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전시실 전경 | 국립중앙박물관,
“잠시 대기해주세요. 저희 안내에 따라 한 분씩 들어오시면 됩니다.”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선다.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한 이들은 약속한 듯 출입구 앞 손 소독기로 향한다.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자 거리두기 발자국 스티커가 보인다. ‘서로를 지키는 거리·건강 거리 두기를 실천해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특별전시실’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따라가본다. 6월 18일 찾아간 서울 용산구 소재 국립중앙박물관은 코로나19 시대 쾌적하고 안전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는 문화공간이었다. 이처럼 도심 속 박물관을 비롯해 미술관 등은 코로나19 감염 최소화를 위해 여름철 예약제로 운영하고 공연장·영화상영관 등도 가급적 온라인 예매를 권장하는 방식으로 밀집도를 완화한다. 특히 코로나19 예방접종자에게는 공공시설의 이용요금을 할인해주고 문화재 특별관람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도심 속 ‘문화 바캉스’ 현장으로 들어가보자.
박물관
500년 아우르는 역사 속 인물 초상 78점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앞에선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전시를 보러 온 이들이 거리두기를 잘 지키며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8월 15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이 간직해온 명작 78점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로 500여 년을 넘나들며 세계 역사와 문화를 빛낸 인물들의 초상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최초 전시다.
초상화가 건네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관객들은 초상화 속 인물을 보며 그의 삶의 궤적과 그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상, 작품을 완성한 작가에 얽힌 사연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와 마주하게 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모든 작품을 3분여 길이 3차원(3D)으로 구현한 영상이 스크린에 펼쳐져 관객의 기대감을 한껏 높인다. 이어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이란 다섯 개 주제로 구성한 본 전시가 펼쳐진다.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 이는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상. 이 작품은 1856년 설립된 미술관의 1호 소장품이다. 다이아몬드 장식이 있는 스카프를 두른 찰스 디킨스는 ‘19세기 최고의 스타 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젊고 세련된 모습을 자랑한다.
전시에선 편견으로 역사가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인물의 얼굴도 소개한다. 메리 시콜은 크림전쟁 당시 나이팅게일 간호단에 합류하려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결국 독자적으로 간호 활동을 펼쳐 19세기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여성이 됐지만 사망 이후 잊혀진 인물이다.
엘리자베스 1세 등 다양한 인물 소개
2부 ‘권력’의 문을 여는 엘리자베스 1세 초상에 숨겨진 다양한 상징 요소를 읽어내는 것도 큰 재미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옷은 순결함과 불변성을, 손에 쥔 붉은 장미는 그가 왕조를 계승하고 지킨 진정한 통치자임을 암시한다고 주최 측은 설명한다. 2부에서 담대한 표정으로 관객을 응시하는 여성 교육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초상화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랑과 상실’을 주제로 한 3부 전시장에 들어서면 2011년 급성 알코올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초상화 ‘에이미 블루’가 관객을 맞는다. 그의 굴곡진 삶의 고단함이 오롯이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선 고전적인 유화에서 사진, 조각, 홀로그램(3차원 영상으로 된 입체 사진), 액정표시장치(LCD) 스크린까지 초상화의 다채로운 변화상을 조망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4부 ‘혁신’에서 만나는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초상은 색이 계속해서 변하는 LCD스크린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만큼이나 혁신적인 시도다. 나란히 놓인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은 1만 개 이상 이미지를 찍어 만든 3D 초상화다. ‘정체성과 자화상’을 주제로 한 마지막 5부에선 17세기 최고 초상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의 자화상부터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자화상 등도 눈길을 끈다.
철저한 방역 속 “문화 바캉스 최고 공간”
이 밖에도 브론테 자매, 록밴드 비틀스와 그들을 잇는 에드 시런, 배우 오드리 헵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 운동을 이끈 넬슨 만델라 등 76명의 삶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초상을 그린 작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안토니 반 다이크, 오귀스트 로댕, 앤디 워홀, 알렉스 카츠, 데이비드 호크니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 73명의 이름을 발견하는 기쁨도 크다. 중간에 에이미 와인하우스, 데이비드 보위, 에드 시런 등 초상화 속 음악가들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귀가 즐거운 코너’도 마련돼 있다.
관람객 윤인태 씨는 “정보기술(IT) 시대인 만큼 3D 영상이나 음악감상 코너 등 전시를 풍성하게 즐길 거리가 많아 참 좋았다”며 “단편적으로만 알던 유명 인사들인데 그들의 초상을 살펴보니 역사가 정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전시장 내 방역과 거리두기 등을 잘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며 “초등학생 손녀도 데리고 와서 쾌적한 문화 바캉스를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호모사피엔스’의 백미인 디지털 호수. 관람객이 호수에 들어서면 파동이 발생하여 다른 존재로 연결된다.
▶기획1실의 제1부 ‘진화’는 전시공간을 진화에 대한 백과사전처럼 연출, 바닥엔 다양한 고인류 화석표본을 전시했고 벽에는 화석 발견 일화와 문화사에 대한 연표 등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한 관람객이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표본을 만져보고 있다. | 곽윤섭 기자
700만 년 인류 진화 여정 한눈에
기획전시실로 향하자 학부모와 학생들이 보인다. 기획특별전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9월 26일까지)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다. 이 전시는 700만 년이라는 긴 인류 진화의 여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로 진화적 관점에서 본 인간 존재의 의미와 진화 과정에서 맺어온 다양한 생물종과 관계를 화석 및 고고 자료 등 700여 점의 전시품과 영상으로 풀어낸다.
