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처절하게, 광기 내뿜으며 우주를 향한 붓 터치의 격렬함

2021.04.12 최신호 보기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캔버스에 유화, 73.7×92.1cm, 1889, 뉴욕현대미술관소장

1853년 네덜란드 남부 노르트브라반트주의 작은 도시 쥔더르트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는 6남매 중 맏이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한 살 위의 형이 있었다. 불행히도 그 형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고흐는 1880년부터 10년 동안 그림의 세계에 파묻혀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고흐 미술인생의 절정기는 1888년 2월에서 1890년 7월까지 2년 6개월 사이에 펼쳐졌다. 이른바 아를~생레미~오베르쉬즈우아르 시기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고흐 작품의 대다수가 이때 탄생했다. 특히 아를과 생레미 시절 고흐는 거의 이틀 걸러 한 점씩 그렸을 정도로 그림에 파묻혀 살았다.
1886년 파리로 거처를 옮긴 고흐는 팍팍한 대도시의 삶에서 오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남프랑스에 위치한 태양의 도시 아를로 떠났다. 1888년 2월이었다. 이듬해 5월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아를에 머문 기간은 1년 3개월가량. 살아 꿈틀거리는 듯 독창적이고 격정적인 붓 터치와 마법 같은 색채의 향연은 그곳에서 잉태되고 무르익었다.
이어진 생레미 시절 고흐 특유의 붓질과 내면의 감정과 영혼이 투사된 채색 기법은 절정에 달한다. 홀로, 처절하게, 광기를 내뿜으며 캔버스와 사투를 벌인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무관심을 조롱했다. 그 중심에 있는 작품이 바로 ‘별이 빛나는 밤’이다. 1889년 6월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요양하던 중 고향의 밤 풍경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이다.

밤 풍경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
1888년 5월 고흐의 초청으로 폴 고갱이 ‘노란 집’으로 불리는 아를의 작업실에 합류했다. 그러나 현실주의적인 고갱과 이상주의적인 고흐는 자주 부딪혔다. 결국 2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고갱은 고흐 곁을 떠났다. 고갱의 부재는 고흐의 발작 증세를 부추겼다. 급기야 크리스마스 무렵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 일부를 잘라 아를의 한 매춘부에게 건네는 기행을 저지르고 만다.
주민들의 민원이 쇄도하고 설상가상으로 1889년 4월 평생의 동반자로 여겨온 동생 테오의 결혼 소식은 고흐의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결정타를 가하고 만다. 결국 한 달 후 고흐는 생레미의 생폴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고 이곳에서 불후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을 완성했으니 반전도 이런 반전이 있을까?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상설 전시 중인 작품으로 밤 풍경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고질적인 정신질환이 손짓하는 광기와 지독한 고독, 자신의 그림을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폭발적인 표현주의풍의 예술로 승화시킨 세기의 걸작이다. 아를 시대 때 정립한 고흐 화풍이 원숙한 경지에 올랐음을 입증하는 물증이 다 들어 있다.
우선 색. 밤하늘을 상징하는 짙은 푸른색이 화면 전체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하늘에는 11개의 노란 별이 주위를 둘러싼 뿌연 흰 무리와 어우러져 터질 듯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맨 오른쪽 위 별빛과 같은 노란색 옷을 두껍게 입은 오렌지 빛 그믐달은 마치 태양처럼 이글거리고 있다. 하늘과 별과 달을 표현한 파랑과 노랑은 섞으면 무채색이 되는 보색관계다. 이 때문에 130여 년 전에 고흐가 그린 밤하늘을 보는 우리의 시신경은 어질어질 현기증의 세계로 빠져든다.
하늘 가운데에는 푸른색의 거대한 나선형 형상이 꿈틀꿈틀 용솟음치며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는 구름 띠가 보인다. 별과 달, 하늘과 구름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색이 아니다. 그것은 고흐의 마음속에 내재한 감정의 색, 상상의 색이다. 고흐에게 색채의 본질은 망막에 포착되는 날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휘감고 있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캔버스에 유화, 72×92cm, 1888, 오르세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우울함과 쓸쓸함의 중의적 상징
다음은 붓 터치와 형상을 살펴보자. 고흐는 밤하늘을 수놓은 모든 것을 원형과 나선형, 물결 모양의 배열로 디자인했다. 그 모습을 굵고 짧고 역동적인 붓 터치의 연속으로 표현했다. 팔레트에서 물감을 섞지 않고 원색의 물감을 두텁게 칠하거나 아예 튜브에서 물감을 바로 짜내 캔버스에 바르는 방식으로 붓 터치를 했다. 대상과 형식의 단순화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물감의 질감이 자아내는 입체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그림 속 물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에너지와 율동미가 넘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 하나, 색이 빚어내는 아우라를 느껴보자. 코발트색 하늘은 밤하늘의 고흐식 표현이면서 고흐가 평생 맞닥트린 우울함과 쓸쓸함의 중의적 상징이다. 별과 달이 간직한 노란색은 고흐의 광기와 분노의 미술적 변형이다.
시선을 압도하는 것이 또 있다. 화면 왼쪽 아래에서 하늘 끝까지 불꽃 모양으로 곧게 뻗어 있는 기이한 형체가 보인다. 사이프러스 나무다. 편백나무과의 침엽수인 사이프러스는 지중해 연안의 공동묘지에 흔한데 서양문화권에서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살아서는 별에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고흐가 저승의 세계에서 별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증표가 아닐까.
이승에서의 삶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었는지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나타낸 도상도 눈에 띈다. 화면 아래 중앙에 작지만 높이 솟은 모습이 선명한 교회 첨탑이 그것이다. 당시 프랑스 교회의 첨탑은 높지 않았다. 그림처럼 높은 첨탑은 고흐의 모국인 네덜란드풍이다. 화가가 되기 전 목사의 꿈을 꾸었고 전도사로 활동했던 고흐의 신앙적 표현이다.
폭발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하늘 풍경과 달리 화면 아래 마을은 차분하고 고즈넉하다. 똑같은 밤 풍경이지만 하늘과 마을을 대하는 고흐의 마음은 극과 극이다. 아를 시절에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과 비교하면 1년 사이에 붓 터치의 격렬함과 에너지의 충만함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 도착한 느낌이다.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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