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기업 판로 개척 지원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중소벤처기업부
남북 경제협력에 거는 기대
5월 2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그동안 교착 상태였던 남북 관계와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미 정상 공동성명(이하 공동성명)을 통해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2018년 남북 정상이 약속한 판문점 선언을 존중하면서 대화와 외교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긍정적인 신호라는 분석이 다수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5월 25일 세종연구소와 미국평화연구소(USIP) 공동 주최로 열린 ‘조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과 한미동맹에 대한 함의: 새로운 변화와 도전 과제’ 주제의 국제 화상회의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남북 협력 지지 내용이 포함돼 있다. 남북 간 경제협혁 프로젝트가 시작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런 가운데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해 남북 경제협력에 기대와 희망을 걸어보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온다. 개성공단은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개성시 일대에 조성한 공업 단지로 남측 자본과 기술, 북측 토지와 인력이 결합된 방식으로 운영됐다. 전면 중단 이전까지 총 125개사가 입주해 약 5만 5000명 북측 노동자와 약1000명 남측 노동자들이 매일 함께 생활하며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를 만드는 평화 경제 산업 단지로 자리매김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김진향 이사장(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은 5월 28일 기자와 통화에서 “애초 ‘평화를 위한 경제협력’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는데 ‘경제를 위한 평화’도 성립된다는 것을 증명했던 곳이 개성공단”이라며 “안보 가치도 컸고 통일 문화의 미래 가치가 담보됐던 곳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6년 2월 10일 박근혜정부 때 폐쇄됐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입주 기업 125개 가운데 약 20곳은 휴·폐업했고 약80곳은 매출이 반토막 난 상황이다.
“좀 더 적극적인 남측 의지 표명 필요”
그렇다면 개성공단 기업 대표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개성공단기업협회 이재철 회장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본다”며 “특히 성 김 대사를 대북특별대표로 지명한 것 등은 북미 협상에 대한 미국의 의지 표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개성공단 재개 등과 관련해 좀 더 적극적인 남측의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재철 회장은 “남북 관계나 북미 협상 등이 상당히 오랜 시간 교착 상태였던 것은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인 교착 상태와 관련해 북한을 협상의 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남측의 독자적인 타개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진향 이사장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희망이 커지고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 분명한 성과를 거둔 것은 맞지만 우리 스스로 해석을 좀 더 극대화해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핵심인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해 남북 실무협상을 제안하는 등 남측에서 좀 더 능동적인 실천 의지를 표명할 때 북측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얘기다.
김 이사장은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 문제를 제도·물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남북경협의 개성공단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실제 개성공단에 입주했다가 대체 공장을 찾아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으로 옮겨간 우리 기업은 개성공단의 가치와 경쟁력을 실감하며 개성공단 재개를 간절히 바라는 상황이다. 노동·조세제도, 임금 수준, 언어, 노동자의 숙련도 등 여러 면에서 개성공단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적 비교 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개성공단이 닫히며 동남아 지역으로 빠졌던 기업이 재개를 열망하며 ‘언제 열린답니까? 우리 대안은 개성밖에 없어요’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른바 경제적 번영이 담보됐던 곳이라는 얘기다”라며 “국민이 ‘평화와 번영’이라는 개성공단의 의미와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재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야 다시 그 길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 간 연락 채널 복원과 대화 재개 추진”
한편 이번 한미 정상회담으로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기대해볼 만하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5월 24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2월 미국이 평양을 노크했을 때 북한이 거부했던 것과 달리 최근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를 완료하고 설명한다고 했을 때 북한이 거부하지 않았다”면서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보고 북한이 모종의 판단을 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이후 지금의 여건을 어떻게 잘 활용해나갈 것인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와 관련 통일부는 5월 28일 이번 한미 정상회담으로 남북 대화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됨에 따라 남북 간 연락 채널 복원과 대화 재개부터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한미 정상회담 관련 현안 보고 자료에서 “한미 정상의 판문점 선언 존중과 미국 대통령의 남북 대화·관여·협력에 대한 지지로 남북 관계 추진 동력을 확보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통일부는 남북 간 연락 채널 복원과 대화 재개를 향후 우선 과제로 꼽으며 “언제든 형식에 구애됨 없이 어떤 의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당국 간 대화 가능성에 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