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국립외교원장│국립외교원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인터뷰
5월 2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 5월 30~31일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6월 11~13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6월 13~15일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6월 15~17일 스페인 국빈 방문. 최근 한 달 동안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숨 가쁘게 이어진 정상외교를 놓고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코로나19 대유행과 미·중 경쟁으로 기능 상실에 빠진 국제적 협치(거버넌스)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 우리가 핵심으로 참여한 것”이라며 “국내 언론의 관심보다 훨씬 더 큰 성과로 앞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현재 세계가 복구하려는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완벽한 모델이 우리나라”라며 “가치적 측면과 실질적 능력을 다 갖춘 나라이기 때문에 전 세계가 우리나라의 기여를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준형 원장은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로 동북아 국제정치와 한미관계 등을 연구해온 국제정치학자다. 6월 14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김준형 원장을 만나 최근 잇따른 정상외교 속에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G7 정상회의에 우리나라가 2년 연속 초청받았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G7 정상회의에 우리나라를 포함해 남아공, 인도, 호주까지 권역별로 단 네 나라가 초청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는 이번 회의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기후변화, 보건, 기술협력 분야에서 가치적 측면과 실질적 능력을 다 갖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은 높지만 1인당 GDP는 낮다. 우리는 전체 GDP는 10위이고 1인당 GDP는 우리가 이탈리아를 앞섰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G7 정상회의에 필요하기 때문에 초청받은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주요 20개국(G20) 가입에 이어 G7 정상회의 참석은 선도국가로 가고 있는 증거이자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G7 정상회의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취소됐다. 2021년 G7 정상회의는 현재 국제 정세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회복과 복구의 의미가 있다. 코로나19로부터 회복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도 회복이다. 대유행과 미·중 경쟁 속에서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보건기구(WHO), 유엔(UN) 등은 사실상 기능 상실에 빠졌다. G7도 마찬가지였다. 대면 외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각국 봉쇄를 풀고 국제적 협치(거버넌스)를 다시 세우고 새로 복구하는 의미가 있다. 때마침 미국 국가 우선주의였던 트럼프 정부와 달리 조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국제 거버넌스와 협력이다.
-한미 정상회담부터 한 달 동안 정상 외교가 계속 이어졌다.
=시기 적으로 굉장히 좋았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 문제와 함께 백신과 기후변화를 논의했다. 그 기후변화를 다시 P4G 서울 녹색미래정상회의에서 논의했고 G7 정상회의에서 백신과 기후변화를 우리가 특별 세션으로 참여한 보건, 기후변화, 기술협력 분야로 연결했다. 우리 언론에서는 평가가 그리 후하지 않지만 외국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보건 분야에서 K-방역의 성공으로 상당히 선도국가다. 이제는 방역관리뿐 아니라 백신 허브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백신과 관련해서 세계적으로 두 가지 움직임이 있다. 하나는 자국 백신의 수출을 통제하는 백신 이기주의다. 미국도 처음에 백신 이기주의로 상당히 비판을 받았다. 이제 국제 거버넌스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이나 백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백신을 풀어야 한다는 게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G7 정상회의에서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바이오의약품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백신 허브 국가를 주창하고 합의를 이끈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기후변화는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 이어 G7 정상회의에서도 중요한 안건이었다.
