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영, ‘Appearing or Disappearing’, 캔버스에 유채, 114.1×144.5cm, 2012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자기 얼굴을 스스로 볼 수 없다. 남 얼굴은 쉽게 보지만 정작 내 얼굴을 보기 위해선 도구가 필요하다. 거울이 대표적이다. 때론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굴뚝 청소를 하고 나온 두 사람. 한 사람은 얼굴에 시커멓게 검댕이 묻었고 다른 사람은 깨끗했다. 두 사람 중 세수를 해야겠다고 맘먹은 사람은 누굴까? <철학과 굴뚝청소부>라는 제목의 책에 나오는 일화다. 타인에게 보이는 내 얼굴이야말로 나도 모르는 진짜 ‘나’일지 모른다.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사람은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년)다. ‘자아’ ‘주관’ ‘주체’ 등으로 해석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인물이다.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도 결국 의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데카르트가 내린 결론이다. 유명한 명제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정보영, ‘Lighting up’, 캔버스에 유채, 72.7×91cm, 2013
▶정보영, ‘Belonging-together-within’, 캔버스에 유채, 97×145.5cm, 2013
주체적 존재로 독립한 ‘생각하는 화가’의 탄생
데카르트가 살았던 17세기 유럽 그 시대가 바로 바로크다. 미술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기다.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 가운데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년)가 있다. 스페인 궁정 전속화가였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바로크 정신이 응축된 걸작을 남겼다. 1656년에 그린 ‘시녀들(Las meninas, 그림4)’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역사상 이 작품만큼 해석이 분분한 경우도 없다. 그림 속 등장인물 9명(사실은 11명)은 모두 실존인물이고 특히 왼쪽에 팔레트와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벨라스케스다. 얼핏 보면 가운데 서 있는 어린 공주가 주인공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그림 밖에 있다. 공주 뒤쪽 작은 거울에 비친 왕 부부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그들이 진짜 주인공이다.
화면 왼쪽에 일부분만 보이는 캔버스(뒷면)에 주목하라. 아마도 캔버스 앞면에는 이 그림의 모델, 즉 왕 부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을 게다. 다시 말해 그림의 실제 주인공인 왕 부부는 정작 화면 밖에 있는 셈이다. 더불어 왕 부부가 서 있는 자리는 이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 위치와도 같다.
이와 같이 벨라스케스는 관람객이 보는 그림 속 현장과 그림 속 인물이 그림 밖 세계를 바라보는 장면을 한 화면에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그림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이 그림의 진정한 주인공은 ‘나-화가’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화가야말로 실재와 환영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창조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주임을 주장한다. 데카르트 이후 자아를 자각하고 자의식과 주관을 드러내면서 주체적 존재로 독립한 ‘생각하는 화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벨라스케스, ‘시녀들 Las meninas’, 캔버스에 유채, 318×276cm, 1656(스페인 프라도미술관 소장)
침묵하는 그림으로 발언하는 화가
화가 정보영은 바로크회화의 전통을 이 시대에 걸맞게 해석하고 계승하는 작가다. 이해를 돕고자 먼저 작가의 박사학위 논문 일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논문 제목은 ‘현대회화의 공간재현과 실재의 부재’다.
“연구자의 공간재현 방법론은 극사실회화와 바로크회화의 방법론을 수용하고 절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 일환으로 사물의 경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신 어두움의 층과 시간과 사건의 도입으로 사물의 경계를 불투명하게 함으로써 화면 너머 가상의 침잠지점을 강조하였다. 이 지점이 부재의 현존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연구자의 재현의 핵심임을 밝힌다. 이를 요약해서 ‘부재의 리얼리즘(Realism of Absence)’의 한 유형으로 간주했다.”
벨라스케스 그림과 달리 정보영 그림엔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공연이 끝난 무대처럼 텅 빈 공간만 그린다. 거울과 인물의 시선, 위치 등이 벨라스케스 그림을 해석하는 단서였다면 정보영 그림에선 창문과 촛불, 의자, 가구, 유리병, 오르골 같은 오브제(대상)가 그것을 대신한다. 빛과 그림자로 절묘하게 표현된 이런 이미지를 통해 누군가 공간 속에 남긴 시간의 흔적과 체취가 느껴진다.
비록 그림 속에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또한 벨라스케스 그림에서 거울이 중요한 단서였던 것처럼 정보영 그림에선 창문이 그 역할을 한다. 창문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야말로 정보영의 그림을 특징짓는 요소다. 밝음과 어둠의 표상인 빛과 그림자는 2차원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의 일루전(illusion, 환상)을 구현한다.
이는 부재(不在)를 통해 현존(現存)을 표현하는 ‘부재의 리얼리즘’을 위한 도구인 셈이다.
정보영은 평면 회화만을 올곧게 추구하는 화가다. 회화에 대한 학술적 탐구와 전통 유화기법을 능숙하게 발휘할 줄 아는 보기 드문 작가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선비 같다고나 할까? 작품을 실제 보면 완벽할 정도로 놀라운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특유의 차분한 색채와 군더더기 없이 축적된 밀도 높은 붓질은 그림 표면의 깊이를 더한다. 미술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최근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서양화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