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7월 말 미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북한과 대타협’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북한을 미국의 동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외교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상식의 틀을 깬 브룩스 전 사령관의 주장이 처음에는 당혹스럽게 여겨졌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로부터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일깨워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2016년 4월 우리나라에 부임해 2018년 11월까지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2016년 한 해를 달궜던 북한 핵실험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2017년 북미 간 전운 고조,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의 냉온탕을 자신의 임기 동안 모두 겪은 그야말로 베테랑이다.
그가 제안한 ‘남북미 동맹 전략’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철저하게 견제하는 것을 미국 세계전략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다.
미국, 인도, 일본, 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는 비공식 안보회의체 쿼드의 존재 자체가 미국의 중국 고립전략의 일환이다. 여기에 ‘쿼드 플러스’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 뉴질랜드, 베트남 등을 끌어들이려는 미국의 최근 움직임 또한 중국 고립작전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아울러 미국은 쿼드를 과거 냉전시대 유럽에서 구 소련 견제를 위해 창설한 다자안보동맹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수준으로 확대·강화한다는 복안마저 갖고 있다.
미·소 냉전시대 유럽에서 나토를 통해 구 소련을 견제하는 것이 당시 미국의 지상 과제였다면 오늘날 미·중 신냉전시대를 맞아서는 아시아·태평양판 나토를 만들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 미국의 새 지상 과제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든은 대중국 압박 범위를 전 세계로 넓히고 있다. 6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벨기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잇따라 참석해 중국 견제를 담은 공동성명 발표를 이끌어냈다.
‘남북미 동맹’ 제안한 브룩스 전 사령관
이런 와중에 브룩스 전 사령관의 남북미 동맹 전략 구상이 나왔다. 그는 틀림없이 북한을 광범위하게 구축된 대중국 포위망의 마침표로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을 동맹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인도적 지원-종전협정-경제지원-평화협정’ 순서로 나간다는 브룩스 전 사령관의 남북미 동맹 로드맵은 현실적 시각에 기초하고 있다. 이미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를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 폐기’를 공언한 바 있다. 핵시설 폐기와 경제 정상화,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간 평화협정까지 담은 브룩스의 로드맵은 2년 전 하노이에서 이뤄졌을 뻔한 내용을 담았다는 얘기다.
물론, 북중 간 오랜 우호 관계를 하루 아침에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두 나라는 7월 11일 북중우호조약 60주년을 맞아 축전을 교환하고 한 쪽이 침공 당하면 다른 한 쪽이 자동으로 전쟁에 개입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조약의 효력을 연장했다.
브룩스의 구상을 실현하려면 북중 관계에 일단 틈이 좀 벌어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오히려 북중을 더욱 밀착시키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지도부는 군사력 세계 1위인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연합훈련 때마다 초긴장 상태를 보인다. 3월과 8월 매년 두 차례 실시되는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기간에는 김 위원장의 외부 동선이 최소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 실시되는 한미연합훈련은 ‘작전계획 5015’(Operation Plan 5015)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줄여서 ‘작계 5015’(OPLAN 5015)라고도 한다.
주한미군 작계는 주한미군을 관할하는 미 인도태평양사령부(USINDOPACOM)가 총괄한다. 작계가 5000번대인 것은 미 인태사령부 작계라는 의미다. 작계는 시나리오별로 5026, 5027, 5028, 5029, 5030 등이 있으나 2015년 한미가 새로 만든 ‘작계 5015’가 가장 최신판이다.
남북미 모두가 윈윈하려면
5026은 한미연합군이 북한 핵시설을 신속 장악하는 내용, 5027은 북의 선제공격으로 전면전이 발생한 경우, 5028은 우발적 사건 발생에 따른 군사충돌을 저지하는 내용인 것으로 전한다. 5029는 북한에서 쿠데타나 대량탈북 사태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한 경우, 5030은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한미가 다양한 저강도 작전을 구사하는 일종의 ‘고사작전’에 해당된다.
이전까지 한미연합훈련은 5027을 중심으로 실시됐지만 전면전 외 요소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5027에 5026, 5029를 통합하고 일부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 만든 것이 5015다. 5015에는 북한 핵무기 사용 징후 포착 시 선제타격, 북 지도부 제거를 위한 공격, 북한 급변사태 시 한미연합군 투입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으로서는 펄쩍 뛸 일이다. 더욱이 북한은 2020년 6월 9일 남북 통신선이 단절된 지 413일 만인 7월 27일 통신선 복구에 나서 대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실제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8월 1일 자신 명의로 이번 훈련에 대해 “배신적 처사”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정부는 “이번 훈련은 방어적 성격으로 적대적 의도가 없다”고 누차 설명했다.
남측은 이런 식으로라도 이번 훈련을 꼭 실시해야 했던 이유 중 하나로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를 들었다. 정부는 내년 초 전작권 환수를 목표로 2019년 1단계 기본운용능력(IOC), 2020년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2021년 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평가를 마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훈련이 축소, 연기되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남측 의지대로 전작권 환수 일정을 정상 진행하면서 북측 반발을 최소화하고 미국의 이해에도 부합하는 새로운 작계 ‘50XX’를 이번 훈련에 적용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 50XX에는 미국의 ‘중국 견제’ 계획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은 남북미 모두에게 환영받았을지도 모른다.
김수한 헤럴드경제 기자 (북한학 박사·한국기자협회 남북통일분과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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