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과 경제효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4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2조 7000억 달러(약 3114조 원) 규모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경기부양책은 대체로 기업의 환영을 받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부양책은 그렇지 못했다. 재원의 상당 부분을 법인세 인상(21%→28%로)으로 마련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는 투자 소득에 대한 연방 과세의 최고세율을 두 배 가까이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유행 와중에도 돈을 많이 번 대기업과 자산가들한테 세금을 많이 걷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저축과 투자에 대한 과세는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인 이중과세라고 본다. 요지는 이렇다.
“오늘 벌어서 오늘 쓰는 사람들은 소득과 소비에 대한 세금만 낸다. 그런데 왜 자신의 만족을 뒤로 미뤄서 저축하거나 투자한 사람들은 추가 세금을 내야 하는가. 저축과 투자 의욕을 잠재우는 것은 장기적으로 경제에 해가 된다.”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화당의 반대로 바이든의 부양책은 의회를 통과하기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부자 증세’를 밀고 나가겠다는 태세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을 지원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이다.
임기말 대기업 감세로 돌아섰다?
출범 초기 바이든 행정부 못지않게 ‘부자 증세’ 의지가 강했던 문재인정부는 최근 정책 기조를 수정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기획재정부가 7월 26일 공개한 2021년 세법개정안이 대기업 감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2022년~2026년 5년 간 1조 5050억원의 세수 감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중 대기업은 8669억 원의 감세 혜택을 볼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서민과 중산층은 3295억 원, 중소기업은 3086억 원이다. 대기업의 세수 감소분이 중소기업의 두 배 이상이다. 상당수 언론들이 “임기말에 대기업 감세로 돌아섰다”고 평가한 이유다.
하지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기업 감세 혜택’으로 평가한 언론 보도를 반박했다. 그는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세법개정안 핵심과제 중 하나는 선도형 경제로 전환을 위한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 세제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라며 “우리가 2년 전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수립했던 것처럼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차대한 시기를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한 팀이 돼 총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세법개정안을 ‘대기업 지원, 부자 감세’라는 편향되고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세법개정안으로 중소기업들도 많은 혜택을 보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전략기술은 전후방 산업파급 효과가 크고 고도로 분업화돼 있어서 산업 생태계 안의 중소기업에도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세법개정안으로 혜택을 보게 될 중소·중견기업 수는 200개 이상일 것으로 파악된다”며 “대기업 감세 비판은 이러한 기업들에 돌아갈 혜택마저 뺏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기재부는 세수효과 가운데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제지원 파트를 빼면 오히려 대기업 세부담은 161억 원 증가하고 중소기업은 316억 원 감소하기 때문에 “세수중립 수준으로 볼 수 있다”(김태주 기재부 세제실장)고 설명한다.
신산업육성 통해 더 많은 세수 확보
미국과 중국의 첨단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요 국가들이 첨단기술을 국가전략사업으로 키우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등 핵심기술을 위한 세제 지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감세의 직접 수혜자인 대기업들은 코로나19 대유행에도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면 자영업자와 서민, 중소기업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표면적으로 서민과 소상공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대기업 감세’라는 평가에서 벗어나려면 정부가 의도한 대로 국가전략기술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야 한다.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성장동력산업이 육성되면 더 많은 세수가 확보될 수 있다. 늘어난 세수를 생존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와 서민 지원에 집중적으로 쓴다면 정부의 진정성은 인정받을 것이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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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