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수를 주목하라
한때 개최 여부마저 불투명했던 도쿄올림픽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는 이번 도쿄올림픽에 29개 종목 354명의 선수단(선수 232명, 임원 122명)을 파견한다. 선수단 주장은 사격의 진종오(42)와 여자배구의 김연경(33)이 맡았다. 대한체육회는 이번 올림픽 목표로 금메달 7개와 세계 10위 진입을 내걸었다.
‘활·총·칼’의 금빛 향연
가장 주목받는 건 우리나라의 대표 메달 밭으로 꼽히는 이른바 ‘활·총·칼’이다. 양궁은 7월 23일, 사격과 펜싱은 24일 경기가 시작되는 만큼 대회 초반부터 금메달 도전에 나서는 셈이다. 이들 종목이 얼마나 좋은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서 도쿄올림픽 선수단의 전체 사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먼저 양궁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대표팀 선발이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종목이다. 7월 24일 양궁 혼성 결승전이 예정된 만큼 첫 메달을 선물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개인전 금메달의 유력한 후보로는 여자양궁의 강채영(25)이 꼽힌다. ‘차세대 신궁’으로 꼽히는 강채영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점 차로 탈락하며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을 여자부 1위로 통과했다. 이번 대회에서 3관왕을 노리는 강채영은 6월 28일 진천선수촌에서 기자들과 만나 “후회 없이 하고 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우리나라 양궁 역사상 최연소 메달리스트를 노리는 ‘고교 궁사’ 김제덕(17)도 주목할 만하다. 선발전에서 3위에 오르며 가까스로 대표팀에 승선한 김제덕은 강한 정신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대회나 훈련 때 “파이팅”을 큰 소리로 외치며 기합을 넣는 등 젊은 패기가 돋보인다. 류수정 양궁대표팀 감독은 “김제덕의 눈매를 보라. 보통내기가 아니다.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고 평가했다.
올림픽 5회 연속 출전의 ‘베테랑’ 진종오가 버티는 사격도 관심을 끈다. “아직도 총을 쥐면 설레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는 진종오는 이번 올림픽에서 주력 종목인 50m 권총이 폐지됐음에도 자신감이 넘친다. 올림픽 메달을 6개 획득해 양궁 김수녕과 함께 최다 올림픽 메달 보유자인 진종오는 이번 대회에서 10m 공기권총과 혼성 10m 공기권총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일각에서는 ‘은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까지는 도전할 것”이라고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진종오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최연장자다.
리우올림픽 당시 “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희망을 안겨줬던 펜싱의 박상영(26)도 이번 올림픽에서 또 한번의 금메달에 도전한다. 박상영은 “손기술이 확실히 좋아졌는데 상대도 그만큼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많아서 철저히 준비해서 나가야 할 것 같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눈빛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다만 지난번 올림픽처럼 극적인 승리보다는 “무탈하게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MZ세대’의 돌풍에 주목하라
이번 도쿄올림픽에는 2000년대에 태어난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선수들도 대거 출전한다. 특히 10대 선수들의 돌풍을 눈여겨볼 만하다. 대한체육회는 이들이 이번 올림픽에서 깜짝 메달을 획득하는 등 파란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먼저 ‘탁구신동’ 신유빈(17)이 있다. 고교 진학도 미루고 실업팀 입단을 선택하며 탁구에 매진한 신유빈은 2020년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이번 대표팀에서 여자부 최고의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빠른 속도를 갖춘 데다 최근에는 근력 훈련에 집중해 파워도 좋아진 모습이다. 신유빈 스스로도 “근력운동을 한 뒤 확실히 힘이 좋아졌다”고 한다. 특히 신유빈은 ‘긍정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신력이 강력해 대회에서 ‘사고’를 칠 수 있는 선수로 꼽힌다. 