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자원연구부 입구. 양쪽 길가로 빼곡히 줄지어 선 무궁화 나무 약 100그루가 연분홍과 자주색 꽃을 피워 매달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무궁화 기술 개발 현장
2021년 9월 14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외곽의 농촌과 도시가 뒤섞인 한적한 마을 호매실동. 고속도로 천천 교차로와 수원여자대학교 사이로 난 온정로 길을 걷다보면 양쪽 길가로 빼곡히 줄지어 선 무궁화 나무 약 100그루가 연분홍과 자주색 꽃을 활짝 피워 매달고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의 산림생명자원연구부로 들어가는 길(약 200~300m)이다. 이곳은 주변에 있는 수원 시험림을 포함해 우리나라 임목육종의 본산으로 소나무·잣나무·낙엽송 등 각종 나무의 클론보존원(우량 형질을 가진 육종 개체를 선발·보존)이 1962년부터 조성돼 선발육종의 초석이 됐다.
국립산림과학원 클론개발연구팀이 최근 나라꽃 무궁화 묘목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조직배양 복제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무궁화 식물체의 잎 등을 용기 안에서 배양해 부정아(不定芽·줄기, 잎, 뿌리, 꽃을 만드는 어린 새싹 눈이 정상적인 표준 위치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나오는 것)를 유도하는 기술이다. 이번 기술로 무궁화 왜성품종 클론묘(복제 묘목)를 대량생산 하고 상용화하면 이제 가정집 화분에서도 무궁화를 키울 수 있다. 왜성품종은 생물 크기가 그 종의 표준 크기보다 작게 자라는 종이다. 무궁화는 국내외에 약 300품종이 개발됐는데 국립산림과학원은 1950년대부터 다양한 종류의 무궁화를 수집·육성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자원연구부의 온실에서 화분마다 무궁화 품종이 자라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자원연구부의 클론보존 구역
5년 전부터 왜성품종 대량 증식·개발 연구
과학원은 최근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을 뜻하는 ‘홈 가드닝’ 수요가 증가하면서 무궁화를 가정·실내 등에서 화분에 심어 재배할 수 있는 왜성품종을 대량 증식·개발하는 연구를 약 5년 전부터 수행했다. 연구책임자인 김태동 임업연구사(임목자원연구과·농학박사)는 “우량한 나무 개체를 선별해 삽목(꺾꽂이·식물의 가지나 잎 등을 잘라서 땅에 심어 새 개체를 만드는 것)하는 무성번식의 경우 무궁화는 이런 무성번식이 잘 안 되는 품종이라서 조직배양기술을 개발해 육종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무궁화 품종을 시도했는데 생산량이 많은 윤슬, 소양 품종을 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나무 품종 고유의 형질을 유지하면서 증식하려면 무성번식으로 묘목을 생산해야 하는데 무궁화 왜성품종은 줄기 생장이 워낙 느린 탓에 삽수(삽목을 위해 잘라낸 가지로 환경 변화를 감지하면서 자신의 각종 식물호르몬을 조절해 뿌리·줄기·잎을 만들어낸다) 재료를 대량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효과적인 조직배양으로 무성생장 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김 박사는 “일반적으로 묘목시장에서 나무 종류는 삽목이 잘되는 편이라 묘목업자들이 자체 생산해 판매하는데 무궁화는 삽목에 어려움이 있어 생산 묘목이 적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대량으로 쉽게 구해 이용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번 조직배양기술은 삽수에 생장호르몬을 처리해 새로운 뿌리가 나도록 하는 방식이다. 어린 눈이 나오는 자리는 잎과 줄기 사이 겨드랑이(액아), 또는 줄기 끝 한복판(정아)인데 배양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다른 부위에서, 즉 부정아로 새싹이 나오도록 하는 기술이다.
김 박사는 “일반적으로 활엽수는 이 눈에서 싹을 틔워 줄기가 잘 올라오는 편인데 무궁화는 생육이 늦고 잘 안 올라온다”며 “그래서 일반적인 줄기 삽목 방식 대신에 잎을 잘라 그 절단면 위치에 캘러스(어린 생장호르몬 세포덩어리)가 나오면서 눈이 싹트도록 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이 덩어리로 줄기를 유도하고 뿌리를 나오게 한다. 우리 몸에 상처가 나면 그 부위에 다시 어린 세포가 형성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자원연구부의 배양실에 자라고 있는 무궁화 품종 ‘윤슬’ | 조계완 기자
▶조직배양 복제기술로 생산한 무궁화묘에서 뿌리가 나오고 있다.│산림청
▶조직배양 복제기술로 생산한 무궁화묘에서 뿌리가 나오고 있다.│산림청
어디서나 어떤 토양에도 잘 견디는 무궁화
이날 연구동 3층 배양실에 들어가보니 약 20평가량 되는 방에 주먹만 한 유리병 수백 개가 어른 키 높이의 배양대마다 층층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유리병 마개에 윤슬·소양·순이 등 무궁화 품종 이름이 써 있고 접시 같은 배양 용기에 노란빛이 도는 눈(부정아)에서 줄기 싹이 트고 있었다.
김 박사는 “여기서 무균질로 습도를 유지하면서 신초(새로운 줄기·잎)를 대량 증식하고 이제 점차 신초에서 뿌리가 발달해 뻗어 나온다. 그다음 온실로 옮겨 자연환경과 비슷한 조건에서 어린 묘목을 심어 관찰한다”고 말했다. 배양된 신초는 한 달가량 습도 등이 조정된 순화 용기에 심어 바깥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단계를 거쳐 온실의 화분으로 옮겨진다.
