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4월 29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 마련된 고 정진석 추기경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연합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행복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정진석 추기경이 4월 27일 태어난 지 90년, 사제로 서품된 지 60년 만에 선종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노환으로 선종했다”며 “평소 생명운동을 이끌었던 정 추기경의 뜻에 따라 선종 후 각막 기증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고인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1931년 서울의 친가와 외가 모두 4대째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명동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발명가를 꿈꾼 정 추기경은 1950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으나 그해 발발한 6·25전쟁으로 중퇴한 이후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의 길을 걸었다.
1968년 이탈리아 로마 성 우르바노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2년 뒤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귀국한 뒤 39세에 천주교 청주교구의 제2대 교구장이 됐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최연소 주교 서품 기록이다.
정 추기경은 28년 동안 청주교구장을 지낸 뒤 1998년부터 서울대교구장을 지내다 2006년에는 마침내 우리나라의 두번째 추기경에 서임됐다.
정 추기경은 우리나라 천주교 내 최다 저술가로도 꼽힌다. 교회법 전문가인 고인은 신학생 시절부터 50권이 넘는 저서들을 번역·발간했다. 건강이 악화한 2020년에도 두 권의 책을 냈다.
정 추기경은 3월 22일 병실을 찾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등에게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은데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하자. 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한다”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더욱 더 하느님께 다가가야 한다. 모든 이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명동성당에서 5일장 거행
정 추기경은 떠나면서도 가난한 이웃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내줬다. 허영엽 신부는 정 추기경의 유산 기부에 대해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료급식소 ‘명동밥집’과 아동 신앙교육 등에 은행 통장 잔액을 기부했다”며 “어린이들 선교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특별히 그런 선교를 북돋아주는 장학회를 만들어주기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2006년에는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 기증을 서약하며 “나이로 인해 장기기증의 효과가 없다면 안구라도 기증해 연구용으로 활용해주실 것”을 자필로 당부했다. 정 추기경이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혀 선종 후 서울성모병원 안과 양석우 교수의 집도로 적출된 두개의 각막은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처럼 각각 따로 두명에게 제공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교구는 정 추기경 선종 이후 본격적인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정 추기경 장례는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된다.
정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에는 4월 28일부터 조문객들로 북적였다. 시민들은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1m 이상 떨어져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면 대성전제대 앞에 마련된 투명 유리관에 모관을 쓰고 안치된 정 추기경의 주검 가까이에서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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