탁구선수 출신인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탁구를 주목해달라”고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체조의 여서정(19)은 체조계에서 ‘실수만 없다면 올림픽 메달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도마 부문에서 32년 만에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여서정은 도마를 짚은 뒤 공중에서 두 바퀴를 비트는 신기술에 성공하며 이 기술(난도 6.2)에 성공했는데 이 기술에는 ‘여서정’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대학에 입학하는 대신 ‘도마 황제’로 불리는 양학선(29)이 활약 중인 수원시청에 입단한 뒤 노하우를 배우고 있는 여서정은 양학선과 함께 금빛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대표팀 최연소 출전자인 수영의 이은지(15)는 중학생 신분으로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배영 100m와 200m에 출전한다. 아직 메달권으로 평가받진 못하지만 남자부의 황선우(18)와 함께 우리나라 수영의 미래로 꼽힌다. 1988 서울올림픽 이후 지어진 서울 송파구 오륜중학교(1989년 개교)에 다니고 있는 그는 올림픽과 깊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막판 담금질에 한창이다. 이은지는 “올림픽에 뛴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며 “노력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축구·야구의 특명… ‘일본을 넘어라’
전통적으로 국민의 관심이 큰 구기 종목들도 올림픽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팀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축구, 야구, 여자농구, 여자배구 등에 출전한다.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출전하는 데다 곳곳에서 라이벌 일본과 대결이 점쳐지는 만큼 선수들의 다짐도 남다르다.
먼저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역대 올림픽 축구 최고 성적인 우승을 노린다. 이름값 대신 철저히 실력과 팀 융합성을 중심으로 선수를 선발한 데다 와일드카드(25세 이상 선수) 황의조(29), 김민재(25), 권창훈(27)이 합류하며 기대를 높였다.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곧바로 8강에서 일본과 만날 확률이 높다. 만약 8강에서 피해간다면 3∼4위전이나 결승에서 일본과 맞상대할 수 있다.
이번 올림픽 야구는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종목에 편입해 도쿄올림픽이 끝나면 당분간 올림픽 야구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이번 대회 우승을 갈망하는 이유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은 비교적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메이저리그 도전을 위해 떠난 양현종(33)과 김하성(26)의 공백이 뼈아프다. 대표팀의 37.5%가 국제무대 경험이 없고 특히 투수 쪽에서 선수 가뭄을 겪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2∼3이닝 이상 투구가 가능한 투수들을 대거 선발해 여러 투수가 짧은 이닝을 던지는 전략을 구상 중인데 젊은 투수들이 얼마나 제 몫을 해줄지가 관전 포인트다.
배구와 농구에서는 남자팀이 예선에서 탈락하며 여자팀만 본선에 참여한다. 국민 스타 김연경이 주장을 맡은 여자배구 대표팀이 얼마나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학교 폭력 논란 등으로 주요 선수들이 이탈하며 전력이 약화했지만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국보급 센터’ 박지수(23)가 버티고 있는 여자농구 대표팀(세계랭킹 19위)이 같은 조에 속한 강호 스페인(3위), 캐나다(4위), 세르비아(8위)를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쏠린다.
그 밖에 눈여겨볼 만한 경기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스케이트보딩, 가라테, 서핑, 스포츠클라이밍 등 다양한 신규 종목이 첫선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채현(18)이 스포츠클라이밍에 도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해진 높이의 인공암벽을 누가 더 빨리 높이 등반하는지 겨루는 스포츠클라이밍은 볼더링, 리드, 스피드 세 가지 종목으로 나뉘는데 올림픽에서는 세 부문의 점수를 더해 경쟁하는 ‘콤바인’ 방식으로 승부를 낸다. 리드 부문에서 세계랭킹 2위를 기록 중인 서채현은 신생 종목의 초대 챔피언을 꿈꾸고 있다.
수영(200m), 펜싱(에페 풀리그), 승마(장애물 12개), 레이저 런(육상 3200m+사격 20개 표적)을 모두 치르는 근대5종은 이번 올림픽에서 깜짝 메달을 선물할 종목으로 꼽힌다. 신치용 선수촌장이 “유심히 지켜봐 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에서 전웅태(26), 정진화(32), 김세희(26), 김선우(25) 등 남녀 네 명이 출전한다.
이준희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