배양실 건물을 나와 전국 각지의 우량 소나무 표본이 자라는 클론보존구역을 지나면 아래쪽에 네댓 개의 대형 온실이 있다. 조직배양기술로 생산한 무궁화 묘목들이 화분 약 100개에 심어져 줄지어 놓여 있다. 키는 20~30cm가량으로 연분홍과 자주색 무궁화꽃을 피워낸 화분도 여럿 보인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심은 윤슬·소양 품종이다. 김 박사는 “국경일에 도심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를 일제히 내거는 풍경도 좋지만 집집마다 무궁화를 발코니 화분에 심어 키워 아파트단지에 무궁화가 온통 활짝 피어 있는 풍경을 상상해본다”고 말했다.
무궁화는 정원수로 가꾸기에 좋다. 전국 어디서나 어떤 토양에서도 잘 견딘다. 특히 이번 조직배양 대량생산 기술로 무궁화를 우리집 앞 마당에서도 키울 수 있는 대중화와 동시에 산업화가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 박사는 “무궁화를 정원에 다양한 용도로 키우려면 왜성품종으로 하는 것이 좋은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을 대량생산해 산업화로 접근해보려는 목적도 크다. 산림자원 육종 연구가 과거에는 품종개발에 맞춰져 있었으나 최근에는 산업화로 접근해 활용하는 목적에서 증식기술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화는 민간 묘목 생산회사에 이 조직배양기술을 이전해주고 향후 시장판매량에 비례해 기술사용료를 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산림과학원은 두릅나무, 엄나무, 낙엽송, 목련, 찰피나무 등에서도 조직배양으로 눈이 나오게 하는 증식 기술을 이미 개발했다. 종자나 삽목 방식으로 대량 보급하기에 어려운 품종들이다. 과학원에 들어서는 길목에는 무궁화나무 옆으로 키가 10m가량 되는 편백나무들도 즐비하다. 김 박사는 “편백도 여기서 묘목 조직배양 증식 기술로 생산된 것이다. 2~3년가량 키우니 저렇게 자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식물 조직배양기술은 세계 상위권이다. 김 박사는 “우리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국제 워크숍에서 식물조직배양 기술을 교육하고 전수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계완 기자
▶조직배양 복제기술로 생산한 무궁화 묘목 꽃잎 │산림청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소문내고 싶은 무궁화 명소 다섯 곳
산림청이 최근 ‘제8회 나라꽃 무궁화 명소’를 공모한 결과 우수 지역 다섯 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서울식물원 무궁화원이 최우수상, 경북 상주시 하서면의 무궁화 가로수가 우수상, 경남 김해(삼계근린공원)와 충북 진천(두레봉공원), 충남 천안(무궁화테마공원)의 무궁화동산이 각각 장려로 선정됐다. 생육환경·규모·접근성·사후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서울식물원 무궁화원은 약 100종의 다양한 무궁화 품종 약 5000본이 식재돼 있다. 무궁화 크기와 규모는 작지만 꽃이 아름답고 도심 중심부에 있어 시민들의 접근성이 매우 높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면서 우리 땅 곳곳에 무궁화 꽃이 한창이다. 무궁화는 꽃을 오래 볼 수 있어 이름이 그렇게 불리는데 흥미롭게도 꽃 한 송이가 한번 꽃을 피우고 지기까지는 불과 하루다. 아침을 꽃을 피워 저녁에는 꽃잎을 말아 닫고 져 버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다른 꽃송이가 활짝 피어난다. 그래서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라는 노랫말도 붙었다.
중국의 지리와 풍속을 전하는 <산해경>에는 “북방에 있는 군자의 나라는 사람들이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피하며 겸허하고 그 땅에는 무궁화가 많아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진다”고 적혀 있다. 신라 시대에 외국에 보내는 문서에는 스스로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의 고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부터 무궁화가 나라꽃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 원장(식물학 박사)은 1995년에 펴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가지>에서 “무궁화는 자생지가 인도로 외래종이고 진딧물이 많고 꽃이 하루에 져서 단명허세의 표본이 되는가 하면 봄에 싹이 늦게 트고 꽃을 피울 때까지 휴면 기간이 길어 태만한 식물이고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므로 추하다는 인식도 있다”며 “진딧물과 같은 건 육종으로 극복하면 되고 마당에 심어놓은 장미를 가꾸는 정성을 반쯤만 기울이면 무궁화도 진딧물 걱정 없이 얼마든지 깨끗하고 싱싱하게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무궁화 관목은 다 자라면 키가 3m쯤 되고 드물게는 4m까지 자란다. 가지 끝마다 큼직하게 달리는 꽃잎의 안쪽은 유난히 더 붉다. 조선시대에 장원급제자에게 하사해 꽂는 어사화도 무궁화였고 농가에서는 무궁화 피는 시기에 따라 그해 서리가 앞당겨지거나 늦춰져 기상을 알려주는 나무 역할도 했다고 한다. 품종으로는 화랑·영광·새아침·설악·산처럼·첫사랑 등 아름답고 생육이 좋고 병충해에도 강해 우수하다고 선정한 약 10개 품종을 권장한다.
▶정보무늬를 스캔하면 ‘무궁화 기술개발’ 체험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