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9월 23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식에서 함께 귀국한 국군 전사자 유해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제76차 유엔총회 참석 등 3박 5일간의 바쁜 미국 순방 일정을 소화하고 9월 23일 귀국했다. SDG 모멘트(지속가능발전목표 고위급회의) 개회 연설 및 유엔총회 기조연설, 한·슬로베니아, 한·베트남 정상회담,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 등 숨가쁜 일정을 마쳤다.
특히 남북관계 회복에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구상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한과 주변국들이 함께 협력할 때 한반도에 평화를 확고하게 정착시키고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할 것이며 그것은 훗날 협력으로 평화를 이룬 ‘한반도 모델’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군 1호기 안에서 동행한 기자들과 33분 동안 간담회를 하고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상으로 들어가자고 하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다. 주한미군의 철수라든지 한미동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관련국들도 소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관련국 이미 공감대 형성
아울러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대해 관련국들의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이 상당히 고도화 또는 진전됐기 때문에 이제는 평화협상과 별개로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평화협상과 비핵화 협상의 ‘투트랙 협상’ 필요성을 언급한 뒤 “종전선언이 각 협상에서 어느 시기에 어떤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구사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전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게 언제가 됐든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있는 것이고 남북 간 북미 간에 대화가 시작되면 결국 해결할 것”이라며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또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에 의한 종전선언 추진도 2007년 10·4공동선언에서 합의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가 종전선언을 추진하되 중국이 원한다면 중국도 함께할 수 있다는 그런 뜻”이라면서 “그때부터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도 중국도 이미 동의가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이제 다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기 때문에 다시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에서 일부 우려하는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선 일축했다. 문 대통령은 “현재의 법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이 없고 종전에 정전협정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는 여러 관계는 그대로 지속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의 주둔은 한국과 미국 양국 간에 합의해서 가는 것이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북미 간에 수교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도 한국과 미국이 필요하면 미군이 한국에 주둔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실은 올해가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주년 되는 해이기 때문에 북한이 호응해서 유엔총회를 잘 활용한다면 이것이 또 남북관계를 개선할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가졌는데 그 점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아쉬움도 표시했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계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국제적인 계기로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혹시 남북 간의 관계 개선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은 북미 간 신뢰 회복하는 길”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9월 29일 <한국방송>(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를 통해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를 통해 제안한 종전선언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군 통신선 재연결에 응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군 통신선에 응답하는 문제부터 시작을 하다보면 징검다리가 하나씩 하나씩 놓이지 않겠냐”며 “그중에 남북정상회담도 징검다리가 될 수 있고, 베이징동계올림픽이라는 특정한 계기가 어떤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특정한 시점을 계기로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는 판단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 수석은 “문재인정부는 임기 내에 정상회담을 한다는 그런 목표를 정치적으로 설정해놓지 않았다”며 “문재인정부에서 설사 남북 정상회담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정부가 이어받아서 하면 되고 문재인정부는 임기 마지막까지 그러한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 수석은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대해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한 것과 관련해 “(우리나라에) 어떤 역할을 해보라는 뜻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또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를 무게 있게 받아들이면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분석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박 수석은 9월 24일
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리태성 외무성 부상과 김여정 부부장이 (오늘) 7시간 사이에 내놓은 메시지의 간극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 수석은 문 대통령이 현 시점에 다시 종전선언을 강조한 것은 북한과 미국 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수석은 “지난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간) 신뢰가 깨져 있는 상태인데 이것을 어떻게든 살려야 되지 않겠냐”면서 “신뢰 구축을 하는 것이 비핵화로 가는 관건이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전쟁의 당사자들끼리 모여서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전선언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