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맞춤형 공유주택의 공유주방에서 한 입주자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연합
공유주거로 보는 규제 샌드박스
“규제 샌드박스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대한상공회의소에 민간 상담 창구가 생긴 뒤에 직접 상담해보니 특례승인을 받을 수 있어 시도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심의 비싼 주거비에 따른 청년 주거난을 해결할 대안으로 공유주거 하우스를 규제 샌드박스(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하는 제도) 심의 안건으로 신청해 최근에 임시허가 승인을 받은 조강태(44) 엠지아르브이(MGRV) 대표의 말이다. 이 회사는 수익뿐 아니라 예측 가능한 사회·환경적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도심 속 주거를 기획·개발·운영하는 회사다.
이 회사의 공유주거 시설 브랜드 이름은 ‘맹그로브(man grove)’로 주로 청년·대학생들이 입주자다.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공유주거 하우스 맹그로브 3호점을 짓기로 계획하면서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 정부에 샌드박스 규제특례를 신청했다. 공유주거 하우스는 영국 런던,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중국 홍콩 등 집값이 비싼 해외 대도시에서 청년 주거난을 해결할 대안으로 2015년 등장했다.
나만의 방을 갖고 주방·욕실·카페 등을 공유하는 공유주거 하우스와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비대면 진료 서비스 등이 최근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 샌드박스지원센터는 ‘산업융합 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열어 공유주거 하우스와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 등 15건을 특례승인(임시허가 및 실증특례)했다.
▶맹그로브 제2호(서울 신설동) 주변 지도│ 맹그로브
더 나은 주거 서비스 가능
엠지아르브이는 이미 서울 종로구 숭인동과 동대문구 신설동에 맹그로브 1·2호점을 지어 주로 청년·무주택자 등에게 임대분양한다. 공유주거 하우스는 침실과 공부방을 겸한 독립된 개인 공간을 갖고 주방·화장실·욕실·부엌 등은 다른 입주자들과 공유하는 새로운 주거 형태다. 거실, 주방뿐만 아니라 영화관, 카페, 운동시설 등 다양한 커뮤니티 환경을 제공한다. 내 방은 3평인데 우리 집은 200평인 셈이다.
조 대표는 “기존 원룸과 비교하면 나만의 공간은 작지만 대신에 내가 활용 가능한 공간은 늘어난 셈이다. 이미 건축한 공유주거 하우스 맹그로브 1·2호점은 현행 법률에 따른 공간 구성 제약으로 온전한 사업이 불가능했는데 이번 샌드박스를 통해 보다 나은 주거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 임시허가는 현행 건축법·주택법상 공유주거 주택의 종류 및 건축물 용도에서 마땅한 기준이 따로 없어 가장 유사한 건축물 형태인 도시형생활주택(원룸형)에 일부 예외(1인 공유가구 특성에 맞게 공간 구성을 할 수 있도록 세대 내 공간을 ‘2개 이상, 침실 3개까지’ 허용해 임시 허가한 것이다. 다만 개인공간은 최소 7㎡ 이상 충족하고 개인공간·공동생활공간·공동시설을 합쳐 14㎡ 이상을 준수하도록 했다.
현행 규제 법령 아래서는 신축 공유주거 건축물의 사업계획 승인·허가를 받기 곤란하다. 유사한 주거 형태를 준용하려고 해도 목적과 용도에 부합하지 않거나 건설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택법에서 원룸형은 세대 내 공간을 두 개까지만 구성할 수 있도록 제약이 있고 세대별로 독립된 주거가 가능하도록 욕실과 부엌을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조 대표는 “그전에는 도심 청년을 위한 공유주거 하우스를 구상해도 현행 제도 안에서 허용된 것만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기존 정부 규제 기준이 바뀌지 않을 거다, 하면서 주변 사람들도 한숨만 쉬었고 포기하라고 했다. 샌드박스 창구로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청년 공유주택인 서울 영등포 아츠스테이를 찾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기획재정부
초기 입주비와 연간 생활비 절감
숭인동 1호점(총 24실)은 현재 임대가 꽉 찬 상태로 빈 룸이 하나 생기면 입주 대기자가 50명을 넘는다. 신설동 2호점(330실, 최대 수용 인원 400명)은 6월에 공사가 마무리됐는데 임대분양을 시작하기 전에 벌인 입주자 크라우드펀딩(50명 분) 행사 결과 펀딩이 3일 만에 전부 소진될 정도로 청년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조 대표는 “기존 주택법의 원룸형 조건 대료 맞추면 임대료와 보증금이 상승해 잠재 입주자인 청년들의 부담이 커진다”며 “샌드박스 허가로 공간 구성을 효율적인 맞춤형으로 할 수 있게 돼 기존 법령의 건축 조건에서보다 임대료를 8~10%가량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노고산동에 지어질 맹그로브 3호점의 3인 공유형과 마포구 주변 원룸의 생활비를 비교하면 공유주거 입주자의 주거생활비 경감 수준이 확연히 드러난다. 월 임대료(65만 원)는 원룸과 같지만 보증금은 300만 원으로 주변 원룸(500만 원)보다 싸고 초기 입주비와 연간 생활비를 절감할 수 있다. 침대·책상·텔레비전·냉장고·세탁기·에어컨·정수기·비데 등 모든 집기 및 비품이 완비돼 있고 임대료에 인터넷·카페·영화관 라운지·운동시설 등 커뮤니티 공간 이용 요금이 포함돼 생활비도 절감된다. 1년 거주 때 총 비용을 보면 노고산동 공유주거는 연 1080만 원으로 주변 원룸형 총비용(연 1652만 원)보다 572만 원 절감된다.
