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종전선언

2021.11.01 최신호 보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18년 10월 18일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18일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처음 전달했다. 한 달 전 있었던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흥분과 기대가 아직 식지 않은 때였다. 당시 교황은 “북한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며 방북 의사를 보였지만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남북미 대화가 크게 위축되면서 더 추진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그로부터 3년 만인 10월 29일 다시 교황청을 방문해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번 방문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수행단에 포함돼 교황의 방북 논의가 더욱 깊게 이뤄졌을 거라는 기대감이 높다.
정부는 화해와 평화의 상징인 교황의 방북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교황도 일관되게 방북 의사를 피력했기에 교황의 방북 카드는 살아 있다. 실제로 성사된다면 한반도 종전선언의 역사적 서막을 여는 ‘빅 이벤트’가 될 것이다.

교황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그러나 상황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3년 전에 비해 남북관계는 답보 상태고 코로나19 유입을 우려하는 북한이 대외 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미지수다. 전 세계에 백신이 보급되면서 일부 국가들 위주로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19 방역 비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초, 국경을 아예 봉쇄한 이후 8월에는 국경 1∼2km 내에 방역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접근한 사람과 짐승을 무조건 사살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인도적 지원 업무를 하는 국제기구 직원들도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 주재 중국대사도 아직 부임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북한은 아직 교황을 공식 초청하지 않은 상태다. 문 대통령은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교황의 방북 초청을 제안했으며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이 오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이 교황 초청에 대해 밝힌 바는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종전선언 기대감이 남아 있는 이유는 미국이 우리 정부의 종전선언 구상(이니셔티브)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10월 18일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난 뒤 “종전선언 제안을 논의했다”고 취재진에 말했다. 이어 10월 24일에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노규덕 본부장과 비공개 회동 직후 “한국의 종전선언 제안을 포함해 다양한 아이디어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우리는 북한을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여전히 돼 있고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적대적 의도도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면서 “북한이 긍정적으로 응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 본부장 역시 “워싱턴에서 가졌던 협의의 연장선상에서 오늘 김 대표와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진지하고 심도 있는 협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와는 말 그대로 하루가 멀다하고 시간, 장소,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김 대표는 5월 2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됐다.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미국의 북한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위직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는 스티브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이 겸직하던 자리였다. 사실상 미 외교 최고위급 인사가 북한과 종전선언 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얘기다.

무르익는 한미 간 종전선언 협의
비건 전 부장관의 대북특별대표 직책명에는 ‘North Korea(북한)’가 들어갔지만 성김 대표 직책명에는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 들어갔다는 점 또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향적 대북 기조를 보여준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공식 국호를 성김 대표 직책명에 넣음으로써 협상 상대로서 북한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한다.
앞서 10월 12일에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는 등 한미 간 북한 관련 협의는 5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꾸준히 강화된 양상이다. 이미 한미 간에는 종전선언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 제시에서 더 나아가 세부 사항까지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서훈·설리번 회동 당시 우리 정부 당국자는 “종전선언에 대한 우리 구상을 상세히 설명했고 미국의 이해가 깊어졌다”고 말한 바 있다.
한미 양측이 종전선언 관련 문안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미 우리 정부의 종전선언에 대한 큰 그림을 미국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물밑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전후의 대북·대미 외교는 트럼프 행정부의 특성을 고려해 전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 개인 성정에 초점을 맞춘 외교였다면 이번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공든 탑이 무너지랴’ 식의 신중과 정성의 기조가 엿보인다.
미국 내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북제재 완화 등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 주한 미국대사 등을 역임한 도널드 그레그 전 대사는 최근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언급하며 북한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과 관계 개선이라는 점을 꿰뚫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한 헤럴드경제 기자
(북한학 박사·한국기자협회 남북통일분과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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