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기온은 몇 도나 더 오를까?

2021.09.27 최신호 보기
▶중문색달해변의 야자나무│윤진서

낯선 곳에 발을 디디면 이국적인 건물이나 이국적인 사람들로부터 여행의 설렘을 느끼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설렘을 주는 것은 이국적인 식물이었다. 이탈리아 남부 어딘가에서 본 몇백 년도 넘은 올리브나무, 멕시코 도로에서 수없이 마주쳤던 내 키보다 큰 선인장, 그리스의 하얀 집들 사이에 주렁주렁 열린 레몬나무, 캘리포니아 해변에 즐비하게 서 있는 홀쭉하고 키가 큰 야자나무들…. 그 식물들이 없었다면 이토록 선명하게 향기까지 남아 있지 않았을 곳들….
어쩌면 내가 제주도에 끌린 점도 이와 같은 이유일 수도 있다. 중문색달해변으로 가는 길에 줄을 이어 선 야자나무와 걸을 때마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감싸는 곶자왈. 게다가 불과 몇 해 전부터 제주에서 올리브나무도 노지(지붕 등으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땅) 생육이 가능해진 데다 레몬이나 바나나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모두 제주도 땅에서 나고 자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만 해도 설마 했지만 큰 올리브나무를 정원에 심은 집을 보게 되거나 대형마트에서 제주산 레몬과 바나나를 살 땐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간다. 그러니까 신선한 레몬이나 바나나를 먹으며 이곳에 살고 있다는 약간의 자부심과 ‘지구 온난화가 어디까지 환경을 바꾸어 놓을까?’ 하는 두려움이 교차된, 무어라 단정 짓기 힘든 감정이다.
혹시나 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올리브나무 한 그루를 화분에서 꺼내 마당에 심었고 2년이 흘렀다. 정말이지 화분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푸른 얼굴로 이파리들을 내밀며 태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겨울에 눈이 온다 해도 얼마 못 가 녹아 버리는 제주니까 올리브나무 정도는 생육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 만난 올리브나무들은 기둥이 참으로 두꺼웠다. 그렇게 되려면 한참을 커야 할 텐데 화분에 가둬놓았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제주에 그런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뜨거운 태양 덕분일 것이다. 스페인 같은 곳에서 만나본 뜨거운 태양의 느낌을 제주의 여름에서도 만날 수 있다. 다만 습한 날과 건조한 날이 오간다는 것이 다를 뿐. 그래서인지 만나 볼 수 있는 식물의 종류가 다양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우기와 건기가 언제 올지 모르는 날씨라니.
내가 할머니가 될 때쯤 제주도의 평균 온도는 몇 도나 더 오를까? 심어 놓은 올리브나무의 기둥은 서양 것들만큼 두꺼워질까? 어쩌면 바나나나 레몬나무도 하우스가 아닌 노지라 해도 가능할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국산 올리브유가 생산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주산 올리브유. 이름만 들어도 벌써 주머니에서 신용카드를 꺼내고 싶다. 그렇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라산 중턱에서 썰매 타는 어린이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백록담 주위의 하얀 신성함은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겨울이면 찾던 눈 덮인 영실코스도 더 이상은 사라질지 모르지. 그러니 지금을 즐겨야겠다. 지금 주어진 것들을.

윤진서 배우_ 2003년 영화 <올드보이>로 데뷔 후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책 <비브르 사비> 등을 썼다. 최근 유튜브 채널 ‘어거스트 진’을 개설했다.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며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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