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속도 50km인 서울 을지로입구역 주변 도로
안전속도 5030 지키기
평일 오후와 저녁 시간에 도로를 시속 50km에 맞춰 달려봤다. 시속 50km는 정부가 4월 17일부터 전국 도심 일반 도로에 일괄 적용한 새 제한속도다. ‘안전속도 5030’은 주택가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을 비롯한 이면 도로에서 30km로 낮추는 정책이다. 기자의 체험기와 함께 시민들의 반응과 경찰, 교통전문가의 의견도 들어봤다.
낮에 시속 50km로 달려보니
주간주행 구간(약 9km)
을지로입구역 근방-남산1호터널-반포한강공원
4월 20일 화요일 오후 3시 30분쯤 서울 중구 남대문로 지하철 을지로입구역 근방에서 출발했다. 목적지는 반포한강공원. 내비게이션 추천 경로를 선택했다. 도심을 관통해 남산1호터널을 지나 한남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를 타는 8.63km 구간이다. 예상 소요시간은 33분. 빨간색으로 표시된 정체 구간이 몇 군데 안내된다.
안전속도 5030이 시행되고 처음 잡는 운전대다. 도로 상황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신호가 계속 이어지는 도심 구간에서 감속과 가속을 반복했다. 명동역을 지나 우회전 하자 체증이 풀렸다. 시야가 시원해져 가속페달을 밟았다. 속도 계기판을 보니 제한속도를 넘겼다. 얼른 제한속도인 50km로 줄였다. 앞차와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뒤에 오던 옆 차선의 승합차가 어느새 앞질러갔다. 60km 넘게 달리는 듯해 보였다.
다시 터널 안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편도 6차선의 한남대교 위에 다다르니 차량의 움직임이 격해진다. 차선이 4개나 늘었기 때문이다. 올림픽대로의 맨 오른쪽 차선만 정체될 뿐 나머지 차선의 차량들은 대교 끝자락에 설치된 단속 카메라까지 가속했다. 올림픽대로를 타기 위해 차선을 변경했다. 1차선에서 6차선까지 끼어들어야 한다. 제한속도를 지키며 차선을 변경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주변 차에 맞춰 60km를 넘게 밟고 나서야 끝 차선까지 무사히 차선을 바꿀 수 있었다. 반포한강공원에 오후 4시 10분에 도착했다.
20년 넘게 서울에서 차를 몰았지만 평소와 달리 운전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주행 제한속도인 시속 50km를 지키느라 전방과 속도 계기판을 수시로 번갈아 봐야 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지 못하는 구간에서 과속할까 봐 걱정됐다. ‘속도 제한 기능이 장착됐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투정이 절로 나왔다.
피곤했지만 평일 오후 도심 주행은 속도를 줄여 달린다거나 주행 시간이 많이 길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속도 계기판을 수시로 봐야 하는 불편함과 과속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피로감이 있었다. 차선이 넓어지거나 차량 흐름이 여유로울 때 나도 모르게 제한속도를 넘겼기 때문이다.
밤에 시속 50km로 달려보니
야간주행 구간(약 20km)
광화문사거리-남산1호터널-도산대로-영동대로-테헤란로-올림픽로-강동대로
밤에도 달려봤다. 이번엔 주행 구간을 좀 더 길게 해봤다. 광화문사거리부터 강동구 한 주택가까지 약 20km 구간이다. 안전속도 5030에 맞춰 달리기 위해 한강을 건넌 다음 올림픽대로 대신에 강남 한복판을 달려보기로 했다. 도산대로-영동대로-테헤란로-올림픽로-강동대로 구간이다. 예전에 살던 동네 근처라 익숙한 구간이기도 했다.
4월 21일 수요일 저녁 9시 정각 광화문사거리에서 출발했다. 한산해진 도심에서 차량 속도가 쭉 올라간다. 바로 신호에 걸렸다. 남산1호터널을 타기 전까지 15분이 걸렸다. 낮 주행 때와 비교해보니 걸린 시간은 비슷했다.
터널 안은 상황이 달랐다. 대부분의 차량이 제한속도를 넘겨 달렸다. 나 때문에 차량 흐름이 느려지면 어쩌나 걱정이 몰려왔다. 수시로 뒤에 오는 차량을 확인했다. 터널 중간쯤 답답함을 못 이겼는지 뒤에 오는 차량이 추월했다. 옆 차선의 차량들은 제한속도를 넘겨 달리고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온 차량들은 단속 카메라 앞에 가서야 제한속도로 줄였다가 다시 질주했다.
한남대교 위부터 강동대로까지 구간은 넓은 도로망을 구축하고 있다. 신호등 도심보다 간격이 훨씬 길게 설치돼 있다. 넓어진 차로와 차량이 많이 줄어든 야간에 제한속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곳곳에서 차들이 추월해 지나갔다. 제한속도를 의식하면서 달리는데도 나도 모르게 번번이 50km를 넘겨 주행했다.
