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국제시장>, <1987> 아닌 <기생충> 세대 추월의 시대 맞는 새로운 틀 만들어야”

2021.05.17 최신호 보기
▶4월 21일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왼쪽)과 권보람 참자유청년연대 대표가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년 ‘추월의 시대’를 논하다
1981~1989년생 저자 6명이 쓴 〈추월의 시대〉에서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추격의 시대’를 끝내고 선진국을 앞지르는 ‘추월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대립으로 세계 속 우리나라의 위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 과정을 거치면서 이미 우리나라는 선진국 ‘추격’을 끝내고 ‘추월’하는 단계에 와 있음에도 여전히 뒤처졌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열등감이 내재한 두 세대의 성취와 한계를 평가하고 극복함으로써 열등감 이후의 우리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감〉은 저자 가운데 한 명인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과 권보람(1990년대생) 참자유청년연대 대표의 대담을 마련했다. 4월 21일 열린 대담에서 두 사람은 추월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하헌기(이하 하) :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다 정치적 소통 방식의 답답함을 느끼고 나왔다. 우리 사회는 세대 간, 계층 간, 성별 간, 정치집단 간 갈등이 심하고 분열된 사회다. 갈등이 심할 수 있으나 그걸 조정하는 기능이 필요하지 않나? 조정은 안 되고 각자 대결만 하는 상황을 해소할 새로운 형태의 정치 해법을 찾기 위해 새로운소통연구소를 만들었다. 활동 가운데 하나가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고 거기에서 만난 6명이 1980년대생들의 사회 특성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으로 냈다. 

권보람(이하 권) : 2030세대, 4050세대 식으로 규정하는 세대론적 관점을 반대하지만 이 책을 읽고 세대별로 같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생기는 공감대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라는 세대가 살아갈 시대는 지금까지의 세대, 시대와는 다를 것이다.

하 : 내가 놀랐던 게 일본과 무역 분쟁 국면이었다. 우리 앞 세대만 해도 일본에 덤비면 큰일 난다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우리는 이제 바뀌었기 때문에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1990년대생들은 “일본에 내가 돈을 안 쓰면 그만이지” 식으로 생각해서 놀랐다. ‘이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선진국에서 태어났구나’ ‘우리가 열등감이 남아 있는 마지막 세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별로 뚜렷이 나눌 순 없겠지만 그런 차이들은 분명히 있다.

권 : 기성세대와 달리 우리는 미제·일제 제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열등감이 없는 세대다. 주변 10대나 20대한테 부러워하는 나라가 있느냐고 물어봐도 ‘그냥 없다’고 답한다. 유럽이나 미국도 부럽지 않고 일본은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책을 1980년대생이 썼지만 그 논의는 기성세대보다 1990년대 생 이후 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할 부분이 많을 것 같았다.

하 : 1980년대생들은 우리 사회가 가졌던 열등감을 이해하는 마지막 세대다. 자라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을 본 세대이기 때문에 선배들이 얘기하는 것도 얼추 이해하고 후배들의 말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시각들을 우리가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권 : 책에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느꼈다.

하 : 우리 사회를 영화로 치면 산업화 세대는 〈국제시장〉으로, 민주화 세대는 〈1987〉로 읽는다. 각각 폄하하는 층이 있지만 둘 다 우리 사회이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화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 20대들, 1990년대생들이 사는 시대는 〈1987〉도 〈국제시장〉도 아니고 〈기생충〉이다. 이 영화가 오스카상과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만 얘기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인 불평등을 다룬 메시지를 서구 사회도 공감한다는 거다. 〈기생충〉 세대는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가 앓는 문제들, 불평등 같은 선진국병에 빠져 있다고 읽어야 한다. 기성세대는 자기들이 향수에 빠져 있든 빠져 있지 않든 더 이상 〈국제시장〉도 〈1987〉도 아닌 〈기생충〉의 시대이자 추월하는 시대에 맞춰야 한다고 문제 제기하고 싶었다.

▶하헌기 소장

권 :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86세대(1980년대에 대학 입학한 1960년대생)를 기득권처럼 보는 청년들도 있다.

하 : 프랑스 68세대를 보면 86세대의 민주화나 그 이전 산업화 세대만큼 사회적 공로가 없다. 기여를 안 했는데도 그만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86세대가 기득권은 맞는데 유럽의 다른 기득권과 비교해 이 정도 공로가 있으면 기득권이 있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당신들 공로가 있으니 기득권에서 머물면 된다는 건 아니다. 기존 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각을 보일 필요가 있다. 청년 세대가 문제 제기하면 아직도 어르고 달래듯이 얘기를 들어준다는 식이다. 이 책이 나왔을 때도 “30대들이 대견한 생각을 했네”라는 반응이 많았다.

