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일곱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 일반 ▲그림책·동화 ▲청소년 분야의 추천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것입니다. <공감>은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다른 세계에서도 (문학)
이현석 지음 | 자음과모음
여기, 묵직하고 뜨거운 리얼리즘 소설이 나타났다. 이 소설집은 2017년부터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을 수록한 이현석의 첫 책이다. 어떻게 하면 이 책을 친절하고 아름답게 소개할 수 있을까. ‘다른 세계에서도’와는 다르게. 여덟 편의 소설들은 친절한 데도 아름다운 데도 없다. 그런데도 끝까지 읽게 되는 힘은 무엇일까.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쓰이는 것일까. 현실의 정확한 표상(representation)을 보여주는 리얼리즘 소설은 현실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즉각적으로 느껴지고 그것이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마련이다. 인권과 노동 문제에 대해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작가와 같이 서서 고민하며 걷고 있다. 이것이 리얼리즘의 문학의 특징이다. ‘다른 세계에서도’를 읽고 나자 이 생각은 더욱 공고해진다. 우리가 지나쳐온 크고 작은 문제들. 작가가 시선을 두지 않는 데는 없어 보인다. 어째서인가. 한 개인이 당면한 문제가 사회 문제와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조경란(소설가)
민중미술 (인문예술)
김현화 지음 | 한길사
김현화 교수의 <민중미술>은 제목이 가리키듯 1980년대 한국 문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민중미술의 역사와 특성을 고찰한 책이다. 1980년대 학부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민중미술은 친숙한 미술 장르다. 굳이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대학이나 거리에서 민중미술 작품을 흔하게 접했다. 1987년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민중미술의 전성기였는데 단순히 민중을 위한 미술을 넘어 민중에 의한, 민중의 미술을 실천하는 절호의 시기이자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80년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태동해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 한국 근현대사 등을 주제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한국의 민중미술을 조감했다. 저자는 민중미술의 주요 작가인 임옥상, 오윤, 홍성담 등 주요 작품을 해설하면서 외세에 반대해 민족 통일을 추구하고 확산되는 자본주의의 물질문명에 반대해 소박한 농부와 민중의 삶을 이상화했던 민중미술의 주제를 잘 드러냈다.
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 (사회과학)
송호근 지음 | 나남출판
글을 쓰는 사람을 학자, 작가, 기자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학자는 논문이나 학술 서적을 쓰고, 작가는 소설을 비롯한 창작물을 쓰고, 기자는 신문과 잡지의 기사를 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세 종류의 글을 다 쓰는 경우가 있다. 송호근이 살아있는 보기다. 그는 지난 17년간 매주 한 편의 칼럼을 쓰면서 묵직한 3부작 저서 등 학술연구서도 꾸준히 발간했으며 두 편의 장편 소설도 썼다. 이 책은 그가 지난 4년 동안 썼던 칼럼을 스토리로 재구성해 펴낸 시대 진단서다. 그의 칼럼은 인문학적 배경 위에 사회과학적 지식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현실을 꿰뚫어보는 힘을 지녔다. 그의 칼럼 한 편 한 편은 시사문제를 주제로 삼아 적절한 어휘와 비유, 간결한 문체와 뛰어난 문장력, 흥미로운 이야기 구성으로 독자들을 매혹한다. 그의 칼럼은 비평의 신랄함과 문학적 감수성을 적절하게 배합하면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감흥을 자아낸다.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식물학자의 노트 (자연과학)
신혜우 지음 | 김영사
이 책은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 신혜우 박사가 쓰고 그린 식물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는 영국왕립원예협회의 보태니컬 아트 국제 전시회에서 2013, 2014, 2018년에 참여해 모두 금메달을 수상한 식물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페이지마다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 눈을 즐겁게 한다. 전문 식물학자의 갖가지 식물 생태 이야기에 그림이 더해져 책의 내용이 풍성하다. 게다가 식물과 저자가 교감하는 모습은 이 책을 아름다운 과학책 이상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지혜를 들려주는 에세이의 품격을 보여준다. 이 땅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할 식물과 한갓 생물인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까지 들려준다. 자연과학의 시작은 언제나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과학자란 어쩌면 자기가 연구하는 대상을 가장 사랑하는 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대상에 대한 상세한 관찰과 묘사 또는 기술(記述)에서 출발한다. 이 점을 즐겁게 상기시켜준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
권복규(이화여자대학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언어의 우주에서 유쾌하게 항해하는 법 (실용일반)
신견식 지음 | 사이드웨이
맛있거나 진귀한 음식을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을 식도락가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 신견식이 자처하는 어도락가(語道樂家)는 언어를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라 하겠다. 그는 25개 언어를 우리말로 옮긴 경험이 있지만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 없고 외국어 학원도 다닌 적 없다. 이런 저자가 쓴 책이니 외국어 공부 비법을 소개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비법은 없다. 신견식에 따르면 “엄청난 왕도는 없고 시간을 쏟아붓는 수밖에 없다.” 남의 방식에 의존하기보다 “외국어 공부에서도 스스로 정답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큰 의미와 재미도 느낄 뿐만 아니라 감동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다. 한 비범한 번역가, 어도락가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언어와 삶과 세상의 관계를 흥미롭게 되짚어볼 수 있는 비범한 책이다. 좋은 책의 기준이 ‘이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면 번역가 신견식만이 쓸 수 있는 이 책은 단연 좋은 책이다.
표정훈(평론가)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그림책/동화)
태 켈러 저 | 강나은 역 | 돌베개
한국계 여성작가 태 켈러(27)의 장편동화로 뉴베리상 2021년 대상 수상작이다. 병에 걸린 외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이사한 릴리네 가족. 우연히 도로에서 본 호랑이는 릴리 눈에만 보인다. 호랑이는 릴리에게 옛날에 할머니가 훔쳐간 이야기를 돌려주면 할머니를 낫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많은 성장 서사가 그렇듯 주인공은 쉽지 않은 도전과 모험에 뛰어 들어 자신만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풀어내고 한걸음 성장해 나아간다. 스스로를 투명인간이라 여기고 주변에서 ‘조아여(조용한 아시아 여자애)’로 여기는 릴리가 호랑이와의 정면 대결을 통해 자기 마음 깊은 곳의 감정과 마주하고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등장하는 호랑이는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호랑이는 릴리를 뒤쫓는 무서운 존재이지만 할머니와 릴리가 고통에서 걸어 나오도록 도와주는 구원자인 동시에 릴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기쁨 슬픔 분노와 욕망을 가진 호랑이 소녀이기도 하다.
최현미(문화일보 문화부장)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청소년)
김영란 저 | 신병근 그림 | 풀빛
‘공정’과 ‘정의’가 시대 화두다. 21세기에 태어난 10대와 20대에게는 매우 민감한 주제다. 젊은 세대에게 법과 질서는 억압과 구속이 아니라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를 지키는 중요한 규범이다. 이런 측면에서 헌법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게임의 룰’이다.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는 조금 더 넓은 안목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역사, 민주주의의 기원과 그 바탕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며,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인식하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영국의 대헌장, 프랑스 인권선언, 미국 독립선언서가 제정되는 역사를 살피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 걸어온 역사와 헌법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시험을 치르기 위한 암기 위주의 사회 공부가 아니라 독서를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우리의 미래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류대성(<읽기의 미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