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06.28 최신호 보기
▶(맨 왼쪽부터) 윤진서 씨와 그의 어머니, 언니가 제주에서 함께 찍은 사진│윤진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답이 없는 질문이겠지만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문득 어떤 분위기나 느낌에 매혹된다거나 공간이 주는 정서가 느껴질 때, 이를테면 아주 정갈하게 정돈된 집의 부엌이나 책으로 가득 찬 고요한 서재 같은 곳에 발을 들이면 ‘나도 책을 많이 읽고 살아야지’ 혹은 ‘집에 가면 정리 정돈을 해야겠다’ 같은 마음을 먹으며 나은 삶을 다짐하게 된다.
나의 경우에는 제주의 자연에 매혹됐고 최근 6년간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정원을 가꾸고 요가를 하면서 오로지 자연과 자신에게만 집중된 삶을 살아왔다. 그러기를 바라며 나를 매여 있게 하는 관계도 정리하고 ‘입도’를 택했다. 제주에서 삶은 평화와 자연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평화를 느낌과 동시에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내게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시골로 와서 심심한 거라고도 했고 집의 위치가 제주 시내가 아니라 곶자왈 안 숲속이라 더 그럴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내가 갈급함을 느낀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시내까지야 운전하면 30분 안에 영화관이든 박물관이든 갈 수 있었고 귀촌해 몇 년 못 채우고 도로 나가는 사람들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숲속을 하염없이 걸어도 봤지만 그곳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을 무렵 촬영이 시작됐고 서울로 온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비록 4개월이지만 인생의 많은 단서를 발견하기도 했다. 나의 인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집중을 그리워했었다는 것,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웠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들과 소통이 필요했었다는 것. 이것들 없이는 홀로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혼자는 어차피 평화롭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과 강아지들, 꽃들이 있었지만 남편이 직장에 가고 나면 홀로 사색을 하며 긴 시간을 보냈고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굉장히 만족하며 살게 됐다. 그래서인지 외부로 관심도 점점 사라져 갔다. 그렇다. 외딴섬에서 조용히 살 수 있다면 누구라도 평화롭게 새소리만을 듣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태 그것을 알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떠나서 시간을 보냈던 걸까?
갈증은 가족에 대한 갈증이었으며 촬영 현장이거나 동료들 같은, 이전의 내게 있었지만 멀어지고 싶었던 것들에도 있었다. 그리고 섬으로 갔지만 난 그곳에서 오히려 내게 주어진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것을 알고 나니 내가 태어난 것을 세상에서 가장 기뻐하며 사랑을 줬던 분을 떠나보냈다. 장례를 치르는 빈소에서 너무 늦게 알게 된 것들을 생각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늦게 알아차렸다. 다만 한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이 오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윤진서 배우_ 2003년 영화 <올드보이>로 데뷔 후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책 <비브르 사비> 등을 썼다. 최근 유튜브 채널 ‘어거스트 진’을 개설했다.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며 제주에 살고 있다.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