권 : 세대론은 우석훈·박권일이 〈88만원 세대〉에서 ‘88만원 세대여 일어나서 대항하라’라고 했던 것처럼 마케팅이나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세대 안에서 불평등과 격차가 큰 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하 : 〈88만원 세대〉를 쓴 분들은 88만 원 세대가 아니었다. 거칠게 요약하면 당시 2030세대를 자신들의 시선으로 봐서 너희는 가난할 거니까 저항하고 살아야 한다는 거였다. 바로 우리 세대였는데 막상 30대가 돼보니까 그렇지 않았고 그 시각대로 가지 않았다. 〈추월의 시대〉는 세대론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시각을 재조정하기 위해 1980년대생의 특수성을 이야기했다.

권 : 평소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 사회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에서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느릿느릿한 것이 아니라 답답한 것이고, 빨리빨리의 문제는 속도 자체가 아니라 피드백”이라고 쓴 부분이 핵심을 찔렀다고 느꼈다.

▶권보람 대표

하 : 우리 사회는 반응이 굉장히 빠른 피드백 사회다. 그게 정치에서 작동을 안 한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최저임금 1만 원이나 기본소득 같은 담론을 진보 진영에서 논의한 지 10년도 안 됐다. 그걸 집권 세력이 빨리 받아서 논의 테이블에 올려보고 뭔가 잘 안 되면 빨리 수정한다. 반응이 굉장히 빠른 특성이 있다.
지금 터져 나오는 젠더 갈등 이슈도 인터넷에서 2015년에 본격화했다. 그러다 남성들이 불만을 가지니까 정치권에서 갑자기 이대남(20대 남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정치권을 보면 온갖 얘기를 다 한다. 심지어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용인하지 못할 얘기도 국회에서 막 꺼낸다. 논의 테이블에서 싸우고 쳐내고 정리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비판 자체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 불만이 있더라도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 자체를 못 한다. 갈등이 있으면 조정하는 게 정치권이 해야 할 역할이고 다른 입장이 있으면 소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둘 다 방기하는 바람에 세대 간 갈등이나 성별 간 갈등만 구성원끼리 하고 있다.

권 : 페미니즘뿐 아니라 기본소득 같은 민감한 이슈도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토론해야 하는 데 찬성·반대로만 규정하고 숙의 과정 없이 진행되는 것 같다. 피드백 사회라고 했는데 정치권에서 사회 담론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많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 : 페미니즘에 대한 찬성·반대만 묻는 게 아니라 세부 항목을 나눠야 합의의 틀이 만들어진다. “반대해? 그러면 성차별” 이러면 진도가 안 나간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얘기를 많이 하는데 운동장이 기울어졌으면 운동장을 보수해야 한다. 새로운 틀을 만들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아니면 반페미니즘 식으로 기존 틀에 막 끼워 넣으니까 운동장에 있는 구성원끼리 싸우는 거다.

권 : 기성세대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건 존중하지만 탈정치화되고 보수화된 세대라는 식으로 타자화해 “계속 이럴 거야?” 식으로 접근하는 건 사양한다. 청년도 나름대로 자기 생각이 있고 그 폭이 굉장히 다양하다.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 세대들이 주체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하 : 기성세대가 예전처럼 양극단의 시각으로 보면 미래에 대응하기 힘들 것이다. 변해가는 사회와 시대를 무시하고 하던 대로 생각하면 대응이 안 된다. 빠르게 선진국에 진입했고 좋은 사회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반동으로 불평등이 심화된 측면도 있다. 이런 부분을 정리하려면 과거의 틀이 아니라 새로운 모델을 만들면서 가야 한다.

권 : 요즘 극단화된 목소리가 나오고 갈등이 심화하면서 젊은 세대가 답을 찾아갈 수 있을지 위기감을 많이 느꼈는데 책을 읽고 나서 어떻게든 극복해낼 거라는 희망을 봤다. 만년 후발주자로 바라보며 우리 사회를 폄하하는 인식이 있는데 서구 사회에 뒤처진 게 아니라 피드백 사회처럼 우리만의 방법이 있다.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가 살아왔던 시대와 다른, 선진화된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방법을 충분히 찾아나갈 것이다. 기존의 틀에 있던 사람이 틀을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람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을 만들어나가지 않을까?

하 : 맞다. 우리는 크고 작은 문제를 겪었다. 젠더 갈등도 서구 사회에 다 있다. 개발도상국적 역동성과 갈등이 심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에너지를 갖고 선진국에 진입했기 때문에 계속 급변하는 문제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를 먼저 맞았으니까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정리 원낙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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