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헌, ‘River’, 시리즈 중 ‘RT208 BHM’, 2013
그림과 사진의 공통점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기록한다는 것. 하지만 두 장르의 존재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둘 다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目)’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림은 사람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이고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사용하니까.
그림은 인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됐다. 기원전 수천 년 전 그려진 원시시대 동굴벽화가 그 증거다. 마찬가지로 언제부터 인간이 시를 짓고 춤을 추고 노래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진은 그 탄생일(?)이 명확하다. 1839년 8월 19일. 카메라를 사용한 사진(술)이 공식 발명(품)으로 공인된 날이다.
화가이자 발명가였던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 1787~1851)는 그날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은판사진술(銀板寫眞術)’을 시연했다. 세계 최초로 공인된 사진(술)은 다게르의 이름을 따서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고 불린다.
▶민병헌, ‘River’, 시리즈 중 ‘RT242 BHM’, 2013
아날로그 암실작업 고수하는 사진가
사진(술)은 빛에 반사돼 비치는 대상의 모습을 평면 위에 그대로 고정시키는 기술이다. 요즘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 동네마다 사진관이 있었다. 그리고 간판에 ‘D&P’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서 D는 카메라 속에 들어있던 필름에 기록된 빛(대상)의 흔적을 되살리는 작업, 즉 ‘현상(現像, Development)’을 뜻한다. P는 현상한 필름에 다시 빛을 통과시켜 이미지를 확대하고 화학약품을 이용해 종이(인화지) 위에 그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작업, 즉 ‘인화(Print, 印畵)’를 말한다. 이런 과정을 통틀어 ‘암실(暗室)작업’이라고 한다. 세상은 급변했고 디지털카메라 등장과 함께 필름이 사라졌다. 덩달아 번거로운 암실작업도 필요 없어졌다.
민병헌은 여전히 암실작업을 하는 사진작가다. 1955년에 태어났다. 참고로 소나무와 종묘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는 1950년 생, 달항아리 사진 등으로 잘 알려진 구본창 작가는 1953년이다. 민병헌보다 연배가 앞서는 이들도 이제는 디지털로 작업한다. 이처럼 요즘 거의 모든 사진가는 디지털카메라와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암실작업을 하는, 심지어 할 줄 아는 사진가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민병헌은 왜 아직까지 암실작업을 할까? 시대 흐름에 뒤처진 게으른 작가여서? 아니다. 결과 뿐 아니라 과정까지 작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디지털로 작업하는 사진가들이 그렇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더불어 암실에서 인화됐거나 디지털 프린트로 출력된 결과물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미묘한 차이가 있고 여기에는 여러 장단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선택의 문제. 작가마다 제각기 타당한 이유로 제작방식을 선택한다. 다만 민병헌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할 뿐이다. 과정까지 작업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다시말해 촬영과 암실작업 자체를 모두 즐긴다.
▶민병헌, ‘Snowland’, 시리즈 중 ‘SL010 BHM’, 2005
민병헌 사진은 추상에 가까운 풍경화
민병헌의 사진은 선명하지 않다. 일부러 햇빛이 충분한 날을 피해 촬영해서 그렇다. 사람들은 보통 사진 찍을 때 맑은 날을 선호하지만 민병헌은 흐리고 안개가 잔뜩 낀 날, 심지어 눈비가 오는 궂은 날, 그것도 새벽이나 해질 무렵을 골라서 촬영한다. 생각해보라. 아날로그 대형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롯이 혼자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가를. 그리고 어두컴컴한 암실에서 어떻게 찍혔을지 모를(디지털카메라는 현장에서 즉시 확인 가능하지만) 필름을 조심스레 꺼내 떨리는 마음으로 현상하고 인화하며 즐거워하는 사진가의 모습을.
민병헌은 40여 년 전부터 이 모든 작업을 오로지 혼자서 해왔다. 어쩌면 이런 외로움, 고독, 고요, 고립을 즐기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은 요란과는 거리가 멀다. 흐릿하고 잔잔하다. 허허롭고 애잔하다. 관객의 눈을 사진 앞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그 앞에 오래 더 붙잡아 두는 매력이 여기에 있다.
앞서 그림과 사진을 보는 관객의 이율배반적인 감상평에 대해 언급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민병헌 사진을 그림에 빗대 얘기할 수밖에 없다. 색이 선명한 서양화가 아닌 동양 수묵산수화로 말이다. 한지 위에 은은하게 번지는 먹의 농담과 여백은 동양적인 감수성의 대명사. 이런 전형을 이어받은 민병헌의 사진은 추상에 가까운 풍경화다. 한편으론 서구적 미니멀리즘의 절묘한 감각과 조화로 사진을 회화적 영역으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민병헌의 사진을 관습적으로 ‘흑백사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차라리 ‘회색사진’이라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흰색과 검정 사이에 존재하는 풍부한 ‘잿빛(灰色)’이야말로 민병헌이 추구하는 색채이기 때문이다. 민병헌의 사진은 카메라로 그린 서정적인 그림이다.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오래된 일본식 가옥에 살면서 촬영을 하러 전국 곳곳을 돌아다닌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