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상만큼 빛난 어록에 ‘윤며들다’

2021.05.03 최신호 보기
▶4월 25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 끝난 직후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이 영화의 제작사 ‘플랜비’ 대표인 배우 브래드 피트와 사진을 찍고 있다.│연합

윤여정, 우리나라 배우 첫 아카데미 연기상
“또 기적이 일어났다.”
아시아 배우로는 1957년 우메키 미요시 이후 두 번째, 비영어 연기로는 역대 여섯 번째, 우리나라 배우로는 최초로 윤여정이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20년 <기생충>이 감독과 작품으로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면 2021년 윤여정의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은 우리나라 사람의 연기로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것이다.
윤여정은 수상 이후 날마다 어록을 생산 중이다. 촌철살인, 유머감각, 패션, 출연했던 영화, 드라마, 예능, 모든 것이 화제다. ‘윤며들다’라고 하는 게 실감나도록 윤여정 신드롬이 불고 있는데 서양인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영국인은 고상한 척하는 사람(Snobbish People).” “내 이름 똑바로 발음하지 않은 것 이제는 다 용서할게요.” 이와 같은 돌직구 발언이나 “최고 아니라 최중할래요”와 같은 지혜로운 발언에는 유머와 품격이 있다. 즉흥 인터뷰에도 이 정도 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가 평소 얼마나 지성과 자긍심으로 뭉친 사람인지 잘 보여준다.
모든 노인은 꼰대가 아니다. 노인도 아름답다는 것을 실천해 보이는 윤여정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세상이 이제야 그를 발견한 것일 뿐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한 배우다. <미나리>(정이삭, 2020)로 글로벌한 명성을 얻자 50년간 그녀를 봐온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 상황은 얼떨떨하다. 오스카상은 배우 개인의 성취이지만 우리나라 영화라는 자양분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든 일이다. <미나리>는 미국 자본의 미국 국적의 영화가 분명하지만 문화를 칼로 잘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우리나라 문화, 습성, 언어, 사람이 있으면 넓게 K-영화, K-문화인 것이다.

윤여정을 정의하는 세 가지 연기 열쇳말
연기와 인터뷰를 보면 윤여정의 연기 열쇳말을 세 가지로 뽑을 수 있다. 첫째, 일하는 여성이다. 1970년대 윤여정을 기억하는 사람은 <장희빈>(1971~1972)과 <화녀>(1971)가 인상에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20대 시절, 미모의 여배우만 한다는 장희빈을 연기했고 파격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천재 김기영 감독이 아끼는 배우였다. 악녀 연기로 스타덤에 오른 그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난 이후 13년 만에 컴백해 브라운관에 등장했을 때 많은 이가 놀랐다. 이혼녀라는 타이틀, 삶의 고난이 패인 주름진 얼굴, 걸걸해진 목소리, 도발적인 악녀가 아니라 삶에 지친 중년 여성이 됐기 때문이다.
윤여정은 생계형 배우라고 자칭했다. 영화 <에미>(박철수, 1985),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1992), <목욕탕집 사람들>(1995~1996) 등의 작품 시기에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내놓는 엄마 역할을 주로 맡았다. 살기 위해 연기하는 시기에 그는 작가 김수현의 페르소나가 되어 전형적인 맏며느리나 지혜로운 어머니 역할을 연기했다. 분량 많은 까다로운 대사로 유명한 김수현의 인물을 연기하기에 생활력으로 똘똘 뭉친 그가 딱 맞아떨어졌다.
오스카상 수상 소감에서도 “아들들이 일하라고 떠밀었고 엄마는 열심히 일해서 이 상을 받았다”라고 너스레를 떤 것은 진심일 것이다. 신비로움의 아우라가 아닌 일하는 여성으로서 배우 자신을 정체화한 것이다.
둘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홀로 서 있는 배우다. 그의 연기 인생의 전환점은 아마도 <바람난 가족>(임상수, 2003)일 것이다. 시한부 남편을 두고 바람피우는 노인 여성을 연기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누드와 베드신을 보여주었다. 스크린 거물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이때부터 욕먹기 딱 좋은 비호감 캐릭터를 작품 완성도를 위해 과감히 할 수 있는 시니어 여배우라는 유일무이한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
연이은 임상수의 <하녀>(2010)와 <돈의 맛>(2012)에서는 음흉하고 사악한 인물을 연기해 젊은 관객의 환호성을 얻었고 칸영화제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즉흥 연출과 즉흥 연기를 바탕으로 연출하기 때문에 연기자의 유연성과 지성이 요구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도 그는 자주 출연했다. <하하하>
(2009),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의 유머러스한 엄마 역할은 전형성에서 늘 비껴갔다. 허를 찌르는 대사와 이를 이질감 없게 연기하는 모습은 윤여정이 이제는 연기를 즐기며 자기만의 캐릭터를 구축했음을 알게 해주었다.

버텨줘서 고마운 존재
처음 주연을 맡은 <죽여주는 여자>(이재용, 2016)는 윤여정이라는 배우 이미지가 없으면 성립하기 힘든 작품이다.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성매매 하층민 노인 여성의 치열한 삶을 그린 이 영화는 윤여정의 여성성과 생활력으로 가득 채워졌다.
세 번째, 완숙한 삶처럼 연기하는 사람이다. 이제부터 윤여정의 3기 연기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최고가 아니라 아직 최중인 지금, 할리우드가 손짓하고 세계 영화제에서 보고 싶어 하는 글로벌 스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미나리>는 출발을 알렸고 곧 공개될 미국 드라마 <파친코>, 칸영화제로 갈 것이 유력시 되는 <헤븐, 행복의 나라로>(임상수, 2021)는 연기 인생의 사치를 마음껏 발휘해 하고 싶은 작품만 골라서 하는 글로벌 배우 윤여정의 행보에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
버텨줘서 고마운 존재다. 이렇게 사랑받는 노인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닮고 싶다. 삶의 태도, 인상, 패션 감각, 유머러스한 말, 진지한 직업 정신까지 모든 것이 감동적이어서 윤여정 신드롬은 꽤 오래갈 것 같다. 배우로서, 인생 선배로서, 여성으로서,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감사하고 축하한다.

정민아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동행해볼까?” 55년 여정
배우 윤여정의 55년 연기 인생 여정을 극장에서 동행할 수 있다.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가 50년 만에 다시 극장 개봉한다. 이후 출연작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전으로 준비했다. 5월 7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마포구에 있는 시네마테크KOFA에서 상영한다. <충녀>, <에미>, <천사여 악녀가 되라> 등 초창기 대표작 세 편과 영화계를 떠났다가 16년 만에 돌아온 <바람난 가족>부터 최신작 <미나리>까지 16편이다. 모두 무료 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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