=G7 국가들은 과거부터 환경보호에 앞장섰지만 자기들이 오염시킨 산업화를 후진국에 떠넘긴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는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다. 산업화나 석탄산업 등으로 한동안 ‘기후 후진국’이라는 소리를 듣던 우리나라가 환골탈태해서 기후변화를 선도한다는 것은 국가 이미지나 국격이란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처음으로 선후진국의 구별 없이 모두가 동참하기로 합의했지만 트럼프 때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면서 정체돼 있었다. 이제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고 세계가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에 우리가 핵심으로 참여한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국내 언론들은 우리나라의 균형추가 중국 견제 쪽으로 옮긴 게 아니냐는 평가가 많았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는 건 사실이다. 특히 미국이 선도하고 있다. 거기에 맞서 중국은 좀 더 공세적 외교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경쟁을 하는 게 일종의 메가트렌드(시대적 흐름)다. 다만 미국을 포함해 G7 국가들이 중국과 적대적 관계로 완전히 돌아섰느냐는 섣부른 판단이다. 미국조차도 중국이 적만은 아닌 복합적 관계라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관계를 협력, 경쟁, 대결을 뜻하는 ‘3C(Cooperation, Competition, Confrontation)’로 설명해왔다. 우리가 신냉전처럼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한미 정상회담 때도 우리는 인권, 민주주의, 대만해협의 안정, 남중국해의 안정 같은 보편적 원칙에 입각해 이야기한 것이다. 그 결과를 놓고 진보 언론은 미국에 지나치게 경사돼 한중 관계를 손상시킬까 우려했고 보수 언론은 선택을 잘했다며 앞으로 쭉 가야 하는 기정사실로 했는데 둘 다 지나친 평가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대만과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잘 넘어간 것이다. 중국도 생각보다 절제된 항의를 했다. 보수에서 평가한 것처럼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대등한 글로벌 협력 상대로서 우리를 필요로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우리의 역량과 책임이 커진 부분을 더 중시했으면 좋겠다.
-G7 정상들이 발표한 공동성명에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G7 공동성명은 중국을 적시해서 인권 문제를 지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G7의 정식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공동성명에 서명하지 않았다. 우리가 참여한 세 가지 특별 세션의 의제가 기후변화, 보건, 그 다음이 ‘열린 사회와 경제’였다. ‘열린 사회와 경제’에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무역 같은 가치 부분이 들어가 있지만 중국을 적시하지 않았다. G7은 사실상 중국 때리기를 했지만 우리는 G7에서 빠지고 특별 세션에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우리 할 말을 한 것이기 때문에 부담은 적고 우리의 위상은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국제 외교가에서 ‘한국은 북한 문제만 가져와서 자기편 들어달라고 한다’는 피로감이 좀 있다. 그런데 70개 항목이 나열된 G7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문제는 58번 딱 하나였다. 한반도 문제도 언급하지만 우리나라가 균형을 잡고 훨씬 더 많은 글로벌 이슈를 책임지고 기여한다는 의미다.
-G7 정상회의에 이어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국빈 방문했다.
=우리 외교 트렌드에 한미 관계, 한중 관계, 한일 관계만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스페인 국빈 방문은 외교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오스트리아는 2022년이 수교 130주년인데 정상이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또 스페인은 해외 건설 수주 금액 2위의 건설 강국이다. 무엇보다 미·중 사이의 선택을 놓고 중국과 미국에서 각각 압박이 들어올 텐데 유럽이 우리가 연대할 수 있는 세력이다. 우리나라는 한미 동맹은 최상의 동맹 수준이고 경제적으로는 3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유럽도 비슷하게 중국과 적으로 삼고 싶지는 않지만 친미적 성향을 갖고 있다. 미·중 사이 전략적 경쟁이 문제가 됐을 때 우리가 피해를 적게 입으려면 유럽 같은 국가들과 연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두 나라 방문은 G7 정상회의와 연결해서 외교의 다변화 측면, 미래를 대비하는 측면, 각 국가의 특수한 상황에 있어 의미 있는 방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청와대
-이번 정상외교에서 확인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어떠한가?
=제임스 최 전 주한 호주대사가 우리나라에서 일하면서 가장 충격받고 놀랐던 게 스스로 작고 약한 나라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하더라. 군사력은 화력 기준으로 세계 6위이고 1인당 GDP는 G7 국가에 버금가고 전체 GDP는 10위로 우리나라가 호주보다 작은 것은 땅밖에 없는데도 우리는 늘 약소국이고 약한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능력을 가치 절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거꾸로 외부에서 인정받아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깨닫고 국민이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현재 세계가 복구하려는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완벽한 모델이 사실 우리나라다. 민주주의, 자유무역, 방역, 기후변화 등 정당성의 명분에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바이오의약품 생산 능력,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력 등 실질적 역량까지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와 역량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때 전 세계가 우리나라의 기여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외교가 국내 언론의 관심보다 훨씬 더 큰 성과로 앞으로 남을 것이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