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13년 만에 레트로봇이 절치부심하며 내놓은 신작인 <포텐독> 등신대 옆에 선 이달 대표
‘똥 밟았네’ 열풍 애니메이션 기업 레트로봇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아침 먹고 땡 집을 나서려는데….”
유니폼을 입은 청년, 하이힐을 신은 직장인,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어린이가 이 황당한 상황을 춤을 추며 노래로 설명한다.
‘똥 밟았네’로 이어지는 중독성 강한 후크송(짧은 후렴구에 반복된 가사로 사람의 귀를 사로잡는 대중음악)과 한때 보았던 K-팝 안무가 귀와 눈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칼군무와 아이돌 특유의 표정으로 마무리해 음악 방송을 방불케 하는 카메라 움직임도 재미있다.
이 영상은 EBS 채널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포텐독〉 시즌2의 한 장면인 ‘똥 밟았네’ 뮤직비디오다. 유튜브에 공개한 지 한 달 만에 조회수 500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시대에 아이와 어른 구분 없이 모두가 <포텐독>을 즐기며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를 극복하고 있다.
“이 재밌는 걸 애들만 보고 있었나” “포텐독과 함께라면 코로나 시대 집콕도 두렵지 않다”라는 댓글이 달리는가 하면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 들으면 집중력이 떨어질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뜻으로 ‘수능 금지곡’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아이돌도 따라 추고 인기 캐릭터인 펭수도 따라 추고 너도나도 안무를 따라 한 영상을 올렸다. 코로나 시대에 신박한 즐거움을 안겨준 제작사를 찾아가 이달 대표를 인터뷰했다.
▶‘똥 밟았네’ 뮤직비디오 갈무리
▶극장판 ‘또봇’(2017)│레트로봇
K-애니의 꿈을 향해
‘똥 밟았네’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포텐독〉의 제작사 레트로봇은 2008년 설립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기업이다. 공전의 히트작인 〈또봇〉 시리즈를 제작한 곳이기도 하다.
〈또봇〉 시리즈는 우리 문화를 섬세하게 포착해 어른 사이에서도 소문났던 3차원(3D) 로봇 애니메이션이다. 2010년에 방영을 시작해 〈또봇V〉(2018)까지 꾸준히 새로운 시즌을 선보였다. 동남아와 일본 등 약 20개국에 수출했다. 레트로봇은 〈또봇〉 시리즈로 K-애니의 꿈을, 그 가능성을 보여준 제작사다.
“애니메이션에 뛰어들었던 2000년대 초반은 북미가 주요 시장이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작품에 우리나라 요소를 배제해야만 했다. 답답했다. 내가 나고 자란 문화 배경을 배제하고 재밌는 아이디어를 도출하긴 힘들었다. 문화를 제거하니 개성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우리의 동시대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동시대 문화를 담겠다는 K-애니의 꿈을 향해 7년을 매달려 키운 〈또봇〉 시리즈 저작권은 레트로봇에 없다. 전부 투자사에 양도됐다. 창사 13년 만에 레트로봇이 절치부심해 내놓은 신작이 〈포텐독〉이다.
〈포텐독〉은 부모님의 반대로 반려견을 키우지 못하는 ‘원석’이 인간과 공존하려는 포동넷의 잡종견 ‘카이’를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초능력을 가진 개들이 악당과 싸우는 슈퍼히어로물 형식을 빌려 “개에게 인간은 반려자일까?”라고 묻는다. 이야기 중간에 노래가 들어가고 등장인물들이 이에 맞춰 춤을 추는 뮤지컬 형식의 애니메이션이다.
▶<포텐독>의 한 장면. 우리의 문화적 장치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레트로봇
▶<포텐독>의 한 장면. 우리의 문화적 장치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레트로봇
어린이 취향 맞춰 K-팝 안무 접목
‘똥 밟았네’는 24화 ‘개똥 테러 사건’에 삽입된 곡이다. 24화에서는 주인공 원석이 키우는 반려견 카이(포텐독)와 대립하는 골드팽 일당의 술수로 동네 전역이 개똥으로 난리가 난다. 똥을 밟은 주민들이 화를 내다가 갑자기 그 분노를 노래와 춤으로 표현한다.
