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원 존재의 이유

2021.08.16 최신호 보기
멀지 않은 과거에 암 등 중증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색다른 주장을 한 적이 있다. 효과는 좋지만 값이 매우 비싼 치료제는 아예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약값을 마련할 수 없어 이른바 ‘그림의 떡’이 되는 순간 환자와 그 보호자들은 더 고통에 빠진다는 것이다. 실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대기 위해 사는 집을 팔고 퇴직금을 미리 쓰거나 큰 빚을 지는 환자 가족도 적지 않았다.
이런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2000년대 이후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꾸준히 넓혔다. 참여정부는 암과 같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크게 확대했고 박근혜정부도 이를 이어 받아 4대 중증질환(암,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 희귀난치질환)에 대해 건강보험을 100%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정부는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만 건강보험 혜택이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전면적으로 넓히겠다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 정책을 임기 초기에 발표했다.
아울러 한 가정을 파산시킬 만한 병원비가 나오는 ‘재난적 의료비’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도 추진했다. 이 덕분에 과거에 견줘 병원비가 없어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하는 환자 수는 대폭 줄었다. 물론 주요 복지국가와 비교하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는 하다.
하지만 또 다른 ‘그림의 떡’이 있다. 병원비 걱정은 대폭 줄었지만 찾아갈 병원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병원의 수익보다 주민들의 건강을 우선시하고 지역주민의 건강 향상을 돕는 병원이 적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공공 병원의 부족은 우리 사회의 감염병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게 했다.

감염병 위기 중 입원 못해 사망 하기도
2019년 말 정체가 밝혀져 2020년 초 전 세계적인 감염병이 된 코로나19로 많은 환자가 숨졌다. 전 세계적으로 2021년 8월 11일 기준 약 2억 명의 환자가 생겨 그 가운데 약 424만 명이 사망했다. 감염된 환자들은 격리 병상 또는 생활치료센터 등에서 고열, 호흡 곤란 등 여러 증상을 해결해주는 치료를 받았지만 주로 고령층과 평소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코로나19 감염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갑작스러운 감염병 유행으로 환자들이 입원할 병상이 부족해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3월 코로나19 검사만 14번을 받으면서 정작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 군이다. 감염 환자의 경우 다른 환자나 의료진에게 감염을 전파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격리 병상 등이 필요한데 이런 시설이 부족했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 견줘 인구 당 병상 수는 많았지만 정작 감염 환자를 위해 병상을 내어줄 형편은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공병원의 존재였다. 2020년 3~4월 대구 및 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했을 때 코로나19 환자 5명 가운데 약 4명 꼴인 78%가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에서 치료받았다. 하지만 공공병원이 부족해 정유엽 군 같은 안타까운 사례가 생긴 것이다. 하루 1000명이 넘는 환자가 생기는 최근에도 공공병원이 없었다면 코로나19를 대처하기가 힘들며 현재 상황에서 더 많은 환자가 생기면 자칫 의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가 수명 및 건강 결정
꼭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유행이 아니더라도 서울 및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평소에도 의료 시설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자칫 어느 지역에 사느냐가 수명이나 건강 여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조희숙 강원대 의대 교수팀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5~2017년 기준 강원 영월권에 사는 주민들은 서울 동남권에 사는 이들에 견줘 응급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두 배 이상 높았다.
뇌혈관질환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의료 기술이 발전했지만 응급이나 뇌혈관질환이 생겼을 때 너무 멀리 있어 ‘그림의 떡’일 수 있다는 얘기다. 기대 수명이나 질병 없이 사는 나이인 건강 수명 역시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견줘 크게 높았다는 것도 많은 연구 결과에서 확인된 바 있다.
‘해당 지역에 병원을 지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강원도 등 많은 농어촌 지역에는 경영 자체가 어려워 민간병원을 유지하기 어렵다. 의료뿐만 아니라 건강과 수명을 결정하는 데는 소득, 교육 수준 등 많은 요소가 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도 뇌혈관 또는 심장 질환 등 응급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 중앙 및 지방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공공병원을 설립해야 하는 이유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은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병상 수 기준 공공의료 비중은 영국이 99%, 프랑스 63%, 독일 41%, 일본 26% 등으로 우리나라의 9%에 견줘 높다.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적정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음은 차치하고서라도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대처하고 뇌졸중 등 응급 질환 등으로 더 많이 사망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공공병원 확충은 시급한 과제다.

김양중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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