조 대표는 “1·2호점은 현행 규제 아래서 가능한 대로 조금씩 실험적으로 변형해보는 식으로 청년 주택을 시작했다. 사업 계획을 더 늦출 수도 없고 공간 평면 구성과 고객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한 것과 고치고 또 새로 추가해야 할 것을 파악했다”며 “1·2호점도 인허가 과정에서 굉장히 큰 어려움을 겪었고 허가를 받지 못할 뻔했는데 샌드박스 임시허가로 건축 허가에서 애매한 부분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1인 청년 가구를 위한 주택 공급을 촉진하고 비가족 관계의 공유주거 확산 추세를 감안해 임시허가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신설 방 형태의 원 비용에는 각종 공과금 및 관리비, 부가세가포함돼 있다.
인공지능 활용 재외국민 진료서비스도
이번 규제 샌드박스 심의에서 또 다른 임시허가 승인을 받은 ‘인공지능(AI) 활용 비대면 재외국민 진료서비스’는 제이엘케이(JLK), 비플러스랩, 부민병원 등 6개 기업이 신청했다. 해외에 나가 살고 있는 우리 재외국민과 국내 의료기관을 온라인 플랫폼(화상·전화)으로 연결해 국내 의료진이 1차 진료와 2차 소견을 제시하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과정에서 제이엘케이는 의료진이 활용하도록 인공지능 의료 영상 판독 서비스를 비플러스랩은 인공지능 문진차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상 사업 국가는 미국, 캐나다, 중국, 필리핀, 베트남, 쿠웨이트 등이다.
현행 의료법은 원격의료(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ITC)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 지식이나 기술을 지원받는 것)를 의사·의료인 사이에만 허용하고 의사·환자 간 진단·처방 의료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규제 특례심의위는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서비스가 재외국민의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 도움이 되는 점을 고려해 임시허가를 승인했다”며 “의료 수준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언어·의료 수준 차이 등으로 의료서비스에 애로를 겪는 해외 교민과 근로자, 유학생, 관광객 등 재외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스닥 상장 기업인 제이엘케이의 김동민(44) 대표는 “선진국에서도 언어·문화 차이 등으로 재외국민들이 현지 병원의 의료서비스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의료 수준이 높은 한국 병원에서 또 다른 진료·소견을 받고 싶어 한다”며 “단순히 전화로 의료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이용한 뇌졸중, 안저 질환, 전립선, 유방암, 뇌 엠알아이(MRI)·씨티(CT) 등 영상 판독 분석 결과를 리포트 형식으로 협력 병원 의사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다. 법과 규제에 막혀 있던 공익 서비스를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시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의료와 ICT를 융합한 글로벌 비대면 진료 시장 규모는 2021년 412억 달러(약 5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산업부는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서비스 사업의 효과가 입증되면 실제로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데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규제 샌드박스란?
규제 샌드박스는 융합 시대에 신기술과 새로운 서비스의 원활한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혁신성과 안전성을 바탕으로 마음껏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거나 시간·장소·규모에 제한을 두고 실증 테스트를 허용하는 혁신 실험장이다.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게 만든 모래놀이터(sandbox)에서 유래했다. 2019년 2월부터 산업융합·혁신금융(핀테크)·정보통신융합·스마트시티 분야에 도입됐다. 당사자인 기업이 분야별 전담 위탁기관에 신청·접수하면 부문별로 민관합동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어 관계부처 협의 와 사전 검토가 완료된 안건에 대해 실증특례와 임시허가를 부여한다. 실증특례와 임시허가는 ‘2+2년 허용(2년간 허용, 2년 연장 가능)’이다.
분야별 전담 위탁기관 및 신청 안내
▶ICT융합
정보통신산업진흥원 / 043-931-1000
sandbox@nipa.kr
▶산업융합
한국산업기술진흥원 / 02-6009-4088, 4089
sandbox@kiat.or.kr
▶지역혁신
14개 시·도별 지방중소기업청, 산업기술진흥원
▶금융혁신
핀테크지원센터 / 02-6375-15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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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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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도시공간 / 044-417-9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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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 샌드박스 지원센터
▶전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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