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로 알려진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의 섬 하시마│연합
유네스코, 왜 일본 비판 결정문 채택했나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7월 22일 일본의 군함도(하시마) 등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담긴 결정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문에는 당사국이 관련 결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15년 7월 군함도 등 메이지시대 산업유산시설 23곳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됐을 때 ‘정보센터 설치 등으로 강제노동에 시달린 조선인 노동자 등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라’고 일본에 권고한 바 있다. 일본은 조선인 강제징용과 인권침해 등 부정적인 역사도 국제사회에 알리겠다고 약속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2020년 도쿄에 설치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나 강제노동을 본 적이 없다는 군함도 주민 등의 증언 위주로 전시를 구성했다. 일본의 군함도 역사왜곡은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은 “2015년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 완전한 세계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으로 ‘완전한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라면서 “그럼에도 일본의 외교력 때문에 쉽지 않았는데 이런 결정문이 나온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본다”고 밝혔다.
일본의 역사 인식은 독일의 역사의식과 자주 비교된다. 폴란드가 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위해 만들었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신청했을 때 독일은 반대하지 않았다. 나치정부의 만행에 독일은 주변의 피해 당사국보다 더욱 확실한 청산 의지를 보여줬다.
한혜인 연구위원은 “일본은 천황제를 청산하지 못하면서 차별화에 실패했다. 독일의 경우 국가는 그대로 두고 하나의 정권인 나치정권을 청산하는 것이라면 일본은 국가 자체를 천황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청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일본도 한때 군부 책임 또는 관료 책임으로 분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일본의 군함도 역사 왜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2016년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가 일본 홋카이도에 연 동아시아청소년역사캠프에서 한·중·일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써보는 하시마(군함도) 안내’를 과제로 낸 적이 있다. 이때 일본 학생들은 “이 해저탄광은 일본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유산이지만 동시에 조선인·중국인 등의 강제노동이 행해진 유적지로 다시는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하는 유산이다. 군함도는 전쟁 비극의 유산으로도 역사적 의의가 있어 세계 각국의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려 군함도가 평화의 교량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역사는 단절할 수 없고 선별적으로 기억될 수도 없다. 메이지시대 일본 제국이 영광을 얻었다면 거기에서 희생됐던 일본과 주변국의 노동자도 기억돼야 한다.
-일본은 유독 우리나라에 역사왜곡이 심하다.
=중국과 필리핀 등은 일본의 전쟁 상대국이었다. 반면 한국은 식민지로서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고 전쟁 피해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 피해 배상이라든지 보상 등에서 계속 제외됐다.
우리는 식민지 지배에 따른 불법적인 제도 아래 억지로 동원됐다. 그저 당시 밀린 임금을 달라는 게 아니라 강제동원에 따른 정신·신체적 피해에 관련한 보상을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논리다. 전쟁 피해 보상은 있지만 식민지 지배와 관련한 보상 책임을 묻는 국제법은 없다.
-강제동원 여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 불법을 바탕으로 한 강제동원에 대해 정신 피해까지 포함시켰다. 전쟁 피해가 아니고 식민지 피해다. 당시 한반도는 전쟁과 무관한 지역으로 조국을 위해 자진 입대했다는 식의 논리가 성립될 수 없다. 일본은 이에 대해 조선인을 강제동원 한 사료가 없다는 식으로 잡아떼고 있다.
2016년 등재 신청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록물도 현재 일본의 방해로 등재 보류된 상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전쟁터에서 받은 피해가 상처지만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동원 당했다는 게 더 큰 상처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계속될 듯하다.
=일본은 역사교육을 ‘일국사적 관점’이 아니라 세계사적이고 보편적 역사의식을 고양시키겠다는 방침으로 일본사 과목을 없애고 역사총합 등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세계사와 공유하는 역사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막상 검토해보니 제국사 교과서였다. 일본의 침략은 일본제국만이 아니라 영국·프랑스 등 세계 제국이 행한 세계 보편적 현상이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이 식민지를 했듯이 일본도 식민지를 점령했다는 논리다. 마치 서양 제국에서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논리를 전개해 매우 충격받았다.
지금까지는 살아계신 피해자들의 소송 등으로 역사 운동이 이어져 왔는데 그분들이 모두 돌아가신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앞으로는 필리핀·인도네시아 등과 함께 피식민지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아시아 지역 피식민지들 중에서 이런 문제를 주도할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이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