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고’에게 듣는 고용·산재보험 적용 의미
보험설계사와 학습지 방문강사, 택배기사 등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길이 열렸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7월 1일부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에게 고용보험을 적용, 구직급여(실업급여)와 출산전후급여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특고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사유도 제한돼 일하다 다치면 예외 없이 산재 보상도 받을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일하는 모든 국민이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뜻에서 정부가 마련한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에 따른 것이다. 고용부는 “무엇보다 기존 노동자 중심의 고용보험에서 진일보해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단계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7월 1일부터 고용보험 등의 적용을 받는 특고 종사자들은 이번 제도 시행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득 감소로 이직해도 실업급여 수령 반가워”
“일자리를 잃었을 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서울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최모 씨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며 이번 소식을 반겼다. 보험설계사로 일한 지 7년째. 국내 코로나19가 발생해 신규 고객 유치 등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던 2020년 “일을 접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곤 했다. “평소 실적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하며 몇 달간 불면증에 시달렸다. 막상 다른 일을 알아보려 해도 준비할 시간·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버티는 거 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전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만약 다시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이나마 생긴 거 같다.”
7월 1일부터 시행한 특고 대상 고용보험은 최 씨와 같은 보험설계사를 비롯해 학습지 방문강사, 교육교구 방문강사, 택배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방문판매원, 대여제품 방문점검원, 가전제품 배송설치기사, 방과후학교 강사(초·중등학교), 건설기계 조종사, 화물차주 등 12개 직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다. 노무제공계약을 통해 얻은 월 보수(소득세법상 사업소득과 기타소득에서 비과세 소득·경비 등을 제외한 금액)가 월 80만 원 이상이면 된다.
실직한 특고가 이직일 전 24개월 가운데 12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고 실직 사유가 자발적 이직 등 수급 자격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재취업 노력을 하는 경우 120~270일간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고용부는 특고 직종 특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소득 감소로 이직하는 경우에도 구직급여를 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직일이 속한 달의 직전 3개월 보수가 전년 동기보다 30% 이상 감소하는 등 요건을 충족하면 된다. 최 씨는 “소득 감소로 이직한 경우에도 구직급여를 지급한다는 내용은 특고종사자들이 처한 현실을 잘 반영해줬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업주·특고 월 보수액 0.7%씩 “큰 부담 아냐”
이번 제도에 따라 각각 사업주와 특고가 내야 하는 고용보험료는 월 보수액의 0.7%다. 예를 들어 월 보수 200만 원이면 사업주, 특고 각각 1만 4000원, 총 2만8000원을 납부하면 된다. 최 씨는 “월평균 매달 1만 4000원 정도를 고용보험료로 내게 될 텐데 이 정도면 커피 몇 잔 덜 마시면 되는 금액”이라며 “큰 부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천에서 학습지 방문강사로 일하는 김모 씨는 얼마 전 사업주 측에서 산재·고용보험 의무가입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았다.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비롯해 특고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터였다. 그 역시 “고용보험이 적용된다면 구체적으로 보험료를 얼마나 내야 하며 어떤 보장과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보험료가 월 급여의 0.7%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닥쳐 퇴직한다면 다른 직종 사람들은 실업급여 등 안전성을 보장받지만 특고종사자의 경우 퇴직금, 실업급여 등이 없어 일을 그만두는 순간 막막해진다. 그런 탓에 회사가 무리하게 실적을 요구할 때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돈을 써가며 신규 회원을 늘리고 목표치를 맞추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퇴직하는 사례들도 있는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택배기사 등 “다쳤을 때 대비 산재보험 든든”
이번에 시행된 제도에는 출산전후급여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제도에 따르면 출산일 전 3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고 출산일 전후로 노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출산전후급여를 90일(다태아는 120일)간 받을 수 있다.
경기 수원에서 학습지 방문강사로 일하고 있는 한모 씨는 “2019년 말 결혼해 현재 임신을 계획 중인데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특히 특고 가운데 학습지강사, 보험설계사 등에는 여성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출산 시 수당 등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점이 큰 아쉬움이었다”며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출산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특고는 보험료 부담을 꺼리는 사업주의 강요 등으로 산재보험 적용 제외를 신청해 일하다 다쳐도 보상받을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질병·부상,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1개월 이상 휴업이나 사업주의 귀책사유에 따른 1개월 이상 휴업 등에 해당할 경우에만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이 가능해졌다. 다만 이로써 사업주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점을 감안해 1년간 고위험·저소득 특고 직종의 산재보험료를 50% 범위 내에서 한시적으로 경감하기로 했다.
경기 부천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최모 씨는 특고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에 대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몸 쓰는 일을 하기 때문에 다치면 병원비 걱정부터 한다. 그래서 산재보험에 든 걸 다행이라 생각한다. 보험료로 매달 약 2만 원을 낸다. 큰돈은 아니다. 비슷한 상황의 다른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도 제도 혜택을 누렸으면 좋겠다.”
사회 안전망 구축 의미 모두 공감했으면
이번 제도 시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보험업계에선 사업주 측에서 저성과자에 대한 구조조정 등으로 보험료 부담을 상쇄할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보험설계사 최 씨는 “실적이 저조한 설계사의 경우 보험사 입장에서 보면 감축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불안했는데 실제 그런 분위기는 감돌고 있지 않다”며 “무엇보다 지금은 이 같은 사회안전망이 왜 구축돼야 하는지 노동자와 사업자,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용보험 가입 확대를 위해 정부는 소규모 사업 저소득 노무 제공자에 대한 고용보험료도 지원하기로 했다. 노동자 10인 미만 사업장의 월 보수 220만 원 미만인 노무 제공자와 그 사업주는 보험료의 80%를 지원받을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 강순희 이사장은 제도 시행과 관련해 “공단의 보험사업 운영 경험을 토대로 특고 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이 실업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이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특고 고용보험의 현장 안착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며 “고용보험이 모든 취업자를 위한 든든한 안전망이 되도록 고용보험 적용 대상 확대도 지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청연 기자
예술인도 고용보험 적용
신진 예술인과 경력단절 예술인 등도 고용보험이 적용된다. 다만 월 소득 50만 원 미만인 예술인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예술인은 문화예술 용역 관련 계약을 체결한 사람으로,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예술 활동 증명을 받은 사람 외에도 신진 예술인과 경력단절 예술인 등이 포함된다.
적용제외 소득기준은 개별 문화예술 용역 관련 계약으로 얻은 월평균 소득이 50만 원 미만이면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생업보다 취미 등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둘 이상의 소액 계약을 체결하고 그 소득의 합산액이 월평균 50만 원 이상일 경우 예술인이 신청하면 고용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 보험료율은 예술인의 보수액 기준으로 0.8%로, 근로자와 동일하다. 사업주에게도 같은 보험료율이 적용된다. 예술인이 소득 감소에 따른 이직으로 구직급여를 받으려면 이직일 직전 3개월 동안 문화예술 용역 관련 계약으로 얻은 소득이 전년 동기보다 20% 이상 감소한 경우 등에 해당해야 한다. 하루 구직급여 지급액 상한은 6만 6000원으로 근로자와 같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 담당자는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예술인들의 고용안전망 강화를 위해 고용노동부와 협조하고 저소득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료 지원과 고용보험 제도 개선을 계속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