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택, ‘365일의 거주’, 한지에 수묵채색, 140×169cm, 2011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어언 76년. 하지만 곳곳에 그 잔재가 남아있다. 미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동양화’라는 용어가 그러하다. 종이(韓紙)에 수묵이나 채색을 하던 조선시대 전통회화는 원래 ‘서화(書?)’로 불렸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화’와 차별을 두기 위해 ‘동양화’라는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국적불명 명칭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은 자기네 전통 그림을 각각 ‘중국화’, ‘일본화’라는 고유명사로 이름 지었다. 우리는 여전히 동양화라는 명칭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물론 이에 반대해 ‘한국화’라고 지칭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술대학에서 학과 명칭이 ‘동양화과’ 혹은 ‘한국화과’로 혼용돼 사용되는 실정이다. 당연히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서양화’라는 명칭도 모호하기는 매한가지다. 한국화는 뭐고 서양화는 뭐란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이 서양재료로 그린 그림이 서양화라면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 재료로 그린 그림은 한국화란 말인가? 말장난 같은 이 문제는 쉽사리 답을 구할 수 없다.
논쟁의 발단은 해방 전후 혼란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완전한 근대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고희동(1886~1965)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최초의 서양화가’라고 알려진 인물 말이다. 초중고 미술시간에 그렇게 가르치고 배운다. 이것부터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게 아닐까?
고희동은 어려서부터 서화를 익힌 조선시대 화가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그러니까 1909년부터 1915년까지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졸지에 한국인 최초 서양화가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는 ‘서양화’ 또는 ‘서양화가’라는 용어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자랐다.
▶유근택, ‘샤워’, 한지에 수묵채색, 160×130cm, 2004
동양화가 서양화가가 아닌 ‘그냥 화가’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본다. 진짜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나라 사람 부모에게 태어난 사람, 지금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 귀화해서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사람? 이런 외적 요인에 따른 규정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우리나라 사람이 아닐까? 화가 역사 마찬가지다. 동양화가 혹은 서양화가, 뭐라고 불리던 스스로를 ‘그냥 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화가다. 유근택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생존 화가, 특히 동양화 분야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유근택을 손꼽는 데 주저하거나 이견을 가진 전문가는 별로 없다. 그만큼 미술계 안팎에서 인정받는 화가가 유근택이다. 중학교 때부터 동양화를 배웠고 홍익대와 동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성신여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와 교육자로 왕성히 활동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 분야 모두에서 제 몫을 해내는 보기드문 사례로도 손꼽힌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유근택 그림은 일반적으로 불리는 동양화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의 형식과 내용을 초월한 ‘현대적 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동양화가’가 아니라 그냥 ‘한국인 화가’라고 해야 한다.
유근택은 그림을 그릴 때 형식적으론 지필묵을 기본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호분(조개가루), 템페라(달걀 노른자, 벌꿀, 무화과즙 등을 접합체로 쓴 물감), 철솔(고깃집에서 불판을 닦을 때 사용하는 철 수세미를 생각하면 된다) 등 다양한 재료를 자유롭게 활용한다. 특히 최근작에선 그림 표면의 거친 마티에르(질감)가 눈에 띈다. 두꺼운 한지 표면을 철솔로 긁어 화면에 거칠게 입체감을 주면서 채색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동양화와 다른 느낌을 준다.
▶유근택, ‘분수’, 한지에 수묵채색, 135×135cm, 2008
옛 그림의 전통과 정신 현대적으로 구현
이런 형식실험과 별개로 유근택 작품에서 가중 중요한 지점은 내용적인 면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동양화는 관념적이고 사변적이었다. 관념산수화니, 문인화니 하면서 실체가 불분명한 먹의 정신성이나 문기(文氣)를 강조했다. 유근택은 현실에 발붙인 그림, 우리 삶과 현실에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가 찾은 키워드는 ‘일상’. 그가 포착해서 그린 대상과 세상은 너무나 평범하고 익숙한 풍경이다. 닭장 같은 격자무늬 아파트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살림살이가 흐트러져 있는 거실, 욕실에서 샤워하는 모습, 분수의 물줄기(전통 동양화에선 주로 폭포가 등장한다), 다른 나라의 이국적인 자연풍경, 식사가 끝난 탁자, 불타는 신문 그리고 수없이 그린 자화상.
유근택의 그림을 새삼 천천히 다시 들여다본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두 화가, 겸재 정선(1676~1759)과 단원 김홍도(1745~1806?)가 생각난다. 중국이 아닌 조선의 산하, 이 땅의 풍경을 그리고자 했던 겸재. 아마추어 화가였던 겸재는 ‘진경산수화’를 개척했다. 모든 분야 그림을 모두 잘 그렸던 천재화가 단원. 궁중 화원 신분이었던 단원은 궁궐 밖 백성의 삶을 그린 ‘풍속화’도 많이 남겼다. 유근택은 겸재와 단원의 장점을 합쳐 놓은 21세기 우리나라의 현대적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