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릉·강릉의 능침 뒤에서 바라보는 전망│ 국립문화재연구소
선릉역, 정릉역, 태릉입구역…. 수도권 시민에겐 친숙한 지하철역이다. 그런데 이들 역명이 옛 조선왕조 무덤에서 유래된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검단신도시 건설사가 조선왕릉 중 한 곳인 ‘김포 장릉’ 반경 500m(문화재 보존지역) 안에 사전 심의 없이 아파트를 짓다가 문화재청과 갈등을 빚는 사건을 계기로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스쳐 지나치는 조선왕릉이 새삼 시선을 끌고 있다.
조선왕조 518년(1392~1910) 27대에 걸친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조선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선왕릉은 총 42기(기(基)는 무덤을 세는 단위)가 있는데 40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일괄 등재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2기는? 북한 개성에 있다. 바로 태조 이성계의 첫째 부인 신의왕후 무덤인 제릉, 제2대 임금 정종과 부인 정안왕후 무덤인 후릉이다.
조선왕릉은 왕족의 마지막 안식처이다 보니 나라의 예법에 맞춰 통일적으로 설계됐다. 일부 변형된 곳도 있지만 대체로 일관성을 지닌 복합 건축물이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함께 오를 수 있었다.
▶입구 쪽 하늘에서 내려다 본 김포 장릉│ 국립문화재연구소
주체 신분에 따라 능, 원, 묘로 불려
조선왕족의 무덤은 주체의 신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불린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왕위를 이어받을 왕세자와 왕세자빈은 ‘원’, 나머지 왕족은 ‘묘’다.
조선왕릉은 서울 외곽과 경기도 등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다. 왕릉이 서울 도심 가까운 곳에 분포된 이유는 입지 조건이 조선시대 법에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서 왕릉은 한양 성곽을 기준으로 10리(3.9km) 밖에서 100리(39km) 안쪽에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왕궁이 있던 한양에서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 두고 후왕이 선왕의 능을 자주 참배해 효를 실천하도록 했다.
예외도 있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 능인 영릉,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능인 융릉·건릉은 풍수지리적으로 더 좋은 묫자리를 쓰다가 규정을 위반했다.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세조)이 왕위에서 내쫓은 제6대 임금 단종의 무덤인 장릉은 그가 귀양살이하다 숨을 거둔 강원도 영월에 있다.
조선왕릉의 입지는 풍수사상을 기초로 이상적인 땅에 자리 잡고 있다. 대체로 남쪽에 물이 흐르고 뒤에 언덕이 보호하는 배산임수 터다. 또 자연친화적이고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통상 언덕 높이의 봉분(무덤)에서 왕릉 입구 쪽을 내려다보는 조망은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김포 장릉 문제도 조선왕릉의 풍수지리사상 훼손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강 이북에 있는 파주 장릉과 한강 이남에 있는 김포 장릉, 계양산은 일직선 상에 놓여 있다. 파주 장릉에는 인조와 인열왕후가 묻혀 있는데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남양주에 있던 부모(원종과 인헌왕후)의 묘를 김포로 옮겨 장릉이라 했다. 파주 장릉과 김포 장릉은 풍수지리상 조산(朝山)을 인천 계양산으로 한다. 파주에 있는 아들 인조가 그리움을 담아 한강 이남 건너 편에 있는 부모와 함께 하나의 조산을 바라보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제는 조산이 아닌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게 생긴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 공간
조선왕릉 내부 구조는 어디나 동일하다. 관리인이 머무는 진입 공간, 선왕을 뵈러 온 왕이 참배하는 제향 공간,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능침 공간으로 구분된다. 산 자의 공간,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 공간, 죽은 자의 공간이 공존하는 것이다. 여담으로 전래동화나 사극에 능참봉이란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데 바로 조선시대 각 능의 일을 맡아 보던 종9품의 벼슬자리인 참봉을 가리키는 것이다.
추천할 만한 조선왕릉을 묻는다면 우선 가족 나들이 장소로 유명한 천 년 숲 국립수목원(광릉수목원)을 들 수 있다. 남양주 광릉은 제7대 임금 세조의 능이다. 세조는 본인 무덤을 만들 때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어달라고 했다. 이곳이 바로 현재 국립수목원이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선릉은 제9대 임금으로 경국대전을 완성한 성종과 정현왕후의 무덤이다. 정현왕후는 성종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양아들 연산군이 폭정을 휘두르자 그를 쫓아내고 친아들 중종을 제11대 임금으로 즉위시켰는데 선릉 바로 옆에는 중종의 무덤인 정릉이 있다. 대한제국 제1대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 민씨의 능은 남양주 홍릉에 있다.
산책하기 좋은 가을을 맞아 가까운 조선왕릉에서 바람을 쐬는 건 어떨까? 입장료 천원(성인 기준, 만 24세 이하는 무료)으로 한나절 조선왕실의 발자취를 느끼며 가볍게 역사여행을 떠날 수 있다. 단 여기가 무덤이라는 건 ‘안 비밀’.
김정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