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K-팝×한복’전시장에서 김단하 디자이너가 자신이 제작한 한복을 선보이고 있다.
한복 전도사 김단하 디자이너
“이 한복 문양 봐. 고급스럽다.”
4월 2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숲에서 열린 ‘K-팝×한복’ 전시. 약 30명의 관람객이 마네킹 앞에 서서 감탄을 내뱉는다. 마네킹이 입은 옷은 방탄소년단, 청하, 지코, 오마이걸, 골든차일드, 모모랜드, 에이티즈, 카드 등 K-팝 한류 주역으로 손꼽히는 가수들이 입었던 한복이다.
한복 입고 여행하다 디자인 공부까지
전시장에 있던 한복 중에서도 ‘제35회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 오마이걸이 ‘살짝 설어’ 무대를 선보이며 입은 한복은 특히 청년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궁중 보자기 등 전통에서 유래한 문양을 소재로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이 한복을 디자인한 단하주단 김단하 대표의 설명에 관람객들은 “세련되면서도 귀엽다” “사서 입어보고 싶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패션디자인 전공자 사이에서 김 대표의 인기도 대단했다. 블랙핑크가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한복 의상을 제작해 한류 팬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그는 3월 11일 ‘2021년 한복문화 진흥 유공자 시상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가 단하주단을 설립한 건 2018년. 한복과 인연을 맺기 전 그는 제주도에서 카지노 딜러로 일했다. 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녔던 그는 어느 날 한복 입고 전 세계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 한복여행가 권미루 씨 이야기를 접하고 ‘바로 저거다!’ 싶었다고 했다. 그 역시 한복을 입고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유럽 등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한복 입은 그를 특별하게 봐줬다.
“식당에 갔더니 ‘예쁘게 입고 오신 손님이니 좋은 자리 내드리겠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입은 의상 브랜드가 뭔지 알려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요. 이런 긍정적인 반응과 제안을 접하며 깨달았어요. 한복이 세계화할 수 있는 소재라는 것을요.”
그때만 해도 패션디자인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입고 싶은 원단을 주문하고 바느질방을 찾아 원하는 고름, 깃 넓이 등을 주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나름대로 디자인을 하고 있었던 것. 이후 혼자 한복 디자인을 공부하다가 궁중복식연구원에 들어갔고 현재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의상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한복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블랙핑크가 뮤직비디오에서 입어 큰 화제
단하주단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블랙핑크가 단하주단 한복을 입고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이후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외 한류 팬들은 구글에서 Hanbok(한복)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단하주단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누리집을 통한 주문 및 대기업과 협업 사례도 늘었다.
김 대표가 한복을 만들 때 중요하게 여기는 건 두 가지다.
“내가 입고 싶은 마음이 드는 옷을 만들고 싶은데 그 안에 전통적인 요소가 항상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전통을 주제로 삼고 있죠.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환경입니다. 옷은 의류 폐기물이 될 수밖에 없죠. 지구에 덜 유해한 옷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친환경 소재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재활용, 새활용(재활용품을 새롭게 디자인해 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행위) 등도 하고 있고요. 돈보다 중요한 게 가치라고 생각하거든요. 한복이 그 의미만큼 실제로 가치 있는 옷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두 가지(전통과 환경) 의미를 담으려고 합니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한복만의 전통 요소는 무엇일까? 그는 “제게도 아직까지 어려운 문제”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전통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그것에 대해 내리는 정의도 다르죠. 그럼에도 우리 모두 ‘아! 우리 전통이네’라고 느끼는 요소가 분명히 있어요. 그 끈을 놓지 않는 게 제가 지금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 저 옷 굉장히 한복스럽다’ ‘우리 전통이 느껴지네’라고 한다면 전통을 잇는 데 성공한 거라고 봐요.”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 뮤직비디오│유튜브
한복에 숨은 이야기 한류 콘텐츠로서의 가치
김 대표는 한복이 한류 콘텐츠로서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강조한다. 복식 하나하나, 문양 속 식물, 동물 등에 나름의 의미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해외 한류 팬들이 남긴 댓글 중에 인상적인 게 있어요. ‘한복이라는 옷의 패턴은 유물로 이뤄져 있는데 그 안엔 각종 일상적 의미가 담겨 있어 그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게 너무 재미있다’ ‘과거 선비, 무관이 입었던 옷 등 나뉘는 방식도 흥미롭다’ 등 반응이 다양합니다. 한복이라는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이야기하기)이 가능해요. 많은 사람이 한복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 끌린다고 하는데 저도 이 점에 공감합니다.”
최근 한복 열풍으로 교복, 일상복 으로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 대표에게 일상에서 한복을 입을 때 어떻게 하면 더 돋보일지 물어봤다.
“어렵지 않아요. 한복 저고리에 청바지 입고 운동화를 신어도 멋이 나죠. 제가 입은 한복 치마도 어떤 옷과도 잘 어울려요. 이 치마 위에 흰색 티셔츠, 목티, 니트 등만 입어도 굉장히 신경 쓴 것처럼 보이죠. 흔히 ‘한복 입으면 신발 뭐 신죠?’ 물어보시는데 한복이 은근히 운동화나 굽이 낮은 구두와도 잘 어울립니다. 한복을 한복이라는 범주 안에 두지 말고 일반 옷이라고 생각하면 꾸미기가 쉬울 겁니다.”
우리 옷 한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K-패션 주역으로서 김 대표의 계획은 뭘까?
“지금까지 궁중 보자기 등을 선보였다면 앞으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궁중 도배지 등 궁중 전통 예술까지 패션으로 풀어내려는 계획도 있어요. 이번 시즌에 궁중 도배지 컬렉션이 많이 나올 예정이니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 김청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