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르누아르, ‘목욕하는 여인들(The Large Bathers)’, 캔버스에 유화, 117.8×170.9cm, 1884~1887,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모름지기 그림은 예쁘고 아름다워 보는 사람이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혼탁한 세상에서 그림마저 심각하면 살맛이 나겠나. 그림이라도 유쾌하고, 그림을 볼 때라도 흥이 나야지. 맞는 말이다. 19세기 후반 서양미술사에 혁신적인 바람을 몰고 온 인상주의 화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미(美)의 본질을 그림으로 탐색하고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르누아르는 입버릇처럼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고 흐뭇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물화, 특히 여성의 몸이 발산하는 미적 가치를 놀라우리만치 황홀하고 우아한 색과 붓 터치로 감정이입 시키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그림이 내뿜는 매력을 무한대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우리가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서 새삼 우윳빛처럼 눈부시게 희고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여성 인체의 미, 그림의 힘을 찬탄해 마지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르누아르는 1841년 프랑스 중서부 오트비엔주의 주도인 리모주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르누아르의 재능은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드 보자르 입학으로 이어졌고 여기서 화가 르누아르의 삶을 좌우할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 스무 살의 르누아르는 에콜 드 보자르에 다니면서 스위스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던 샤를 글레르(1806~1874) 아틀리에에서 본격적인 도제(徒弟) 생활에 들어가는데 이때 동년배의 화가 지망생 세 명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포도주 양조장인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 프레데리크 바지유(1841~1870)와 클로드 모네(1840~1926), 알프레드 시슬레(1839~1899)가 그들이다. 특히 바지유는 모네와 마찬가지로 형편이 어려워 힘겹게 그림 공부를 하던 르누아르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절친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다.
▶프레데리크 바지유, ‘가족의 상봉’, 캔버스에 유화, 152×230cm, 1867년, 오르세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여성의 알몸에 예술성의 옷을 입혀
1884~1887년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목욕하는 여인들’은 인상주의 회화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정교한 고전주의 기법을 감미롭고 따뜻하게 소화한 르누아르 특유의 화풍을 강렬하게 아로새긴 역작이다. 역경 속에서 화가의 길을 달려온 고난의 인생 역정과 달리 르누아르는 흉내 낼 수 없는 밝고 곱고 편안하고 긍정적이고 기쁨에 충만한 그림을 죽을 때까지 일관되게 그리는 맑고 깨끗한 투혼을 발휘했다. 말년에는 심한 관절염에도 굴하지 않고 붓을 손에 붕대로 묶고 작업에 매달렸을 정도로 예술혼을 불살랐다.
1881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르누아르는 자신의 화풍을 새롭게 정립하는 전기(轉機)를 맞는다. 그곳에서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의 사실적인 그림과 폼페이 벽화를 본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의 색채 효과를 간직하면서 고전주의 미술의 장점을 기품 있게 부각하는 르누아르 화풍에 눈을 뜨게 된다. 빠른 붓놀림으로 빛의 순간적인 인상을 강조하는 인상주의 기법의 숙명인 망가진 형태를 복원시키기 위해서였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빛을 머금은 인물의 모습이 두드러지면서 백옥 같은 살결에서 느껴지는 여체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빛과 색채, 형태 세 가지 모두를 지배한 것이다. 즉, 여성의 알몸에 예술성의 옷을 입힌 르누아르는 빛을 그린 인상주의 화가이면서 색채의 연금술사이자 고전주의 기풍의 형태미까지 살려낸, 혁신과 전통을 하나로 융합한 실용주의적 개혁가였다.
3년이 넘는 시간을 공들였다는 데서 르누아르가 이 그림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짐작이 간다. 눈부시게 햇빛이 화사한 강가에서 알몸의 세 여인이 목욕 삼매경에 빠져 있다. 풍만한 몸매에서 여성미가 솟구치고 어쩜 피부가 저리도 비단결 같을 수 있나, 감탄을 자아낸다.
물에서 막 나와 숄을 걸치고 있는 여인과 장난스럽게 물을 튀기려는 동료의 갑작스러운 도발에 화들짝 놀라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인 셋이 그림의 주역들이다. 무성한 숲과 풀, 강물이 비중 있게 그려졌음에도 세 여인의 기세가 압도적이다. 우리 눈 바로 앞에서 삼각형 구도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데다 뽀얀 속살과 가슴, 엉덩이의 굴곡과 피부 결이 시신경을 얼어붙게 한다.
기막힌 피부 질감 묘사와 살색 구사
붓 자국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막힌 피부 질감 묘사와 감각적인 살색 구사에서 유화 그림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르누아르를 왜 ‘색채의 마법사’라 칭송하는지 수긍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바위에 걸터앉은 두 여인의 자세가 자연스럽지 않다. 맨 앞 여인의 두 다리와 오른손을 자세히 보자. 얼굴로 돌진할 물방울을 피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동작인데 손과 발의 연결 흐름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중앙에 왼 무릎을 살짝 세우고 앉아 있는 여인은 위태로워 보인다.
저런 자세를 계속 취하면 곧 바위에서 미끄러질 것 같지 않은가? 이것은 르누아르가 고전주의 스타일인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로 포석을 깔고 그에 맞춰 세 여인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르누아르는 화면 구성의 조화를 꾀한 큰 틀에 무게중심을 두고 세부 장면의 충실한 표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의도한 화풍에 방점을 찍는 것이야말로 그만의 고유한 양식을 지키는 길이라는 예술관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이를테면 그림은 마땅히 삶에 유익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충만할 때 의미가 있다는 소신, 그 소신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은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무시해버린 것이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 지수가 급상승하는 그림이다.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