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날도 지나고 나면 한 폭의 그림 “더 멋진 삶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죠”

2021.06.28 최신호 보기
▶83세에 그림을 시작한 김두엽 작가│북로그컴퍼니

94세에 <그림 그리는 할머니…> 펴낸 김두엽 작가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살면서 미국의 국민 화가가 된 모지스. 75세에 신진 작가로 선정돼 86세에 슈퍼스타 작가로 등극한 영국의 로즈 와일리. 그리고 전라남도 광양의 작은 집, 작은 거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94세 김두엽 할머니.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결혼과 동시에 엄마로 살아가다가 70세가 넘어서 재능을 찾아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들은 늦은 나이에 뭔가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깨달음을 주는 동시에 100세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유쾌하고 울림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김두엽 작가는 83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난한 탓에 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그는 그림 또한 배운 적이 없다. 할머니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입소문이 퍼져 낮에는 택배기사로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는 막내아들 이현영 작가와 함께 소규모 전시회를 십여 차례 열었다. 2019년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유명인이 됐다. 최근 자신의 삶과 그림을 이야기하는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를 발간한 김 작가를 인터뷰했다.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표지 사진│북로그컴퍼니

지난날의 고난 동화처럼 아름답게 그려
김 작가의 그림은 동화처럼 지난날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 작가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나 18세가 돼서야 한국에 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 보는 남자와 결혼했고 우리말도 못 하고 글도 모른 상태에서 한국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시집살이까지 더해지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김 작가는 “고생을 많이 해서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내 자식들 안 굶기고 고생 안 시키려고 애썼던 시간”이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리 애쓰며 살았던 보상인지 자식들 모두 굴곡 없이 잘살아주었고 나 역시 건강하게 그림 그리며 살고 있다”며 “지난 시간의 이유가 있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내가 자랑스럽다.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작가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그림을 보며 “고생이 녹아서 그림이 총천연색으로 진하다”며 웃음 짓는다.
김 작가의 삶은 노동과 가난의 연속이었다. 농사, 나물 장사, 세탁소 등 생활 전선에서 매일 먹고사는 일을 걱정했다. 생선 구이를 해도 아이들 입에 넣어주느라 생선 대가리 하나 마음 편히 먹을 수 없었다. 자녀들이 자란 후에도 목욕탕에서 빨래해주며 숙식을 해결한 적도 있었다.
김 작가는 “지금이야 ‘힘들었구나’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힘들다는 생각도 못 하고 살았다. 그저 굶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았다. 평생 고생했지만 그것도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고생했던 기억을 예쁘게 그림으로 담아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다.
채소나 곡식을 팔아 돈을 벌던 때도 자신의 그림으로 보면 아름다운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김 작가는 “세탁소를 하던 때도 시집살이를 하던 때도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예쁜 색으로 담으니 ‘그래도 좋은 시절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감 이고 장에(2019)_ 시장에 야채나 곡식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을 그린 그림이다.

일흔 넘어 한글 배우고 80대에 붓 잡아
김 작가의 그림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이 많다. 노희경 작가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글도 아닌 그림을 보고 울었다. 슬퍼서 운 게 아니고, 예뻐서 아름다워 울었다. 그리고 드는 의문 하나. 대체 화가 김두엽 할머니에게 인생은 무엇이기에 고되면 고될수록 아프면 아플수록 다치면 다칠수록 이리 더 희망차지는 것인지. (…) 징징대는 내 삶 앞에 김두엽 화가의 그림 같은 깔끔한 희망이 뚝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다.”
김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특별히 많은 계산을 하지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색으로 꽃과 나비, 새, 풍경을 그리기도 하고 호기심이 이는 것을 유심히 살피다가 그리기도 하고 때론 아련한 지난날 나의 기억을 상기하며 그려보기도 한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70세가 넘어 한글을 처음 배웠고 80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배우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뭔가를 ‘배운다’거나 ‘시작한다’는 거창한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주저 없이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림 또한 우연한 기회로 그리게 됐다. 심심해서 달력 뒷장에 연필로 사과를 그렸다가 그걸 본 막내아들이 “어머니, 정말 잘 그렸어요”라고 칭찬하자 계속 그린 것이다.
막내아들인 이현영 작가는 어머니 그림을 처음 보고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 그림 그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색연필과 물감을 사드렸다. 이 작가는 “내가 미술을 전공했지만 어머니에게 한 번도 ‘이렇게 해보셔라’라고 가르쳐드린 적이 없다. 어머니 스스로 다채롭게 색을 칠하고 그게 그림 안에서 조화롭게 잘 어우러지는 게 참 신기했다”고 말했다.

