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 ‘교황 율리오 2세’, 포플러에 유화, 108.7×81cm, 1511,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르네상스 미술의 3대 거장 중 막내인 라파엘로(1483~1520)는 37세로 요절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67세에, 여덟 살 위인 미켈란젤로(1475~1564)가 89세까지 장수한 것에 비하면 라파엘로의 삶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짧은 인생과 달리 라파엘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다. 완벽한 구도와 인물 배치, 질서 정연한 선과 형태 묘사, 또렷한 색상, 기품 있고 아름다운 필치로 설명되는 라파엘로 화풍은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 동안 서양 미술사의 교과서적인 회화 규범으로 추앙받았다. 특히 라파엘로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다룬 ‘성모자상’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아름다운 그림의 표본으로 꼽힌다.
라파엘로는 1483년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 지역 페사로에우르비노주에 자리한 산등성이 마을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림과 친해진 라파엘로는 하늘이 내려준 천부적 재능까지 더해 16~17세 무렵부터 이름을 날렸다. 특히 8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1세 때 아버지마저 잃는 유년 시절 부모의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화가로서 승승장구했다는 점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인물과 똑같은 그림 속 인물
21세 때인 1504년 라파엘로는 피렌체로 향했다. 이곳에서 4년가량 머물렀던 라파엘로는 피렌체에서 활동하고 있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화가 겸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1511~1574)는 전한다. 다빈치가 창안한 스푸마토 기법(윤곽선을 연기처럼 흐릿하게 처리해 보는 이의 눈에서 형태가 완성되도록 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채색과 명암 처리에 관심이 많았다. 활동사진을 보는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인물 묘사는 해부학에 정통한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조각에 힘입은 바가 크다. 피렌체 시기는 화가 라파엘로의 예술적 성숙기였다.
1508년, 25세의 주류 화가 라파엘로는 평생 잊지 못할 한 사람을 만난다. 문화예술 애호가이자 화가들의 후원자로 유명한 인물인 교황 율리오 2세(1443~1513, 재위 1503~1513)다. 1503년 제216대 교황에 즉위해 10년간 가톨릭교회의 절대권력으로 군림한 율리오 2세는 종교 지도자라기보다 전제군주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난폭한 독재자였다.
직설적이고 다혈질의 폭군으로 악명을 떨친 율리오 2세는 그러나 예술적 안목에서만큼은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다. 고대 로마 제국의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1506년 착공~1626년 완공)을 추진했으며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라파엘로에게는 성 베드로 성당 벽화를 의뢰하는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중용하고 지원했다.
교황 율리오 2세의 호출에 따라 로마에 입성한 지 3년이 지난 1511년 라파엘로는 기념비적인 한 점의 초상화를 그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바로 교황 율리오 2세를 모델로 한 그림 ‘교황 율리오 2세’다.
‘교황 율리오 2세’는 라파엘로가 28세 때 그린 그림이다. 그림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림 속 인물이 실제 인물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교황의 초상화는 성화(聖?)처럼 성스러운 신의 모습으로 우상화하는 게 당연했는데 라파엘로는 교황 율리오 2세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 다룬 것이다.
초상화가 얼마나 실물과 닮았으면 조르조 바사리가 캔버스로 쓰인 포플러에 교황을 매달아놓은 것 같다고 했을까? 사람들은 교황을 모델로 한 초상화 제작 규범을 허문 라파엘로의 배포에 놀라고 현실 속 무시무시한 교황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복제한 그림에서 터져나오는 공포감에 다시 놀랐다.
교황은 지금 상체를 왼쪽으로 약간 틀어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다. 입을 앙다물고 아래를 응시하고 있는 눈매가 한없이 매섭다. 꽉 깨물다시피 한 입술을 보면 뭔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벼락같이 고함을 지를 것 같기도 하다. 보면 볼수록 무서운 표정이다. 별칭인 ‘전사 교황’답게 고압적인 기세가 등등하다. 이것이 평소 교황 율리오 2세의 얼굴이다.
▶라파엘로, ‘성모자상’, 유화, 113×88.5cm, 1506,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예술·사실성 초상화 특징 압도적 구현
라파엘로는 교황의 초상화를 일체 가감 없이 교황의 민낯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사람들은 초상화를 본 교황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지구상에 하나뿐인 지엄한 지존을 고집불통의 괴팍한 늙은이로 묘사했다고 역정을 냈을까?
교황 율리오 2세는 젊고 잘 생기고 유순한 라파엘로를 총애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을 로마로 불러들여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을 문화예술로 꽃피울 열정을 불태운 교황에게 라파엘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 같은 존재였다.
천재적 재능,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 훤칠한 외모 등 라파엘로의 모든 것에 교황은 매료당했다. 이런 교황이 라파엘로를 혼낼 리가 있을까? 게다가 난폭한 성격과는 정반대로 탁월한 심미안을 지닌 교황이라 라파엘로의 극사실적 재현 능력에 오히려 탄복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라파엘로도 초상화도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라파엘로의 대담성은 또 있다. 교황의 두 손에 주목하자. 검지와 약지, 새끼손가락에 하나씩 모두 여섯 개의 화려한 반지를 끼고 있다. 정복욕이 남다른 교황의 탐욕적인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자신에게 무한 사랑을 베푸는 교황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묘사한 라파엘로의 용기가 놀랍다.
인간의 모습으로 교황의 실체를 포착한 점으로나 예술성과 사실성, 심리 표현 등 초상화의 특징을 압도적으로 구현한 점으로나 라파엘로가 왜 르네상스 3대 거장인지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다.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