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일곱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 일반 ▲그림책·동화 ▲청소년 분야의 추천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것입니다. <공감>은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날마다 만우절 (문학)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윤성희의 여섯 번째 소설집은 생에 대한 위로와 격려로 가득하다. 첫 번째 수록된 단편 <여름방학>은 적금 만기를 앞두고 회사에서 잘린 이병자 씨의 이야기. “오빠들과 돌림자를 쓰는 게 평생 짐”이었던 병자 씨는 이참에 개명할 계획도 세우고 자신만을 위한 꽃다발도 처음으로 산다. 퇴직 후 처음 맞는 이 여름을 병자 씨는 뜻대로 보낼 수 있게 될까. <어느 밤>의 화자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훔친 킥보드를 타다 한밤중에 넘어져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노년의 여성이다. 그간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독자는 그 여성의 삶에 동참하며 어서 이 여인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게 된다. 어떤 단편소설을 선택해도 무심히 등장했다 사라지는 인물 하나 없이 웃음과 눈물이, 지금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소소한 농담과 진실들, 어떤 아프고 강렬한 순간과 기억들. 그 모든 것이 고요히 지나가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조경란(소설가)
훈민정음과 한글의 세계 (인문예술)
이상혁 지음 | 박이정
훈민정음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문화 업적이다.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다양한 분야의 독자를 대상으로 알기 쉽게 훈민정음과 한글을 소개했다. 문자에 관한 개론에서 시작해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했던 차자표기의 전개 과정을 소개한 뒤, 훈민정음의 창제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훈민정음은 단지 우리말을 쉽고 편리하게 적기 위한 목적을 지닌 것이 아니라, ‘천하의 성음’을 모두 표기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더 나아가 훈민정음은 백성들에게 조선 왕조의 통치 이념을 홍보하고 불경을 번역해 왕족과 백성의 종교적 열망을 충족하려는 목적도 담고 있었다. 이렇게 창제된 훈민정음이 그 이후 1894년 갑오개혁과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치면서 ‘국문’, 즉 명실상부한 나랏말, 한글로 변화되는 과정을 저자는 간명하면서도 충실하게 서술했다.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여러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물음을 위한 물음: 2010년대의 기록 (사회과학)
윤여일 지음 | 갈무리
당신은 어떤 시간 단위로 사유하는가?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 백 년?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유의 시간 단위는 짧아지기 쉽다. 윤여일은 이 책에서 10년을 단위로 사유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1950년대가 전후 폐허의 시기였다면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건설의 시대였으며 1980년대가 갈등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민주화의 시대였다. 2000년대에 시작된 보수와 진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대립은 2010년대를 거쳐 2020년대로 이어졌다. 이 책은 2010년대에 한반도에서 동아시아를 거쳐 지구 차원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과 현상들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명박 통치,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거, 후쿠시마 사태, 박근혜 집권, 세월호 참사, 촛불 집회, 대통령 탄핵, 문재인 정권 탄생, 트럼프 집권, 난민 확산, 기후위기, 코로나 펜데믹으로 이어지는 사건과 현상에 대한 사회비평 에세이로 독자들의 사유를 자극한다. 답이 아니라 물음을 제시한다.
정수복(사회학자·작가)
과학관의 탄생: 자연과 과학을 모은 지식창고의 역사 (자연과학)
홍대길 지음 | 지식의날개
“현재 우리나라에는 135개의 과학관이 있다. 국립 5개, 공립 87개, 사립 39개다. 주제로 보면 자연사가 29.6%, 천문이 24.4%를 차지해 두 분야가 절반을 넘는다(본문 중에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과학관이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이 1년에 1000만 명을 넘는다는 것도. 자연사박물관과 천문관(천문대)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고 또 미국의 스미소니언이나 영국의 런던 자연사박물관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소년 소녀들은 왜 과학자가 되려는 꿈을 꿀까? 외국은 과학관을 관람하고서이다. 주요 선진국의 도시에는 꼭 자연사박물관, 과학관, 또는 과학박물관들이 자리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과학관은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어른들에게는 과학 문해력을 제공하는 장소다.
권복규(이화여자대학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수어: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 (실용일반)
이미화 지음 | 인디고
예전엔 수화(手話)라 일컬었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국어와 동등한 언어의 위상을 갖춘 ‘수어’로 불린다. 목소리 대신 손의 모양, 몸짓, 표정 등을 써서 의사를 전달하는 독립적인 언어다. 코로나19 이후 방송 브리핑 시간에 수어 통역사들을 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수화 동아리’ 선배들의 공연을 우연히 보면서 수어에 관심이 갔다. 이 책의 특징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저자에게 수어는 ‘장애인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저 선망과 동경의 대상, 차라리 하나의 외국어와 비슷했다. 들을 수 있는 청인(聽人)의 세계와는 다르게 수어로 소통하는 농인(聾人)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던 것. 나와 다른 세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그런 작은 관심을 촉발시키기 충분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농인의 세계를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한다. “세상에 이런 언어가 있다니!”
표정훈(평론가)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그림책, 동화)
김선남 지음 | 그림책공작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를 매우 재미있게 설명한 어린이 논픽션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처음엔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라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처음엔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그런데 “꽃이 펴서 알았지, 벚나무였다는 걸” “처음엔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그런데 “연초록 싹이 나서 알았어, 은행나무였다는 걸” 이런 반복과 반전의 흐름으로 봄에서 겨울로 이르는 시간을 배경으로 벚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계수나무, 감나무, 구상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처음엔… 알았어”라는 반복적 술어는 그동안 몰랐다는 고백,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됐다는 기쁨의 표현이다.
저자는 책을 펴내면서 “나무를 알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같아요. 왜냐하면 나무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생겨나 그 무수한 세월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생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최현미(문화일보 문화부장)
기탄잘리, 나는 이기고 싶어 (청소년)
기탄잘리 라오 저/조영학 역 | 동아시아사이언스
과학은 인간의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인류 문명은 과학기술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한다. 15세 인도계 미국인 소녀 기탄잘리 라오는 과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 책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기까지의 여정과 사회 전체에 변화를 일으키는 혁신 탐구 과정이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나이, 직업, 성별, 인종과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보존하고 환경을 지키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기탄잘리 라오는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물속의 납 성분을 감지하는 장치 ‘테티스’를 만들었다. 큰돈을 버는 사업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고 권력과 명예를 위해 노력한 것도 아니지만 기탄잘리 라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미래를 고민하게 만든다. 청소년들이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류대성(<읽기의 미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