예전에 살던 동네까지 왔다. 소요시간은 제한속도 변경 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5분 남짓 정도 더 걸렸을까. 낮 주행과 비슷한 결과다.
주행 시간의 변화는 크게 없어
교통 체증이 심한 평일 낮이든 차량이 많이 줄어든 밤이든 제한속도가 줄었다고 차량 흐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 않았다. 평소보다 오랜 시간 주행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목적지까지 걸린 시간도 큰 차이가 없었다. 불과 몇 분 늘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답답하고 피곤했다. 수시로 속도 계기판을 봐야 하고 뒤에 오는 차량과의 거리도 신경 쓰였다. 뒤차가 경적을 울리거나 추월하면 더 긴장됐다. 이틀 주행하면서 서울 도로 곳곳에서는 빠르게 달리던 차들이 감시카메라 앞에서만 잠시 속도를 줄였다가 통과하면 다시 속도를 올려 주행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뒤늦게 변경된 제한속도 표지판을 본 지 꽤 오래됐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은 2020년 말부터 안전속도 5030을 본격 적용했다. 교통안전표지판과 도로 노면 표시가 상당수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반쪽만 인지하고 있었다. 어린이보호구역 30km 제한은 일명 ‘민식이법’으로 시끄러웠던 터라 일찌감치 각별히 주의해 운전했다. 하지만 도심 일반도로는 50km 제한속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틀간 안전속도 5030에 따라 주행한 결과 나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기분이었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적극 홍보로 더 많이 알렸으면”
직장인 한유진(47) 씨는 “차가 천천히 달리면 사고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며 “보행자의 입장에서 훨씬 안전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인순(74) 할머니는 “걸음이 느려 신호등 건널 때마다 늘 가슴 조렸다”며 낮아진 제한속도를 반겼다. 직장인 정재연(27) 씨도 “평소 지나치게 차들이 빨리 달린다고 느껴져 불안감이 있었다”며 줄어든 속도에 안심이 된다고 답했다.
‘덕수궁길 차 없는 거리’ 담당자인 김홍기(84) 씨는 “제한속도를 50km으로 낮춘 게 보행자에겐 반가운 소식일 수 있다. 사고 위험률을 낮추는 효과도 있지만 먹고살기 위해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사람들은 걱정이 앞선다”며 마냥 반기지 못했다. 김 씨는 “60km로 달렸을 때와 비교해 도착 시간이 2분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뉴스를 봤다. 2분 차이는 차량으로 영업하는 사람에겐 엄청난 시간”이라며 “정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답답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택시 영업을 하는 박동명(50) 씨는 “타자마자 빨리 가자고 말하는데 속도가 느려지니 손님이 짜증을 내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지지했다. 그는 “변경된 도로교통법은 과속 운전 처벌을 세분화해 과태료와 벌점을 부여한다”며 “적극적인 홍보로 제대로 정책을 알리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홍성민 공학박사, 경찰청 교통운영과 조재형 계장
안전속도 5030 정책 왜 필요한가?
-안전속도 5030 도입 배경은?
홍성민(한국교통안전공단 공학박사): 우리 국토의 5.2%를 차지하는 도시에 차 대 사람 사망자가 70.8% 발생하고 있다. 해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차량 속도가 시속 35~40km를 넘을 때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며 시속 60km에 이르면 사망률이 90%를 넘어섰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도시부 제한속도를 시속 50km 이하로 권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인 우리나라의 보행자 안전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도시 제한속도 하향 정책인 안전속도 5030을 도입했다.
-준비는 어떻게 했나?
조재형(경찰청 교통운영과 계장): 2016년부터 정책 도입을 준비했다. 2017년 부산 영도에서 시범운영을 해 사망사고가 줄어든 것을 확인하고, 2018년 전국 주요 지역으로 확대해 시범운영했다. 명확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2019년 11월에 부산이 전국 처음으로 전면 시행에 나섰다. 이어 2020년 말에 서울을 비롯한 광역시권 대부분이 시행에 들어갔다.
-시행 결과는 어떤가?
조재형: 앞서 전면 시행한 부산은 2020년 한 해 보행 사망사고가 33%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 말부터 시행한 서울에서도 2021년 1분기 보행자 사고가 31% 줄었다.
-제도 안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홍성민: 과학적인 방법으로 효과를 분석해 국민의 오해와 우려를 줄이도록 힘쓰겠다.
조재형: 속도 표지판과 노면 표시도 확충하고, 시속 50km 운전에 불편함이 없도록 신호 연동도 조정할 계획이다.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가 정책 슬로건이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