▶가족(2020)_ 김두엽 작가는 닭 그림을 자주 그린다.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 생활, 그때 수탉이 암탉과 병아리에게 먹이를 챙겨 주는 걸 보고 ‘닭들도 저렇게 다정한데…’란 생각을 자주 했다. 그 기억 때문에 작가에게 닭은 ‘따듯한 가족’이다.

300편 넘게 그리고 10회 이상 전시회 열어
일본에서 태어나 18세까지 일본에서 자랐으니 한글을 알지 못했다. 김 작가는 “제일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은 버스를 탈 때마다 행선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제일 많이 이용하는 봉강, 광양, 여수, 순천 행선지를 눈치로 외웠다”고 설명했다.
교회에서 본격적으로 한글을 공부했다. 교회에 다니면서 성경과 찬송가를 받았지만 목사님이 “어디 어디 펴보세요”라고 해도 그 부분을 찾을 수 없어 답답했다. 김 작가는 답답한 마음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글도 그림도 애초에 배울 생각이 없었지만 배우고 나니 지금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 모른다. 내 그림에 사인을 하고 내 책 표지에 직접 제목도 썼다. 책 가장 앞 장에 ‘모두 행복하세요’라고 독자들에게 편지도 남겼다”면서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나에게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나를 보고 다들 뭐든 용기를 내 시작했으면 좋겠다. 뭘 시작해도 나보다 몇 배 더 빨리 시작하는 것이니 얼마나 더 멋진 삶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냐”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제껏 300편이 넘는 그림을 그리고 10회가 넘는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로 서울 서소문동에 자리한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렸던 그림전을 꼽았다. 2021년 5월 그는 서울에서 처음 전시회를 열었다. 광양에서 서울까지 멀어서 가지 않으려는 그를 가족들이 설득해 전시회에 참석했다. “막내아들이 택배기사로 일하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라서 회사의 높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주고 우리 가족도 다 모여서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꽃과 밤(2021)_ 작가는 화려한 색감의 꽃과 꽃나무 그림을 자주 그린다.

▶놀이(2021)_ 작가의 광양 동네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북로그컴퍼니

코로나19 속에서도 어르신 일상 이어져
그가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감 이고 장에’다. 김 작가의 책에는 ‘아팠던 날도 지나고 나면 한 폭의 그림’이란 소제목이 있다. 그는 “그 제목 그대로 난 이 그림이 좋다”고 했다. 김 작가는 집을 그리는 걸 즐긴다. 그리운 집, 외할머니 집, 지금 살고 있는 광양의 집, 한때 부러워했던 이웃 부잣집 가족과 강아지…. 그의 그림에는 이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흐른다.
그는 “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이전의 일을 가슴에 품고 회상하기에 가능한 것 같다”면서 “집을 생각하면 그저 내 자식들과 같이 밥 먹고 부둥켜 자고 무엇이든 함께했던 때가 떠올라 웃음이 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김 작가의 일상은 이어진다. 그는 “다리가 안 좋아서 코로나19 전에도 바깥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었다. 나는 괜찮은데 젊은이들이 답답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빨간 시내버스 첫차가 떠나는 모습과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 등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큰아들과 같이 장에 간다.
김 작가는 “갈치도 사고 찔룩 게도 사고 젓갈도 사고 팥죽도 사고 참 재미있다. 일요일에는 큰아들과 함께 교회에 간다. 평일에는 소일 삼아 밭에 가는 큰아들을 따라나서기도 한다. 밭에 가서는 가만히 못 있어서 호미를 들고 김이라도 맬 요량으로 팔을 걷어붙인다”고 말했다. 큰아들의 밭에는 온갖 고운 꽃이 때에 맞춰 핀다. 빨간 장미와 양귀비가 곱게 피더니 지금은 수국이 피어 절로 마음이 고와진다. 밭에 가지 않을 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린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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