제1부 ‘진화’ 전시장에 들어서자 먼 옛날 고인류 두개골과 뼈 일부 등 28종의 원시인류 인골 화석들이 마치 설치미술처럼 선 채 관람객들을 바라본다. 루시, 네안데르탈인, 샤니다르인 등 유명한 고인류 화석들이다. 전시공간 양옆 벽에는 화석 발견을 둘러싼 갖가지 사연과 지난 700만 년간 지구환경 변화를 정리한 도표가 있어 관람객들에게 하나의 역사 연표 안을 거니는 느낌을 선사한다.
제2부 ‘지혜로운 인간, 호모사피엔스’ 전시장에 들어서자 동굴 속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4만 년 전 동굴 입구에 들어온 듯 좁은 통로가 이어지는 가운데 프랑스 쇼베와 라스코 등의 동굴벽화 디지털 영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어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을 ‘예술’ ‘장례’ ‘도구’ ‘언어와 기호’ ‘탐험’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살펴본 2부에선 사자인간, 비너스 등 조각품, 눈금을 새긴 돌 등도 만나볼 수 있다.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이름의 실감형 콘텐츠는 이 전시의 백미다. 기후변화가 구현되는 하늘 아래 디지털 호숫가가 보인다. 관람객들은 이 호숫가 안에 서서 자신으로부터 발생한 파동이 다른 존재에게 퍼져나가는 모습을 실감형 콘텐츠로 체험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 두 전시는 회 차당(1회 30분) 50명 선착순(인터넷 예매 40명, 현장 발권 10명)으로 관람객을 받는다.
▶(왼쪽부터)호모 에르가스테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 국립중앙박물관
▶실감형 콘텐츠 ‘700만 년 동안의 기억’ 중 ‘직립보행’편. 직립보행, 언어, 기호 등 10가지 주제의 3D 모션캡처로 제작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곽윤섭 기자
▶코로나19 이전 국립국악원 야외공연장 연희마당에서 펼쳐졌던 ‘우면산 별밤축제’ 한 장면 | 국립국악원
공연장
예방접종 완료자에 할인 혜택
최근 우리 전통음악인 국악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국립국악원에선 다채로운 여름철 국악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이승재 관객개발팀장은 “체온 확인, 거리두기 좌석제, 손 소독제 비치, 방역 안내요원 배치 등 거리두기 단계별 코로나19 방역 관련한 지침들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8월 21일부터 9월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30분엔 국립국악원 야외공연장인 연희마당에서 ‘우면산 별밤축제’(이하 별밤축제)가 무료로 열릴 예정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열어온 별밤축제는 우면산 자락 아래 앉아 줄타기, 사물놀이, 풍물굿 등 다양한 우리 국악 장르를 엄선해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던 행사로 온라인으로 진행한 2020년에 이어 2021년엔 대면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한편 직녀성과 견우성이 만난다는 음력 7월 7일(양력 8월 14일) 저녁 7시 30분에는 연인들을 위한 공연 ‘은하수夜(야)’도 열릴 예정이다.
국립국악원에서 진행하는 ‘2021 토요명품’ 공연의 경우 백신 예방접종자를 대상으로 20% 할인혜택도 제공 중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역시 접종자와 동반자 1명에게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티켓 2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기획공연으로는 ‘11시 콘서트’ ‘토요 콘서트’ ‘ 평화콘서트’ ‘마음을 담은 클래식’ 등이 있다. 세종문화회관도 예방접종 완료자를 대상으로 현재 공연 중인 연극 <완벽한 타인>부터 연말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송년음악회’까지 2021년 자체 공연·전시 관람료를 10~30% 할인해준다.
▶국립국악원 내 시설 방역 모습 | 국립국악원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영화관
<싱크홀> 등 여름철 대작 관객 맞을 준비
여름 휴가철을 맞아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멀티플렉스(다중) 영화관들은 백신 예방접종자를 대상으로 6월 말까지 영화 관람료를 5000~6000원 할인해줬다. 1차 접종만 받아도 동반 1명까지 혜택이 주어졌다.
여름철 극장가 기대작들도 대기 중이다. 7월엔 되살아난 시체 ‘재차의’에 의해 기이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내용의 <방법: 재차의>, 류승완 감독의 신작 <모가디슈>가 개봉한다. 집이 싱크홀(땅꺼짐)로 추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재난 영화 <싱크홀>, 배우 황정민이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 액션 스릴러 <인질>은 8월 개봉을 기다리는 기대작이다.
특히 <모가디슈>와 <싱크홀>의 경우 극장 업계가 총 제작비 50% 회수를 보장하기로 해 화제다. CGV 커뮤니케이션팀 황재현 팀장은 “극장이 코로나19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여름 성수기를 맞아 텐트폴 영화(흥행보장 영화)가 개봉함으로써 관객이 극장을 찾고 또 다른 한국영화 개봉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원했다”며 “여름 굵직한 기대작들을 보면서 무더위를 식히는 극장 바캉스 문화가 다시 찾아오고 영화 흥행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