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처벌이 아닌 사회 안전 위한 것 산업재해 없는 사회를 향한 출발선

2021.06.14 최신호 보기
▶5월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이선호씨 추모 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고인의 아버지 이재훈 씨가 헌화한 뒤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이선호 씨는 4월 22일 경기 평택항 항만 부두에서 300kg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한겨레

시행 앞둔 ‘중대재해처벌법’ 바로보기
울산에서 컨테이너 청소하던 30대, 40대 노동자 2명 질식사.
아산 자동차공장에서 30대 이주노동자 설비에 머리 끼여 사망. 인천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50대 일용직 노동자 굴착기에서 떨어진 200㎏ 무게의 돌에 맞아 사망.
세종의 제지공장에서 50대 화물 노동자가 컨테이너 문 열다가 300㎏ 넘는 폐지 더미에 깔려 사망.
인천 남동공단의 기계공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300㎏ 무게의 철판 구조물에 깔려 사망.
창원 부산신항에서 물류센터 30대 근로자 42t 대형 지게차에 깔려 사망.
동해 시멘트 공장에서 협력 업체 소속 60대 기사 크레인 추락으로 사망.
노동절이 있는 2021년 5월의 마지막 열흘, 사업장의 미흡한 안전 조치로 인한 노동자 사망 기록이다.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 일부는 최근 몇 년째 심각한 산업재해가 가장 잦은 사업장으로 지목된 곳이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이 최상위권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사망 통계에 따르면 2020년에만 산재 사고로 882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2019년보다 27명(3.2%) 늘어났다. 하루에 2.4명의 노동자가 출근했다가 산업 현장에서 죽음을 당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이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2021년 1월 26일 제정돼 이로부터 1년 뒤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1명 이상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부상 및 질병에 대해서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2020년 1월 16일부터 전면 개정돼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처벌 수위를 높인 법이다.
단순히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안전보건 조치를 강화하고 안전투자를 늘려 중대재해를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 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사고 예방에 더 집중하고 사고 발생 시 책임을 강하게 해서 기업주가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더 힘쓰게 하겠다는 취지다.

모두의 안전을 확보해라
먼저 법의 보호대상을 늘렸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대상은 근로자다.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대상은 종사자 및 이용자 모두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말하는 종사자란 누구인가? ①근로기준법상 근로자 ②도급, 용역, 위탁 등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 ③사업이 여러 차례의 도급에 따라 행해지는 경우에는 각 단계의 수급인 및 수급인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또는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와 관계가 있는 자 모두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보호대상은 수행 사업과 관련해서 일하고 있는 사실상 모든 사람이다. 이 법을 제정함에 따라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모두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강화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사업자는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을 구축하고 재해 발생 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조치와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등의 의무를 지게 된다.
셋째 중대재해처벌법은 책임 범위를 넓혀 도급, 용역, 위탁 등 관계에서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규정됐다. 이로써 제3자에게 도급 등을 행한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의 종사자에게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넷째 앞으로 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존에 산재사고 발생 시 단위 사업장의 책임자 내지 실무자 위주로 형사처벌이 이뤄져 산재사고의 실질적 예방에 미흡했다는 반성에서 마련됐다.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와 달리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사례에서는 안전관리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뿐 대표이사까지 책임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대표이사가 책임을 면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사업장의 안전보건 조치를 해야 할 의무자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업주’는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는 자, 타인의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하는 자를 말하고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또한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지방공기업, 공공기관의 장도 해당된다고 규정한다.
일부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인 책임자로서는 대표이사에 준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졌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앞으로 대표이사에게 경영책임자로서 형사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층 무거운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다섯째 처벌 기준도 대폭 강화했다.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한다. 전자는 사망 1명 이상 또는 동일한 사고로 부상 2명 이상이 발생한 경우를, 후자는 사망 1명 이상 또는 동일한 사고로 부상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뜻한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1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망재해에 대해서는 징역의 최소 형량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징역과 벌금이 동시에 부과될 수 있다. 또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한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했을 때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 다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동일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을 받는다.
여섯째 법인에는 양벌규정에 의해 벌금형이 부과될 수 있다. 법인에 대해서는 1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최대 50억 원,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했을 때 최대 1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마지막으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한층 무거운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중대재해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 그 액수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이는 앞서 설명한 대표이사의 형사책임이나 양벌규정에 의해 법인에 내려지는 벌금형과 전혀 별개의 것이다.

2022년 1월 27일부터 단계적 시행
이런 강력한 처벌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재해 예방을 위해 사전에 안전조치와 교육 등을 철저히 했는지 그리고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후속 조치, 즉 중대재해로 인한 직원과 유가족에게 회사가 책임감을 가지고 합의와 배상금 지급 등을 미리 준비했는지 그리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사고 후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된다. 상시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은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된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고용노동부는 6월 안에 경영책임자의 관리상 책임 등을 명확화·구체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확정해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생명과 건강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근로 현장에서 각종 재해에 노출된 이상 노동자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을 높이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사회 전체가 안전을 중시하고 사람중심 문화가 정착돼 산재사망 없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심은하 기자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