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와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2050 탄소중립위’ 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 인터뷰
5월 29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탄소중립위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정책과 기후변화 대응을 총괄하는 지휘본부(컨트롤타워)다. 산업계·시민사회 등과 소통을 바탕으로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마련하고 이행을 주도하게 된다. 18개 관계부처 장관, 기후·에너지·산업·노동 분야 전문가, 시민사회·청년 등 각계를 대표하는 민간 위원 77명을 포함한 97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공동위원장은 김부겸 국무총리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출범 놓고 평가 엇갈려… 인사말 하다 울컥”
출범식이 끝난 뒤 1차 회의가 이어졌다. 윤순진 위원장의 인사말에 회의장은 비장함이 감돌았다.
“많은 사람이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스스로는 이 자리가 축하받을 자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만이 아니라 탄소중립위원으로 위촉된 우리 모두에게 꽃잎이 깔린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가시 돋친 고난의 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6월 1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탄소중립위 사무실에서 만난 윤순진 위원장은 “탄소중립위의 출범을 놓고 기대와 비난, 성원과 우려가 뒤섞인 소용돌이에 내던져진 것 같아 인사말을 하면서 울컥했다”고 털어놓았다.
윤순진 위원장은 미국 델라웨어대학교 석사과정에 들어간 1995년부터 기후위기 문제를 공부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2001년부터 20년간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하고 연구한 것은 물론 시민단체 활동까지 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에너지 대안센터’와 ‘에너지전환’ 단체를 거쳐 2018년 ‘에너지전환포럼’ 발족도 주도했다.
“그동안 활동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위에 맡겨진 역사적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기후위기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적지 않았습니다.”
윤순진 위원장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공동위원장직을 수락한 데는 정부가 기후위기 문제에 진정성을 가지고 기존보다 전향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윤 위원장은 “정부는 세계 흐름에 벗어나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있다”라고 말했다.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 민간위원장│정책기획위원회
감축 목표 상향 등 일정 촉박 법제화 난망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48차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후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목표가 됐다. IPCC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더 가깝게 2030년까지 201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5% 감축을 권고했다.
2020년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최근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서 2017년 배출량 대비 24.4% 감축이라는 현재 2030년 목표를 상향해 10월 초 초안을 발표하고 11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기 전에 확정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시간이다. 2020년 11월 7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설치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탄소중립위는 반년이 지난 뒤에야 출범했다. 조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위원이 있다고 위원회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사무처가 있어야 하는데 직원들도 발령을 못 받았어요. 2030년 감축 목표 상향이라는 국제사회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미룰 수 없어 출범한 겁니다.”
탄소중립기본법 등 관련 법안 통과가 미뤄지면서 탄소중립위는 법률상 위원회가 아니라 대통령령에 의한 기구로 출범할 수밖에 없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2021년 2월 25일 입법공청회를 열었지만 현재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돼 있다.
“감축 목표를 선언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각 부처에 이행을 점검하고 독려하려면 탄소중립위의 역할과 기능이 법률에 근거해야만 합니다. 2020년 기후위기 비상결의안을 통과시킬 정도로 비상 상황이라는 게 국회의원들의 인식이라면 그것에 답해 탄소중립기본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주기를 바랍니다.”
▶5월 29일 서울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탄소중립위의 첫 국제행사인 ‘2021 글로벌 청년 기후환경 챌린지(GYCC)’가 진행되고 있다.│KT
기후위기 피해 겪을 미래 세대 목소리 담아
현재 탄소중립위는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장기 방향성을 제시하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 국책연구원 담당자들이 부처별 전문가와 함께 마무리하는 단계다.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확정되는 대로 탄소중립 이행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30년 뒤 경제·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청사진인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미래 세대에 미치는 영향력과 의미가 매우 크다. 이 점에 착안해 청년 세대와 충분한 교감을 토대로 검토하기로 했다. 분과위원회와 전문위원회에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포함될 2050년 미래상과 부문별 감축 수단 등을 논의하고 협의체와 국민정책참여단 등을 대상으로 폭넓은 의견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 시나리오를 마련할 예정이다.
윤 위원장은 “기후위기 문제는 지금 세대가 만들고 심화시킨 문제이지만 지체 현상에 따라 미래 세대가 책임지며 더 큰 피해를 겪게 되는 상황”이라며 “미래 세대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들이 관심을 갖고 변화를 만들어내 사회 변화의 마중물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침 탄소중립위의 첫 국제행사가 기후변화에 대한 미래 세대의 의견을 모으는 ‘2021 글로벌 청년 기후환경 챌린지(GYCC)’였다. 2021 GYCC는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미래 세대 특별 세션의 하나로 5월 29일 서울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덴마크, 콜롬비아 등 약 35개국 100여 명의 청년·청소년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했다.
온라인으로 참여한 토론자들이 현장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현실감을 받도록 5세대(5G) 이동통신에 기반을 둔 홀로그램 텔레프레전스 기술을 적용해 우리나라의 선진 정보통신기술(ICT)을 세계에 시연했다. 2023년 GYCC는 콜롬비아 정부의 제안으로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기로 했다.
윤 위원장은 “이 행사를 준비했던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되면서 탄소중립위가 주관하는 첫 국제행사다. P4G 정상회의에 글로벌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 행사가 들어간 건 처음”이라며 “그전까지 미래 세대가 구경꾼으로 존재했다면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초대해 목소리를 내게 한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P4G 정상회의 연 한국, 개도국에 본보기
5월 30~31일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는 국내에서 처음 열린 환경 분야 정상회의로 각국 정상급 인사 46명과 국제기구 대표 21명 등 모두 67명의 지도자가 참석했다. 정상회의 참가 국가와 국제기구들은 회의 결과를 담은 ‘서울선언문’을 채택했다. 윤 위원장은 “서울선언문에는 산업계·시민사회·미래 세대 등 각계 사회적 행위자들이 같이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변화를 함께 모색해나가야 한다는 정신이 들어 있다”고 평가했다.
2021년 P4G 정상회의의 목표는 ‘포용적 녹색 회복을 통한 탄소중립 비전 실현’이었다. 윤 위원장은 말했다. “여기서 포용이란 누구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특히 취약계층을 배려하고 같이 가자는 이야기다. 탄소중립을 위해 한 나라가 혼자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서로 경험을 공유하며 도움이 필요하면 지원하는 식으로 연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우리나라는 이번 정상회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포용성 강화를 위해 기후 선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참여하는 공동 문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윤 위원장은 “기후위기가 심화하면 가장 부정적 피해를 받는 게 개도국”이라며 “개도국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과 경제 약자”라고 지적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가 긴 선진국의 경험을 개도국에 적용하기 쉽지 않기에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바뀐 우리나라가 개도국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험이 유사한 우리가 잘하면 개도국에 희망을 주는 거죠. ‘한국 같은 에너지 다소비 국가도 짧은 시간에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우리의 경험을 쉽게 공유할 수 있으니까요.”
기후위기는 자연을 파괴해온 인류 문명에 자연이 주는 경고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면 아무런 책임 없는 미래 세대와 다른 생명들이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윤 위원장은 “만약 탄소 문명에 대한 성찰에 기반을 두고 우리가 가진 기술 잠재력으로 기후위기에 전향·혁신적으로 대응한다면 문명의 대전환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이 기회를 절대 잃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소중립위를 만든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에요. 이런 역사적 기구에 참여한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 변화를 만들어가겠습니다. 임기가 끝날 때 탄소중립위가 해낸 일에 보람을 느끼고 기후위기에서 벗어나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주춧돌을 놓았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