뮤지컬 장르를 도입한 이유는 뭘까? 이달 대표는 부가 수익을 내기 위한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배경 설명을 대사보다는 노래로 하면 재밌겠다 싶었고 〈또봇〉에서 시도해본 경험도 있어 욕심을 내봤다.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도 컸다. 초등학생이 주 시청층인 〈포텐독〉은 〈또봇〉처럼 비싼 완구가 통하지 않는다. 당시 아이돌그룹 ‘아이콘’의 노래 ‘사랑을 했다’가 초등학생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 곡을 떼창하는 모습을 보고 감을 잡았다. 동요가 아닌 K-팝을, 따라 부르기 쉬운 감성을 원한다는 것을. 앞으로 키즈팝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지금 어린이들의 취향에 맞춰 K-팝 안무를 접목했다.”
〈포텐독〉은 하나부터 열까지 지독하게 한국적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가 〈포텐독〉의 주요 배경이다. 〈개 혼자 산다〉와 같이 인기 예능을 패러디한 요소도 보인다. K-애니답게 인테리어부터 건물 모양, 의상, 음식까지 현재 우리 눈앞에 있는 것들이다.
▶사무실 입구 한편에 전시된 변신 로봇 <또봇> 시리즈 완구들
공공의 제작 지원 사업 변화해야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제작했다. 연출자인 제가 음악을, 직원들이 노래를, 댄스 동아리 출신인 딸이 춤을 췄다.”
이 대표가 들려준 ‘똥 밟았네’의 넘치는 뒷이야기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웃픈(웃기고도 슬픈) 현실이다.
“영화나 게임, 음악과 비교하면 유독 많이 뒤처져 있다. 회사도 가난하고 급여도 적어 젊은 사람들이 진로를 잡지 않는 악순환이다. 애니메이션은 메인 프로덕션 준비만 1년~1년 반 정도 한다. 애니메이터 한 명이 하루에 4초 분량을 작업한다. 노동집약적 작업인 데다가 작업 사이클이 길다. 그런데 투자자는 빠른 결과를 선호한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와 지원이 필요할까? 이 대표는 심도 있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화와 비교하자면 영화엔 총 제작비와 순 제작비 개념이 있다. 마케팅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마케팅 개념이 전무하다. 제작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것이 제작사 몫이다. 마케팅에 대한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이 대표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공의 제작 지원 사업에도 변화를 촉구했다.
“평가 항목 중엔 사업화나 부가 사업이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가 크게 차지한다.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다. 애니메이션을 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사업 구상을 면밀하게 계획하는 어려운 임무를 요구한다고 본다. 기획 단계인 제작 지원에서 사업 부분을 평가하는 게 모순적이다. 평가 틀을 바꿔야 한다.”
2022년 말 시즌3 예고
인기 비결에 대한 질문에 이 대표의 “수요 없는 공급에 우리는 진지하다”는 말이 정곡을 찔렀다. 레트로봇이 걸었던 길을 뒤돌아보면 우리는 애니메이션 산업을 상향 확장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파워레인저〉가 20년간 무주공산으로 독점해온 시장에 레트로봇은 〈또봇〉으로 도전장을 내밀어 기세를 눌렀다.
그리고 지금 시청자층을 높인 〈포텐독〉을 내놨다. 초등학생만의 볼거리가 아니다. 어른 눈높이에도 맞다.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인 추세다. 〈포텐독〉은 코로나19로 집에만 머문 시간이 많아지면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로봇물이 아닌 히어로물이다.”
‘똥 밟았네’의 열풍은 수요 없는 공급에 진지한 레트로봇에 보낸 사인이다. K-애니 기준을 찾아 수요가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다. 이 대표는 “앞으로는 〈포텐독〉을 케이블이나 주문형 비디오(VOD)로도 만날 수 있다. 노래에 대한 관심 때문에 빠르게 계약할 수 있었다”며 애니메이션을 향한 관심으로 확장하길 소망했다. 〈포텐독〉은 2022년 말 시즌3를 예고했다. ‘똥 밟았네’의 배경도 노래도 춤도 익숙함으로 즐길 수 있는 K-애니가 참으로 고마운 지금이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