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한겨레
동북아 및 글로벌 외교에서 한국의 위치는?
5월 21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우리나라의 균형추가 중국 견제 쪽으로 옮긴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경제 전문가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서 중국 견제 관련 이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합의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며 “오히려 우리나라가 중국을 상당히 배려하는 언급도 포함됐다”고 평가했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 차원에서 중국과 어긋나지 않는 표현으로 미국의 입장도 조화시키면서 잘 설명했다”며 “우리 입장과 경제적 이익을 잘 지키면서도 불필요하게 강경한 언사는 자제한 것이 중국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에 대해서는 “미국의 투자 유치와 우리나라의 시장 선점이라는 이해가 서로 잘 맞은 결과”라며 “미중 경쟁 국면이 우리 기업에 새로운 투자 기회를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높아진 우리나라의 위상이 이번 회담 분위기에도 반영됐다”며 “우리의 장점은 미중 모두 중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 점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증명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5월 25일 서울 중구 명동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지만수 선임연구위원을 만나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와 한중 관계를 포함한 글로벌 외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나온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내용을 놓고 우리나라가 중국에 대한 견제 쪽으로 이동한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이 바뀐 건가?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관심사가 다르다. 양국 간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관심사를, 미국은 미국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회담은 양국의 관심이 북한에 모이면서 중국에 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의 공급망 안정과 중국을 견제하는 글로벌 질서, 그 둘에 워낙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관심사를 알고 있었고 거기에 맞춰 우리의 이익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관심이 있다 보니 중국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될 내용이 많이 포함된 것 같다. 한미 정상회담의 시기나 성격에 따라 중국 이슈가 덜 들어가고 더 들어간 거지 그새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중국에 대해 우리가 갖는 관심은 중요한 경제 파트너라는 건데 단순히 ‘중국과 친하자’라는 관심이 아니라 동아시아에 형성된 생산 네트워크 안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라는 측면이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생산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활력 있게 유지하는 것에 항상 경제적 관심이 있었다.
-공동성명에 대만과 남중국해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현안이 담겼다.
=그 자체가 미중 간 이슈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안정과 관련된 이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입장을 표명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표명한 수준도 안정과 평화를 강조하고 국제법에 따른 기본 권리를 주장해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반대하는 행동을 했다고 인식할 수준은 아니다. 직전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일본이 표명했던 수준과 상당히 비교된다. 중일 양국의 영토 분쟁이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 일본 입장을 확실히 지지하는 언급이 들어갔고 중국이 경제적 강압 등 국제 규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식의 직접적 비난이 있었다. 중국이 가장 예민해하는 내정 문제인 홍콩과 신장 위구르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이었다. 그것과 비교할 때 한미 양국이 언급한 이슈들은 미중 간 문제나 중국 문제라기보다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 차원에서 표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이슈인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와 관련해서도 우리나라가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언급하면서 포용성을 강조했다. 쿼드가 꼭 중국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는 내용을 집어넣은 건 우리나라의 요구라고 봐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미국이 하는 일에 우리나라가 간섭한 격이다. 쿼드에 관한 미국의 관심에 우리나라가 부응해야 하지만 그 성격에 관한 입장은 다르다는 걸 분명히 한 거라 중국이 나쁘게 평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서 추모의 벽 모형을 제막하고 있다. | 연합
-우리나라가 중국에 어떤 메시지를 보낸 것인가?
=공동성명 전반적으로 우리 입장과 경제적 이익을 잘 지키면서도 불필요하게 강경한 언사를 자제한 것이 중국을 향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을 보여준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 중국이 ‘앞으로 한중 관계에 나쁜 출발점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거 같다. 사실 미중 관계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우리나라와 만나 중국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중국은 우리나라와 만나 미국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면 중간에서 우리가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가 컸다. 그런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오히려 우리나라가 중국에 메시지를 보낸 모양새가 아닌가? 이를 계기로 중국도 미뤄졌던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생각할 것 같다.
공동성명에 5G의 다양성과 쿼드의 포용성을 언급하기 쉽지 않았을 거고 우리가 굉장히 애쓴 거라고 본다. 미국이 전 세계에 표명한 셈이라 앞으로 화웨이를 배제하라고 하기는 어려워졌고 쿼드의 포용성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은 것은 국제질서에서 중국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양쪽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한쪽과 얘기할 때 다른 쪽을 배려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높아진 우리나라 위상이 이번 회담 분위기에도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나라 스스로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 국가를 지향했는데 어느새 가교 국가에서 선도국가로 정부의 표현이 바뀐 것처럼 자기 인식이 변했다. 정부뿐 아니라 국민의 변화가 협상력으로 지금 나타나고 있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있나?
