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웹소설 타고 오디오 드라마가 뜬다

2021.11.22 최신호 보기
▶오디오 드라마 <문제적 왕자님>

그룹 버글스는 그들의 노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서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라고 한탄한다. 이 노래가 발표된 건 1980년이었으니 그로부터 40년이 훌쩍 지났다. 기성세대들은 누구나 라디오에 대한 추억이 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던 라디오 연속극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인기가 높은 연속극이 방송되는 시간이면 밖에서 놀다가도 라디오 근처로 몰려들었다. 어린 시절 <서유기>와 같은 중국의 고전을 각색한 연속극을 들으면서 손에 땀을 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여인극장> 등 로맨틱한 멜로 드라마를 들으면서 울고 웃었다. 나이가 지긋한 중장년들은 <김삿갓 북한방랑기>를 들으면서 실향의 아픔을 달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연속극에 출연하는 성우들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연속극은 1980년대 정점을 이룬 뒤 서서히 라디오 매체에서 자취를 감췄다.

▶오디오 드라마가 뜬다 오디오 드라마 <재혼황후>

듣고 즐기는 콘텐츠로 재생산
최근 들어 웹소설이나 웹툰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이른바 오디오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웹소설이나 웹툰을 바탕으로 이를 각색해 만든 오디오 드라마가 젊은 층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다. 대신 그 플랫폼이 라디오가 아닌 포털 등 다양한 누리소통망(SNS)을 기반으로 바뀌었다.
사실 웹소설이 대세가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 웹소설 시장은 2013년 약 100억 원에서 지난해 6000억 원으로 약 60배 커졌다. 웹소설 플랫폼에서 연재 중인 작가 중에서 한 달 10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작가가 수십 명에 달한다.
최근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 공모전에 4000명의 작가가 5500편을 출품했다는 기록도 있다. 전업 작가들은 물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공모전에 참여해 스타급 웹소설 작가를 꿈꾼다. 이런 열기를 바탕으로 웹소설이 웹툰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드라마 시장에서도 맹렬하게 원작을 사들이는 추세다.
오디오 드라마는 웹소설을 과거 라디오 연속극과 같은 형태의 듣고 즐기는 콘텐츠로 재생산한 결과물이다. ‘밀리의 서재’ 등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형태의 서비스가 발전해 성우들이나 연예인들이 등장해 만든 극형태의 드라마로 진화한 것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과거 유행하던 라디오의 연속극이 라디오가 아닌 컴퓨터 속에서 부활한 것이다.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인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는 웹소설 원작 오디오 드라마 <재혼황후>, <문제적 왕자님> 등이 눈에 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바른 연애 길잡이> 등도 인기 있는 오디오 드라마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도 웹소설을 바탕으로 오디오 드라마로 제작돼 방송 중이다.
일부 오디오 드라마에는 성우는 물론 배우와 가수 등 스타들이 목소리로 출연해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방준석·달파란·김태성 등 영화음악 감독으로 활약하던 이들이 연출을 맡아서 완성도를 높이기도 한다. 오디오 드라마는 귀로 들으면서 운전 등 다른 일을 하기에 용이해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자가운전 중이거나 집안일을 할 때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오디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다시 오디오에서 매력 찾는 시대
오디오 드라마의 원작으로 웹소설이 주로 쓰이는 이유는 순수 소설보다 대화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디오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타 장르보다 손쉽다. 또 오디오 드라마를 즐겨듣는 이들이 무거운 소재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소재를 선호하는 성향도 한몫한다. 웹소설의 서사와 캐릭터가 다른 장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에 잠시 흐름을 놓쳐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이무영 동서대 교수는 “웹툰이나 웹소설은 깊이가 있거나 복잡한 스토리 구조보다는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무거운 주제나 소재보다는 로맨스나 판타지, 스릴러 등 몇몇 장르에 편중돼 있다”면서 “오디오 드라마도 이런 특성을 반영한 감각적인 매체여서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젊은층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로맨스 판타지 혹은 로맨틱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오디오 시장에 대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오디오를 개발 중인 한 신생기업은 연예인들의 목소리를 활용,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가수 아이유와 계약을 맺고 3~4시간만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면 우리말은 물론 영어와 중국어 등 모든 콘텐츠를 오디오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매번 아이유가 참여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읽을거리를 여러 가지 언어로 제공할 수 있다.
어쩌면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한탄은 다시 수정돼야 할지도 모른다. 영상에 멀미를 느낀 이들이 다시 오디오에서 매력을 찾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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