 동안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그 시간들을 견뎌왔다”면서 “아직까지는 관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보는데 이제 곧 마스크까지 벗고 얼굴 보며 소통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배우 김영환 씨는 “백신 접종률이 70%가 넘으면서 관객들도 심리적인 부담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면서 “연말연시에는 240석 규모의 공연장이 꽉 차면 좋겠다”고 밝혔다.
단계적 일상회복은 평소 공연문화를 사랑하던 관객 입장에서도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연극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관객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너무 재미있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대학로에 나와 연극을 관람했다는 한 젊은 연인은 “원래 연극과 공연을 자주 보러다녔는데 그동안 공연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다시 공연장에 앉아서 연극을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 설레고 흥분됐다. 이제야 제대로 데이트하는 느낌”이라고 말하며 경쾌한 발걸음을 옮겼다.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 시행 첫날인 11월 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관람객이 팝콘과 음료를 구입하고 있다. 방역패스 도입 시 취식을 허용함에 따라 접종 완료자는 영화관에서 팝콘과 음료를 먹을 수 있다. | 연합
취식 가능해진 극장가
11월 첫 주 극장가도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울 대학로 CGV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기 위한 관객들이 삼삼오오 입장하고 있었다. 대학로 CGV는 10개 상영관 중 3개의 ‘백신(방역)패스관’을 운영하고 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는 코로나19 이전처럼 극장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방역패스관은 백신 2차 접종까지 모두 마치고 14일이 경과한 관객만 입장할 수 있는 상영관이다. 방역패스관에서는 팝콘이나 핫도그 등 음식물 취식이 가능하며 띄어 앉기가 해제된다. 일반 상영관은 종전대로 좌석간 띄어 앉기가 적용되며 음식물 섭취가 불가하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관객은 일반 상영관과 방역패스관 모두 선택이 가능하다.
황재현 CJ CGV 커뮤니케이션 팀장 "방역패스관은 20~30% 규모로 시작해 관객 반응과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점진적으로 늘리겠다"며 "백신 접종을 마쳤어도 타인의 음식물 섭취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관객들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이럴 경우엔 음식물 섭취가 안되는 일반 상영관을 선택하도록 안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염 위험도가 낮고 코로나19로 크게 어려움에 처한 업종을 중심으로 이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며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을 크게 반겼다.
▶11월 3일 서울 대학로 CGV에 방역패스관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방역패스관 운영, 영화는 역시 팝콘과 함께!
이날은 마블스튜디오의 <이터널스>가 개봉했기 때문인지 유난히 젊은 층의 관객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자동발매기를 통해 표를 발권한 후 음료와 팝콘을 사서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친구와 영화를 보러 온 박 모씨는 “평소 좋아하던 영화를 보기 위해 친구와 함께 왔는데 방역패스관이 있다고 해서 콜라와 팝콘을 샀다”며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본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더 기대가 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11월 첫 주 CGV의 관객수는 전주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황 팀장은 “11월 첫 주의 관객수는 10월 마지막주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면서 “단계적 일상회복과 동시에 방역패스관 도입, 유명 블록버스터 영화의 개봉 시점이 맞물려 더 큰 효과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대작이 개봉하면 회복세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터널스>에 뒤이어 11월 18일 웨스 앤더슨의 <프렌치 디스패치>, 24일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가 스크린에 걸린다. 우리나라 영화도 즐비하다. 11월 10일 장혁과 유오성 주연 액션누아르 <강릉>이 개봉한 데 이어 17일 류승룡 주연 코미디 <장르만 로맨스>, 24일 윤계상 주연 추적 액션 <유체이탈자> 그리고 전종서와 손석구 주연 <연애 빠진 로맨스> 등이 준비 중이다.
황 팀장은 "2020년 1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고 관객수를 기록하는 한 달을 기대하고 있다”며 “대유행이 잠시 주춤했던 2020년 8월에 세운 880만 명이 최고 기록인데 11월에는 그 수준을 뛰어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장가의 이런 분위기 전환은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에 발맞춰 내놓은 소비쿠폰도 한몫하고 있다. 203만 명에게 6000원 할인권(주당 1인 2매·복합상영관 기준)을 지급해 저렴한 가격으로 감상할 수 있다. 적용되는 영화관은 멀티플렉스를 비롯해 독립·예술영화관, 작은 영화관, 개별 단관 극장 등 전국 521곳이다.
공연(연극, 클래식, 오페라, 무용, 국악) 분야에서도 온라인 공연 관람시만 적용되던 ‘소소티켓’이 11월 1일부터 오프라인 공연으로 전면 확대됐다. ‘소소티켓’은 소중한 일상, 소중한 문화티켓이라는 뜻으로 8000원 할인권을 2주마다 온·오프라인 합쳐 1인 4매씩 받을 수 있으며 회차당 1장(1만 원 이상 공연시)씩 사용할 수 있다.
글·사진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