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월 24일 서울 성동구의 장애인 공연예술단체 핸드스피크 연습실을 찾아 수어연습현장을 참관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일상 속 차별·혐오 표현
“국·영·수 위주의 절름발이 교육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어요.”
몇 년 전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청소년과 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말이다. 그가 쓴 글은 논리가 탄탄했다. 분명 잘 쓴 글이었다. 다만 그의 말과 글에서 거슬리는 표현이 하나 있었다. 절름발이 교육이라는 말이다. 평소 뉴스를 많이 본다고 했는데 아마도 미디어 채널에서 이 표현을 자주 봤던 게 아닐까 싶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절름발이는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치거나 하여 걷거나 뛸 때에 몸이 한쪽으로 자꾸 거볍게 기우뚱거리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뜻한다. 이 말에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에 다른 어휘가 더해지면 우리 감각은 의외로 둔해진다. ‘절름발이 정책’ ‘절름발이 국회’ ‘절름발이 행정’…. 많은 사람이 ‘균형·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 등을 표현하고자 이 단어를 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에 대한 직접적인 비하 의도가 없는데 문제가 되나요?”라는 반응도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불균형·부조화 상태를 말하려 할 때 장애인 비하 표현을 쓰는 이유는 뭘까? 이 표현이 ‘장애=불균형·부조화’라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걸까?
‘절름발이 정책’ ‘눈 뜬 장님’ ‘꿀 먹은 벙어리’…
우리 속담에는 장애 비하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뭔가를 보고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눈 뜬 장님’이라 한다. 일부분만 알면서 전체를 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고 한다. 속에 있는 생각을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꿀 먹은 벙어리’라고 말한다.
이런 속담에 등장한 ‘장님’ ‘벙어리’ 등은 모두 장애인 비하 표현인데다 하나같이 부정적인 상황에 장애를 연관 짓고 있다.
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비유적으로 쉽게 표현하는 데 속담만의 효용이 분명히 있다. 한데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차별과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고 고정관념을 심화시키거나 재생산한다면 굳이 써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우리도 모르게 장애를 ‘틀림’ ‘비정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표현 또한 많다. “지체장애인도 정상인들 못지않게 일할 수 있다”는 문장은 어떨까? ‘장애인’과 ‘정상인’을 대비시켜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기형아 검사’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기형’(畸形)은 ‘사물의 구조, 생김새 따위가 정상과는 다른 모양’을 뜻한다. 즉 장애를 ‘정상이 아닌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엔 우리가 차별 표현임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써온 표현에 대해 대체어를 발굴해 알리려는 노력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영역의 차별 표현 및 대체어 목록>을 통해 장애인에 대비해 ‘정상인’이 아닌 ‘비장애인’을, ‘기형’의 대체어로 ‘이형’(異形)을 제시했다.
“짜장면 먹을지 짬뽕 먹을지 늘 고민되네. 이 결정장애를 어쩐담.” 이렇게 어떤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황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많이 쓴다. 농담하듯 가볍게 쓰는 이 표현에도 장애인은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라는 시각이 있다.
이 사례처럼 차별 표현은 종종 유머나 농담으로 포장되곤 한다. “안 본 눈 삽니다”라는 표현은 어떨까? 많은 사람이 ‘보기 싫은 것’ ‘민망한 것’을 봤을 때 이 표현을 장난처럼 쓰곤 한다. 얼핏 재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이 말을 접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디어에 흔히 쓰이는 장애에 대한 편견
장애에 대한 편견은 미디어에서도 흔히 만나볼 수 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우승한 우리 선수들” “장애를 극복한 우리 선수들” “장애를 딛고 해냈습니다” 등은 패럴림픽 보도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표현들이다. 이렇게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에도 의문을 품어볼 필요가 있다. 선수들의 노력과 성과를 두고 무조건 감동 스토리로만 풀어내려는 태도에도 차별과 편견의 시선이 담겨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장애인에 대비해 ‘일반인’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에 따르면 장애인은 일반인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일반인의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굳이 구분을 해야 한다면 ‘비장애인’이라고 표현하면 될 일이다.
‘꽉 막힌 자폐적 사고’ ‘자폐적 세계관’ 등 ‘자폐’라는 단어를 ‘폐쇄적이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데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폐인들은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뿐인데 마치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애인을 비하하려 일부러 이런 표현들을 골라 쓰진 않았을 것이다. ‘그냥 관습적으로 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남들도 다 쓰니까’ 등 많은 사람이 차별 표현을 쓰는 배경에 대해 이런 이유를 댄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선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습관처럼 쓰는 차별과 비하 표현을 고쳐 쓰려면 일상 언어를 예민하고 낯설게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