=국내 언론은 주목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서 위상과 경제적 이익에 맞는 대응을 하겠다는 메시지가 들어갔다. 어떻게 보면 중국이 좀 아플 수도 있는 내용이다. 하나는 투자심사제도를 만드는 데 공감했다. 투자심사제도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중국 기업이 미국의 첨단기업을 인수하려 할 때 심사하는데 최근 다 탈락시켰다. 미국의 요구로 들어간 것 같고 미국의 재무부와 국무부가 특별팀(TF)으로 들어와 협조하기로 했다. 지식재산권 문제와도 얽혀 있는 중국의 기술 도전에 대응하는 미국의 수단에 우리도 공감했다는 의미다. 지금 미국만 하는 게 아니라 유럽 각국이나 일본도 검토 중이어서 기술 강국들의 흐름에 함께하는 결정을 한 셈이다.
또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특히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시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국가 주도적 경제체제의 특징이 국유기업과 정부가 기업에 주는 산업보조금이다. 중국의 국유기업과 산업보조금이 국제 시장질서를 심각하게 왜곡한다고 주장해온 미국, 유럽, 일본이 WTO 안에서 이를 확실히 막아내기 위해 개혁안을 제기하면서 중국과 합의가 안 되면 개방된 복수국 간 협정을 선진국끼리 먼저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그에 대한 협조를 미국이 요청한 것이다. 중국의 글로벌 시장질서 왜곡에 한미 양국이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다는 걸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의 균형추가 미국 쪽으로 갔다기보다 중국 견제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관련된 합의를 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전기차 배터리 등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고 미국에서 높게 평가했다. 일부 언론은 정부가 기업 투자를 지렛대로 다른 것과 협상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가 하란다고 4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지 않는다. 미국의 투자 유치와 우리의 시장 선점이라는 이해가 서로 잘 맞은 결과였다. 미국은 공급망 안정화를 매개로 미국 내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거고 반도체 파운드리는 삼성이 전략적으로 미국에 새로 진출하고 싶은 분야고 전기차 배터리는 미국이 잠재적으로 가장 큰 시장이다. 어떻게 보면 미중 경쟁 국면이 우리 기업들에 새로운 투자 기회를 준 것이다.
해외 투자 확대가 국내 투자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일부 있을 텐데 다행히 우리한테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은 신시장들이다. 메모리 분야였다면 국내 투자와 연결성이 컸을 텐데 파운드리는 더 키우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는 거다. 전기차 배터리는 대표 신흥시장이라 미국이 이래저래 국산화를 추진할 것이다. 국내에서 대응해 그 시장을 차지한다는 보장이 없고 기업들도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 들어간 것이다.
-중국도 앞으로 정상회담에서 중국 내 투자를 요구하지 않을까?
=중국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미 투자를 미국 이상으로 하고 있다. 또 미국의 공급망 안정화 과정에 한미는 전략적으로 수립해야 하는 관계라면 한중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같은 생산 네트워크에 들어 있다. 그 점을 강조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더 강화해 마치 한 나라에서 하는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내 기술의 유출 우려도 줄이고 국내 투자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중국에 대해서는 다른 대응법이 있다.
공급망 안정화는 중국도 관심이 있기 때문에 중립적 사안이다. 미국과 경제 협력이 어려워지면 중국도 공급망 안정화가 필요하고 파트너가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에도 굉장히 중요한 나라다. 미중 양쪽의 공급망 안정화 요구에 우리나라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다르게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에서 중국을 배제하자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전보다 큰 부담 없이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해도 문제없는 상황이다.
한편 미국과 중국 모두 키워야 하는 반도체와 배터리 업종을 우리가 잘해서 양쪽에서 구애받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협상 이전에 실력이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미중 모두 중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증명한 것이다.
-국민과 기업, 우리 사회는 현재 국제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제는 적당한 긴장에 익숙해져야 한다. 세계화 시대가 중국 견제의 시대로 바뀌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유럽과 일본이 동참한 상황이기 때문에 긴 국면이 펼쳐지고 동아시아에 속한 우리로서는 어느 쪽으로도 항상 편안한 상황은 아니다. 평상심을 가지고 긴장을 관리하며 활용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한쪽으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우리 이익에 맞지 않다. 모든 나라가 똑같이 직면한 긴장 관계다. 그 속에서 사업도 지속할 수 있고 양국 간 우호 관계도 지속할 수 있다. 긴장 없는 관계를 원하지 말고 긴장 속에서도 서로 이익을 주고받고 우호를 주고받는 관계를 만드는 게 국가적으로도 기업 입장에서도 옳다고 생각한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