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혁신지수 세계 5위’ 의미와 과제
이제 한류는 새삼스럽지 않은 단어가 됐다. 2000년대 초 우리나라 드라마가 연이어 일본과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를 강타하고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만 해도 한류를 일회성이고 지역적인 현상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방탄소년단(BTS)이 유엔 본부에서 연설과 공연을 하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을 달성하며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 넷플릭스 드라마 1위를 휩쓰는 지금, 한류는 이제 세계 문화의 본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같은 한류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상반기 지식재산권 무역수지에 따르면 상반기 지식재산권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했다. 해외 특허 등을 주로 사용하는 국내 제조업 구조를 고려할 때 흑자가 나기 쉽지 않은 구조지만 상반기 저작권 무역수지가 19억 6000만 달러(약 2조 3000억 원)의 흑자를 내면서 지식재산권 전체 수지를 흑자로 전환시킨 것이다.
게임 등 컴퓨터프로그램 저작권과 데이터베이스 저작권을 포함하는 연구개발(R&D) 및 소프트웨어(SW) 저작권 무역수지가 반기별 역대 최대치의 흑자를 기록했고 문화예술 저작권 무역수지 흑자 규모도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네 배나 증가한 3억 달러(약 3500억 원)를 기록했다. 한은은 지식재산권 수지의 역대 최대 규모 흑자 기록에 대해 국내 엔터테인먼트사들의 한류 콘텐츠 수출 등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했다.
전 세계 혁신의 원동력이 된 한류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더욱 놀라운 수치다. 같은 통계 발표에 포함된 지식재산권 수출의 세부 항목과 규모를 뜯어보면 통념과는 다른 결과가 여럿 관찰된다. 이미 저작권 무역수지는 2013년 최초로 흑자로 전환된 이후 9년 연속 꾸준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2020년 연간 44억 4000만 달러(약 5조 2000억 원)를 기록한 산업재산권(특허, 상표, 디자인 등) 수출보다 저작권 수출은 그 두 배가 훌쩍 넘는 109억 9000만 달러(약 13조 원)를 기록했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욱 거침없는 상승세다. 문화상품 수출이 100달러 증가할 때 정보기술(IT)·의류·화장품 등 수출액은 약 248달러 증가한다는 한국수출입은행의 2019년 연구 결과(‘한류 문화콘텐츠 수출의 경제적 효과’)를 감안할 때 저작권 무역수지의 영향력은 몇 배로 불어난다. 한류는 이제 단순한 현상을 넘어 주요 성장동력 산업이자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오는 폭넓은 생태계로 확장된 것이다.
한류가 경제적으로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세계는 한류를 혁신의 원동력으로 받아들였다. 2021년 9월 20일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서 2021 글로벌 혁신지수를 발표했다. 전 세계 회원국들의 혁신 역량을 측정해 지수로 발표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전체 국가 중 5위라는 놀라운 결과를 기록했다. 2020년 10위 대비 무려 다섯 계단이나 상승한 수치이자 아시아 국가 중 1위다. 종합 순위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는 ‘상표’ ‘글로벌 브랜드 가치’와 함께 ‘문화·창의서비스 수출’이 꼽혔다.
‘문화·창의서비스 수출’ 항목은 전년 대비 13단계나 상승하는 등 조사에 포함된 세부 평가항목 중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해당 항목은 영화·방송·음원·도서·공연녹화 등 시청각, 광고, 전통, 오락 등 다양한 영역의 서비스를 포괄한다. 어느 한 가지 빼놓을 것 없이 한류를 이루고 이끄는 영역들이다. 약 130개국의 무역 대비 문화·창의서비스 수출 비중으로 순위를 가리는데 우리나라의 총 무역 대비 창의서비스 수출 비중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저작권 보호 기반 강화 노력
더욱 눈여겨볼 점은 2021 글로벌혁신지수에서 우리나라의 사례가 혁신을 견인하는 정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표 예시로 소개된 것이다.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양자·다자협력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내 문화서비스 보호 및 해외 진출 시장 확대와 함께 상호 저작권 보호 수준을 강화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저작권 비전 2030(2020년 2월)’, 문화·예술·콘텐츠 영역의 정책과 긴밀히 연계된 ‘해외 저작권 진출 확대 및 보호 강화 방안(2020년 9월)’이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환경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아래서 이같은 한류 생태계를 어떻게 더욱 확장시켜 나갈지 집중해야 한다. 다양한 차원의 논의가 가능하나 특히 한류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종류의 창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저작권에 대한 중요성 인식과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창작의 유인이자 자산인 저작권은 콘텐츠 산업을 비롯한 문화경제의 뿌리이자 선순환의 핵심 요소다. 시대 변화를 반영한 저작권 기반을 조성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이용·유통 환경을 만들며 저작권 침해 대응을 강화하고 나아가 해외에서 저작권 보호 기반을 강화하는 것은 한류의 미래를 준비하는 정부의 역할이다.
특히 해외에서 저작권 보호 기반 강화를 위해 정부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에서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협업 체계 구축과 저작권 해외 사무소 운영을 통한 침해 대응력 강화뿐만 아니라 바우처 제도 등 민간의 해외 저작권 보호 대응 지원 확대, WIPO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통한 국제협력, FTA 등을 활용한 국가별 맞춤형 통상 전략 추진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정책들은 장기적으로 한류가 꾸준히 진화해 나가는 데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창작의 근간인 저작권의 보호가 비단 한류 연관 산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한류 창작에 더 많은 역동성을 가져오고 민간에서 눈부신 성취로 이어질 것을 확신한다. 이렇게 다져진 지속 가능한 한류 확산의 토대 위에서 전 세계인이 수많은 제2, 제3의 BTS의 노래를 듣고 우리나라를 궁금해하며 한류의 근원을 찾아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강석원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